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공연이 있는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인데, 결말은 유턴이냐 좌회전이냐로 갈린다. 내비게이센은 유턴 경로를 추천했다. 하마터면 한 블록 더 가서 유턴할 뻔한 게, 오랜만에 가는 예술의전당이기도 했지만 내 앞으로 주행연습 중인 차량이 몇 대 갈 길을 함께 가고 있었다. 다행히 신호가 바뀌기 전에 주행연습 차량과 함께 아슬아슬 유턴해 주차장에서 어렵사리 한 자리 찾아내어 어찌어찌 착석하니 딱 10분 전.
 
     홀라당

홀라당 ⓒ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좌회전이면 어땠을까. 그 경로는 주행연습으로 이용하지 않는 길이어서 아마 더 일찍 도착했을 것이고 부드러운 좌회전 커브를 그리며 예술의전당 주차장에 가뿐하게 도착했을 터이다. 개인적인 선호(選好)이지만, 그래서 이유를 대지 못하는데 유턴보단 좌회전이 더 우아하다. 우아하게 조금 여유를 부리며 간만에 예술의전당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좌석에 앉았겠지만, 그래봤자 같은 공연 관람이다. 주행연습 표지가 붙은 차량을 보며 이번 신호를 놓칠까, 약간 마음 졸였지만 유턴에 차질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얘깃거리가 생겼다고 할까. 20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공연 <홀라당!>이 그랬다.
 
비전문가가 함께하는 정규 예술공연
 
<홀라당!>은 일반인과 함께 공연을 제작해보자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마이리틀앰비규어스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2021년 10월 참가자 모집 공고를 내 안무, 음악·음향, 무대기술·디자인, 조명, 의상, 홍보·마케팅의 6개 분야 50명을 선발했다. 다양한 직업군의 10~40대 '곶감'이 무용과 공연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겨우내 땀을 흘려 2022년 2월 18~2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홀라당!>을 올렸다. '곶감'은 <홀라당!>에 참여한 일반인 제작진의 애칭으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으로 이 프로젝트를 점령하겠다는 포부가 담겼고 SNS 공개투표를 통해 결정됐다.
  
     홀라당

홀라당 ⓒ Sang Hoon Ok

 
쉽지 않은 기획이 성사돼 예술의전당 무대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김보람 예술감독의 '빽'이 있어서라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엉뚱해서 더 잘 나가는 김 감독이 주행연습 차량들과 '유턴'한 과정이 매우 어려웠으리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한데 자청한 일이란다. 김 감독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욕심이 있으면 고통이 있는 법. 그런 주체적인 고통은 때로 달콤하다.
 
"직업으로서 예술이 아닌, 예술 그 자체는 모두에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나 '예술'하지 않는가. 나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김보람)
  
         홀라당

홀라당 ⓒ Sang Hoon Ok

 
공연을 끝낸 김 감독의 소회가 달콤했는지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달콤'은 중요하지 않다. <홀라당!>의 공연 자체보다는 공연의 형식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공연의 형식이 참신하고 시도할 만한 것이라는 데에 나는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하지만, 동시에 형식을 제거한 공연 자체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성공한 공연은 아니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즉 가정해서 공연의 형식을 제거한 공연 자체가 예술로서 대접받지 못한다면, 한층 더 나아가 전문가와 비전문가, 예술가와 일반인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어느 예술인의 욕심 때문에 일반인이 소비됐다는 비난까지 나올 법하다.

나는 형식을 떼어낸 내용이란 없다고 믿기에 그런 이분법에 근거한 비판을 신용하지 않는다. 공연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를 거론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경계'가 얼마나 무너졌고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했으며 비전문가가 창작과 제작 과정에서 소외 없이 얼마나 몰입하며 달콤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지가 이 공연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공연까지 훌륭하다면 두말할 나위 없겠다. 재미있게 본 공연이었다.
 
     홀라당

홀라당 ⓒ Sang Hoon Ok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홀라당!>은 'Whole(홀) Like(라) Dankeschön(당)'을 뜻한다. "홀로 있는 게 좋아, 감사해! 모두 함께 하는 것도 좋아, 감사해!"를 표방한 <홀라당!>은 "개인주의의 시대, 그럼에도 함께하는 것의 힘"을 주제로 공연을 구성했다.

관객은 주로 무대 위를 볼 텐데 무대 아래와 마찬가지로, 전문무용수와 '곶감'무용수가 함께 무대를 꾸몄다. 메시지가 뚜렷하고 안무가 난해하지 않아 공연은 흥겹고 잘 와닿았다. 사실 내용상 정교한 춤이라 하여도 겉보기엔 막춤으로 보이거나 대중문화에서 목격되는 외양이어서 어깨에 힘준 춤 공연에 비해 부담이 없다고 느낀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강한 비트에 사이키덱릭한 음악과 현란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조명도 무난했다. 다만 무대의 흥이 객석의 흥으로 연결되지 않아 아쉬웠는데, 코로나19의 영향 같기도 했다. 무대와 객석이 흥을 주고받는 공연이었으면 더 좋았지 싶다.

대충 대중성과 예술성, 상업주의와 모더니즘의 조화 정도로 감상을 얼버무리기에 앞서 두 가지 포인트는 언급하고 한다.
 
     홀라당

홀라당 ⓒ Sang Hoon Ok

 
의상, 조명, 음악 등 주목할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출연진이 쓰고 나온 마스크와 대미에서 '홀라당' 마스크가 벗겨지는 데에 나름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 '홀라당'이 무경계의 경계화일 수 있겠지만, 그 숨찬 군무(群舞)의 개체적 각성을 상징한다. 경계를 없애려면 경계를 알아야 하듯, 함께하려면 개체가 파악돼야 한다. 'the one'은 철학용어로 '일자'라고 번역되지만, 번역 없이 그 자체로 파시즘에서 쓰는 말이기도 하다. 파시즘의 'the one'은 개인이 아예 없는, 개인과 전체가 하나인 상태이다. 얼굴은 인간 개체를 극명하게 표현하는 존재의 깃발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핫둘셋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구호와 함께 한동안 반복된 '핫둘셋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막춤'이다. 옆자리에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 들었다. 관객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 있었겠다. 도대체 언제까지 "핫둘셋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구호와 함께 막춤인지 체조인지 하는 동작을 반복할 건가.

나는 '핫둘셋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막춤'이 '홀라당'이란 주제로 고양하는 도움닫기로 느껴졌다. 물론 그밖에 다른 사유가 얼핏 스쳤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상의 시 '오감도'의 '시제1호'가 '핫둘셋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막춤'과 겹쳐졌다. 막춤이 "아홉, 열"까지 가서 살짝 어긋났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숫자 때문에 떠올렸지만, 꼭 숫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겹쳐진 이유를 널어놓은면 너절해 질 것이기에, 그냥 이상의 그 시를 한번 읽어보는 게 좋겠다. 질주(疾走)해도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
 
     홀라당

홀라당 ⓒ Sang Hoon Ok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러케뿐이모혓소.(다른事情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길은뚤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영화와 춤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