안젤리나 졸리. 삶도 마치 영화처럼 매력적인 그가 드디어 소방대원의 역할에 도전했다. 배우들의 로망 중 하나가 소방관 역할을 해 보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도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1982년 데뷔 이후 어느덧 마흔 중반이 된 그는 <툼레이더> <솔트> <투어리스트>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쿵푸팬더3> <원티드> <말레피센트> <이터널스> 등 50여 편 내외의 작품에서 주연과 감독을 오가면서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 졸리는 산불을 진압하는 소방대원(smokejumper)이자 팀 리더인 한나 역을 맡아 연기했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포스터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포스터 ⓒ New Line Cinema


과연 그녀는 이번 역할을 어떻게 소화해냈을까?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소방관 역할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설레는 일이다. 비록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한 부분에서 나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동질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소방대원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기존에 개봉됐던 <분노의 역류>나 <래더 49>과 같은 정통 소방 영화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2017년 개봉되었던 산불화재 진압대원들을 다룬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와도 차이가 있다.  

영화 속 스토리는 다른 액션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 화재현장에 출동한 주인공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실수로 바람의 방향을 잘못 읽어 팀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고 만다. 이로 인해 동료 대원 레오와 인근에서 캠핑을 하던 3명의 아이들을 화재로부터 구하지 못한다. 사고 이후 한나는 계속된 자책감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등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소방관의 지독한 독감'이라고 불리는 PTSD는 소방대원마다 나타나는 행동 양상이 다르다. 영화 속 주인공 한나 역시 사고 이후 심리상담을 받았지만 트라우마는 쉽게 극복되지 않고 꿈 속에서마저 그녀를 괴롭히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소방대원 순직에 대한 책임을 물어 그녀는 몬타나 파크 카운티의 산불 감시탑에 배치돼 화재감시 임무를 맡게 된다. 

현실에서도 많은 소방관이 그렇듯 영화 속 한나 역시 소방관으로서 고집스러운 면을 일부 갖고 있다. 술에 취한 채 동료의 픽업트럭에 올라타 빠르게 질주하다가 낙하산을 펴는 모습에서 소방대원의 '꼴통' 기질을 잘 보여준다.      

한편 거대한 범죄 증거를 가지고 도주 중인 법의학 회계사 오웬과 그의 어린 아들 코너는 범죄를 은폐하려는 두 명의 킬러에게 쫓기고 결국 소년의 아버지는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가까스로 대피한 코너는 마침 순찰 중인 한나를 만나 자신들을 쫓는 킬러와 거대한 불길로부터 서로를 지킨다. 이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소년과 한나는 불안한 미래를 함께 고민해 보자고 약속한다. 한나는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예전 소년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또 다른 소년을 지켜내며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죄책감으로부터 마침내 해방된다.  

대단히 이기적인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는 소방대원들의 숙명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결국 사람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해 극복되는 것일까.  

참고로 한나가 연기한 '산림 소방대원'(Smokejumper)은 산불 진압을 위해 특별히 훈련된 소방관을 일컫는 말이다. 대개 낙하산으로 화재현장에 투입되기 때문에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 미국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몬타나, 아이다호, 캘리포니아 등 7개의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대략 320여 명의 산불 진압대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시즌에만 임시로 고용된다. 

아이다호 맥콜 기지의 산불 진압대원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만 18세 이상의 건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체력테스트에서는 턱걸이 7개, 윗몸일으키기 45개, 팔 굽혀 펴기 25개, 그리고 1.5마일(2.4킬로미터)을 11분 이내에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참고로 맥콜 지역은 고도가 5000피트(1524미터)에 달한다. 
 
 산불 진압대원들이 맥콜 기지에서 출동을 준비하고 있다. (Photo Credit: U.S. Forest Service)

산불 진압대원들이 맥콜 기지에서 출동을 준비하고 있다. (Photo Credit: U.S. Forest Service) ⓒ U.S. Forest Service


하지만 이런 체력테스트는 최소한의 요건일 뿐이다. 5주 동안 이어지는 훈련을 통해서 더 많은 과제가 부여되는데 최대 115파운드(52킬로그램)에 이르는 개인보호장비와 진압 도구를 가지고 지정된 집결지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3마일(4.8킬로미터)을 90분 이내로 주파하면 된다. 

영화 속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장면은 소방검열관과 가스검침원으로 위장한 킬러들의 복장이다. 하얀색 유니폼에 소방 배지를 단 킬러의 복장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보통 옷깃에 부착하는 계급장이 없고 소속을 알리는 패치 또한 우측과 좌측 어깨에 붙어 있지 않다. 아마도 가짜 소방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00분 동안의 러닝타임을 통해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이 진짜 누구였는지. 아니면 단지 두 명의 킬러가 전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주된 관전 포인트였다면 이 영화는 안젤리나 졸리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을 동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다른 전문적인 평가는 평론가들에게 맡겨 두기로 하고 소방관이 본 이번 영화의 평점은 다음과 같다.

소방관 평점: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건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건 소방검열관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소방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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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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