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스럽다. 극장을 잘못 찾아왔나? 원래 보려했던 연극이 아니라 다른 현수막이 걸려있다. 하지만 매표소는 맞는데. 아마 예정작을 홍보하려나 보다. 하지만 브로셔를 여는 순간 눈치챘다. 극중극. 아차! 이번 공연은 한국 근대희곡의 대표 작가였던 이진오(1940~1991)의 <단이는 왜 20세기에 몸을 던졌나>를 작품을 만든 것이지.

며칠 전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근대사에서 한 획을 긋고 요절한 천재작가인데 포털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를 오마주한 작품이라는데 왜 정보가 없을까. 하지만 이진오 작가는 이오진(36) 연출가의 철저한 의도가 담긴 함정이다. 연극을 보기 전에 정보를 캐내려 했던 며칠간의 기억에서 한 번, 공연장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총 두 번의 픽션을 경험하면서 필자의 공연관람기는 시작됐다.

웃픈 에피소드로 넘길 수 있었지만, 이 공연이 색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연극을 보는 통상적인 행위가 객석에 들어선 암전 직후부터 시작된다는 선입견을 깼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혼돈을 선물했으며, 이것은 관객이 연극에 참여하는 또다른 방식을 제공한 셈이다. 

관객이랑 유대를 맺는 색다른 방법
 
 공연이 열리던 지난 22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콜타임>의 이오진 연출가를 만나 작품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공연이 열리던 지난 22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콜타임>의 이오진 연출가를 만나 작품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필립리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연극 부문에 선정된 <콜타임>(2월18~2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이렇게 관객을 극장에 끌어들이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 극장을 무대 안으로 끌어들이는 경계선을 스스로 허물었다. 작품을 제작한 이오진 연출가는 이전에도 비슷한 것을 시도한 바 있다.

3년 전에 다른 극장에서 만났던 전작 <피어리스 : 더 하이스쿨 맥베스>는 일반 객석을 무대로 사용해 공간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콜타임>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아니, 무대와 객석의 경계선뿐 아니라 배우들은 객석 통로를 비롯해 관객의 머리 위를 지나는 2층 스태프 구역까지 뛰어다닌다. 무대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참관자가 아니라 같은 시공간에서 동시대성을 호흡하는 동반자가 맞겠다. 이 방식은 <콜타임>이 말하려는 '2022년의 동시대성'을 공감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동시대성을 관객에게 학습시키는 연출기법. 과연 다른 관객은 이번 연극을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또한 연출가는 왜 이런 시도를 멈추지 않을까. 관객에게 던져주는 혼돈이 연극에 대한 몰입감을 증폭하기 때문에? 출발을 알리는 총성에 맞춰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연극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는 순간부터 무대의 조명은 켜진 것이다. 그동안 현대여성의 서사에 확실한 목소리를 냈던 젊은 연극인에서 나아가 새로운 연출기법의 영역을 구축한 이오진 연출가. 그는 관객을 극장에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현실에서 공연장으로 넘어오는 사이에 환상적인 브릿지를 만들고 싶었다 고백했다. 

"무대가 곧 극장이고 극장을 곧 무대로 만들었어요. 연출철학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익숙하게 보던 것을 다르게 보고 싶었거든요. 연극이라는 것이 이것을 저것으로 가정하는 재미가 있는데, 그것을 공간까지 확장하면 어떨까라고 말이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기어이 한 발 내딛어

2018년 '미투(me too)'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이후, 연극계에는 페미니스트와 같이 시대상을 드러낸 작품들이 쏟아졌다. 그것은 동시대성을 담아야 하는 예술계의 소명의식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대부분의 연극은 당시를 살아오고 있는 관객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배우의 몸동작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시도가 모두를 만족할 수는 없었고, 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속도차이가 있듯이 약간의 다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이 연출가는 "전에 없던 발견과 깨달음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통째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엇인지 묻고 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와 늘어가는 질문들 속에서 실제로 변화하지 않는 사회를 감내해야 하는 삶을 사유하고 싶다"며 작품의 의도를 밝혔다. 연극계 미투 이후 페미니즘 작품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공연은 페미니즘이나 변화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여성과 아무 의심 없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궁금함을 떨쳐낼 수 없다. 그렇게 무대에 올랐던 작품들 중에서 무엇이 못미더웠고 어떤 게 아쉬웠을까. 하지만 이 낯선 질문에 그는 관객이나 독자가 그렇게 해석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원했던 의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극중 주인공인 '범순'과 '은호'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의도를 눈치챌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쉬움과 기대가 공존합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들은 서로 안맞아도 어떻게 생각하는지 끝까지 듣거든요. 2018년 이후 페미니즘 연극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쉬웠는지 묻는다면, 그것을 평가하거나 어떻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2022년에 필요한 여성들의 이야기
 
