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배드 스포츠: 조작된 승부>는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 직후 관람하기에 비교적 시의적절한 작품 같다. 이번 올림픽 기간 동안 유독 다양하게 돌출되었던 배드 스포츠 양상들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 
 
여섯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사실상 모든 스포츠계 비리사건들이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얼마든지 재발가능하다는 것을 씁쓸히 확인해준다. 그러나 그 확인지점에서 체념하듯 끝나지 않기 때문에, '스포츠계도 글렀구나'라며 하릴없이 자조하게 되기보다는 긍정적 희망적 정서가 솟아날 여지가 남는다. 

아닌 게 아니라 <배드 스포츠>를 보다 보면 스포츠계가 막연히 낭만적으로 상상하는 만큼 '굿'하기는커녕 '클린'하지도 않다는 점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되면서, 스포츠계를 부정부패와 배신행위로 어지럽히는 사람들에 대항해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추구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다잡을 수도 있다. 
 
영화 스틸컷 '포인트 셰이빙'에 참여한 농구선수의 얼굴을 지폐로 가렸다.

▲ 영화 스틸컷 '포인트 셰이빙'에 참여한 농구선수의 얼굴을 지폐로 가렸다. ⓒ 넷플릭스

 
에피소드1은 "포인드 셰이빙(Point Shaving)"을 둘러싼 승부조작 사건을 다룬다. 가난한 두 명의 대학 농구선수가 자신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승부조작에 뛰어들었다. 포인트 셰이빙은 승패보다는 점수차를 조작하는 방식인데, 마권업자와 사전에 약속한 대로 점수차이를 내고 이기면 되기에(즉 일부러 져주지 않아도 됨) 어린 농구선수는 죄의식 없이 거기에 빠져들었다. '포인트 셰이빙은 승부조작이 아니다(점수조작일 뿐!)'라는 선수들의 그릇된 믿음이 사건을 키웠고, 결국 익명의 다수 농구 팬들이 배신당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 연루자들은 모두 체포돼 처벌을 받았다. 그중 두 선수의 처벌이 가장 심했는데 장래희망을 박탈당한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10년 아니 인생 전체를 좌우했다고나 할까. 
 
에피소드2는 전문 카레이싱 경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수십 톤 대마초 밀수를 단행한 카레이서 '랜디'의 이야기를 다룬다. 카레이서로 데뷔하기 전 대마초 밀수와 판매로 '재미'를 본 적 있었던 랜디는 카레이싱을 시작하면서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대규모 대마초 밀수를 선택했다. 확실한 돈벌이, 완전범죄 가능성을 믿었다. 물론 그릇된 믿음이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랜디는 체포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서명한 초강력 법률을 적용받아 종신형을 선고받기에 이르렀다(27년 만에 가까스로 사면받음). 손쉽고 안전한 일확천금 돈벌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범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높았다면서,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거냐? 사람을 죽인 건 아니지 않냐?"고 해맑은 표정으로 질문하는데, 한편 일리 있게 들리면서도 마약중독의 사회적 폐해를 생각한다면 그리 가볍게 질문할 순 없을 텐데, 잘못된 믿음을 여태 유지하고 있는가, 염려스럽다.    
 
다음으로 에피소드3은 이탈리아 프로축구계를 놀라게 했던 초대형 비리사건을 고발한다. 축구경기의 심판배정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유벤투스 축구단의 루치아노 모지 단장을 둘러싼 이야기다. 전무후무한 대규모 스캔들임에 틀림없었지만, 모지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 스캔들에 연루된 심판들도 처벌받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었다. 모지는 심판에 대한 선호도는 어차피 있는 것 아니냐, 심판배정에 자신이 불법을 자행한 확실한 물증이 없지 않느냐며 반문하는데, 모지를 비롯해 심판들의 비리를 추적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검사는 이탈리아 축구계가 이대로 과연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안타까워한다. 
 
에피소드4는 2002년 미국에서 개최된 올림픽 경기 피겨스케이팅 페어 부문에서 제기됐던 승부조작 혐의를 다룬다. 총 9명의 심판 중 1위 선정 관련 의견이 4:4로 동률인 상황에서 프랑스 심판이 러시아 피겨팀에게 1표를 더해주어 점프 실수가 명백했던 러시아팀이 금메달을 받았다. 반면 실수 없이 클린 경기를 펼친 캐나다팀은 아쉬운 대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경기 직후 심판회의 때 프랑스 심판이 '프랑스빙상연맹'의 외압이 있었다고 자백해서 완전히 난리가 났다. 러시아 마피아 연루설까지 나왔는데도, 얼마 뒤 프랑스 심판이 외압 따위는 없었다며 자신의 자백을 번복하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됐다. 최종적으로 러시아팀과 캐나다팀의 금메달 공동시상식이 새로 열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사건의 진상은 끝내 규명되지 않았다. 이번 올림픽의 발리예바 도핑의혹 건에서처럼 국가간 이해관계가 개입해 들어오면 제아무리 공정을 추구하는 스포츠계라 할지라도 수습의 방향을 공정하게 잡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영화 스틸컷 2002년 겨울올림픽 피겨 심판의 부정을 알리는 언론보도

▲ 영화 스틸컷 2002년 겨울올림픽 피겨 심판의 부정을 알리는 언론보도 ⓒ 넷플릭스

 
에피소드5는 말 못하는 동물(馬)을 죽여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는 편법을 저지른 부자&엘리트들의 탐욕과 잔혹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인간을 신뢰하고 인간과 교감하며 쇼에 출연하는 말들은 매우 높은 보험금을 책정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데, 말이 갑자기 사망할 때 말 주인은 그 보험금을 탈 수 있다. 그래서 부자&엘리트들은 말에게 싫증이 나거나 마음이 바뀌면 청부살해 방식으로 말을 죽이고 자연사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는 방식을 선택하곤 했다. 청부살해는 일명 '샌드맨'이 감당했는데, 샌드맨으로 활약했던 토미는 FBI에 체포돼 조사받던 중 수십 년간 자기가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사람에게 계속 배신당하고 있었다는 쓰라린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배신감으로 가슴아파하던 토미는, 마치 한 몸처럼 함께 달렸던 말 주인에게 배신당해 죽어간 말들의 한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FBI를 적극 돕기 시작한다. 그 결과 속은 추하지만 겉은 우아하던 부잣집 엘리트, 말에 대해 변덕이 죽끓듯 했던 말 주인 30명을 한꺼번에 기소할 수 있었다.
 
영화 스틸컷 말 주인에게 배신당하는 말의 모습.

▲ 영화 스틸컷 말 주인에게 배신당하는 말의 모습. ⓒ 넷플릭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6은 넬슨 만델라만큼 유명했고 남아공 국민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았던 크리켓 선수 한시 크로니에의 승부조작 연루사건을 보여준다. 그런 류의 일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한시는 실제로 그런 일에 연루되었고, 사건이 발각되자 눈물 흘리며 범죄를 시인했다. 그러자 한시의 지인들은 한시가 악질 마권업자들에게 덜미 잡혀 그 마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승부조작에 동원된 거라고 추론한다. 그래서 그가 불명예스럽게 선수생활을 마치고 2년이 지난 뒤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을 때에도 남아공 국민들은 그를 '국민의 영웅'으로 회상하며 추모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시는 왜 승부조작에 임했을까? 왜 자신을 향한 온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저버렸을까?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이젠 확인할 도리조차 없다.
 
영화 스틸컷 한시 크로니에의 입장을 설명해주는 사람.

▲ 영화 스틸컷 한시 크로니에의 입장을 설명해주는 사람. ⓒ 넷플릭스

 
요컨대 <배드 스포츠>는 신뢰를 저버린 배신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에피소드1과 2는 포인트 셰이빙과 대마초 밀수 범죄에 대한 스포츠 선수 자신들의 무디고 그릇된 믿음이 결국 스포츠 관중을 배신하게 되는 문제를, 에피소드3과 4는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해 심판의 판정을 좌우하고 싶어하는 스포츠계의 배신행위 확산에 대한 우려를, 그리고 에피소드5와 6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100% 신뢰할 만한 사람을 어떻게 분간할 수 있는지 또는 그런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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