 2022년에 필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콜타임>의 한 장면

2022년에 필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콜타임>의 한 장면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유경오

 
2018년 이후에 여러가지 움직임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더불어 어떤 노력을 해왔던 것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며,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에 상관없이 <콜타임>은 '2022년, 동시대에 필요한 여성들의 이야기'란다. 그래서 두 여성의 내면적 소용돌이가 미래에 변화의 씨앗이 되는 이야기를 써보려 했다. 함부로 연대를 종용하거나 싸워나갈 것을 결심하는, 사랑에 빠져서 삶을 다 버리는 이야기도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오늘을 살아가며 분투하는 여성을 무대에서 그리려 했다.

작품에는 2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데뷔한 지 10년 차 기혼자 여성 배우인 '범순'과 대학로에서 일을 시작하는 조연출인 '은호'. 둘은 배우와 스태프가 공연장에 모이기로 약속한 시간인 '콜타임'보다 1시간 일찍 극장에 도착한다. 다른 팀원들이 오기 전까지 둘만의 대화를 하며, 서로를 향한 다른 감각을 발견한다. 작품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결혼한 배우와 미래에 희망이 안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한 시간 동안 전에 없던 시간을 갖는다. 그날도 어김 없이 공연은 올라간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변한 오늘의 공연이 올라간다.

두 인물은 나이, 꼰대, 호칭에 대한 사소한 의견 차이를 느낀다. 실패한 여성의 서사가 지겨운 '은호'와 그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범순'. 이들은 80분 내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듯 미묘한 감정의 평행선을 걷는다. 자신이 쌓아온 안정된 삶을 지키고 싶어하는 40대와 불리한 것에 직설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20대. 하지만 이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근대사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여기서 이 연출가가 주목한 부분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대를 바라보지만,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배려를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은호는 범순과 키스를 나눈 이후 정체성(레즈비언, 바이, 폴리아모리, 디나이얼)을 묻는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는 범순. 키스를 했지만 자기랑 연애할 것이냐는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는 범순은 이대로 살 것이라며,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부수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지키고 싶은 자와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게 없다는 자 사이에 흐르는 대립. 여기서 우리가 빠지지 말아야 할 지점은 누가 페미니스트인지가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페미니스트인지를 진단하거나 이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렇다면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이 연출가는 오히려 차이점이 많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굳이 공통점을 모아야 한다면 "이렇게 많은 차이점 속에서 서로에게 등 돌리지 않는 것"라고 말했다. 솔직히 차이점이 많은데도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하지만 범순과 은호는 나랑 다르다고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인간성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은 공감대이다.  

지난 2017년, 호랑이띠의 동료들과 같은 뜻을 바라보며 결성된 '호랑이기운'은 그동안 동시대성을 두고 한결같은 목소리를 냈다. 2022년에 필요한 젠더 감수성을 말하는 단체의 그림이 궁금하다. 하지만 정답을 정해놓고 작품을 올리지 않듯이 이 연출가는 명확한 답을 말할 수 없고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전에 없던 것이 2018년에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2022년이 됐어요. 여성에서 확장해 장애인, 소수자 등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더이상 그래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정착된 것 같아요. 더이상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지겹다고 비난하려는 힘도 강해졌어요. 이럴 때, '어떻게 나랑 다를 수 있어?'라고 외로워하지 않고 '지금 상황이 이럴 때 내가 뭘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을 잘하고 못하고 있나', '내 옆에 누가 있나'를 생각해요. 2022년은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성장했잖아요. 우리가 관객이랑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우리가 같은 고민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연출가는 그동안 수많은 페미니즘 작품을 보러다녔는데, 페미니즘 연극은 좋다 나쁘다고 평가하기 이전에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보려고 했다. 지금 연극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메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콜타임>은 극장이 무대가 되고 무대가 극장이 되는 연극을 코미디로 풀어낸 것이다.  

"하고 싶은 절실한 이야기를 하는데, 대놓고 웃을 수 있는 코미디가 좋아요. 무슨 이야기를 열심히 할 때, 웃을 수 있으면 오래할 수 있어요. 그것 때문에 눈물이 많이 나면 오래하기가 지치잖아요.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우리를 웃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쿨타임>은 실패한 여성의 캐릭터인 범순도 행동해야 하는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수렴하면서 살아온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보다는 그 사람의 삶이 있어서 누구에게도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렇다고 잘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것도 완전히 검거나 희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의 어려움과 제 몫의 전투가 있다며,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마지막 바람을 드러냈다.

"누구를 함부로 욕하거나 비난하거나 내 편이 아니라고 돌아설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2022년에 우리가 믿는 가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둘 수 없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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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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