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매십전> 포스터

<윤회매십전> 포스터 ⓒ 김유미 제공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2월 25~2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 오르는 한국무용 <윤회매십전(輪回梅十箋)>의 주제인 '매화'의 의미를 이렇게 부여했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매(梅)'는 나무(木)에 근거하고, '每'는 인(人)과 모(母)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매화 사랑이 남달랐다. 예로부터 네 가지 귀한 것이라는 사귀(四貴)로 정해 관상의 요점으로 여길 정도였으니. 이번 공연은 정조의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가 쓴 동명의 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인간은 죽어도 그 업에 따라 세상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는 뜻을 담은 윤회사상처럼 윤회매도 비슷한 논리에서 출발한다. 
 
매화의 꿀을 먹은 벌이 밀랍(벌집에서 채취한 천연 동물성 고체)을 만든다. 인간은 이것을 녹여 손으로 가짜 매화를 빚는다.

매화에서 시작해 매화로 끝나는 꽃의 삶을 윤회사상에 빚댔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화를 어찌나 사랑했던지 어전에 진상하기도 했다. 연희나 잔치를 위해서 왕실을 장식했던 궁중의 꽃인 '채화(綵花)'를 임금에게 바치는데 윤회매를 사용한 것이다. 왕에게 가짜 꽃을 바치는 것을 '궁중채화양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이덕무의 '윤회매십전'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조선시대를 끝으로 왕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 명맥이 끊긴 현재에 와서도 '궁중채화양식'은 그대로 보존됐다. 경상남도 양산에 가면 궁중채화양식을 지키는 궁중채화박물관이 있다. 여기엔 궁중채화양식의 모든 것을 기록하며 잊혀져간 매화의 기록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아흔을 바라보는 궁중채화장로, 궁중채화박물관의 관장인 황수로 박사가 복원을 했는데, 나라에서는 그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윤회매를 어떻게 만들고 기술을 재현하고 있다.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아래 '창작산실') 무용 부문에 선정된 <윤회매십전>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를 위해 김유미(40) 안무가는 채화박물관에 가서 직접 윤회매의 재현 과정을 보고 모든 자료를 리서치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시인이자 정치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을 편집한 김시습(1435~1493)의 탐매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금과 같은 정월(2월 말부터 3월 초)이 되면 매화를 제일 먼저 보기 위해 경주 금오산에 올라가서 매화에 관한 시를 지은 김시습. 박물관에서 봤던 그의 그림에서 매화를 사랑했던 이유를 발견해 무대화를 거친 것이다.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 눈속에 싸인 매화를 찾은 선비들은 너무 힘들고, 지켜야 할 게 많았어요. 이걸 최고의 선(善)이라 여겼죠. 이걸 지키며 살고 싶었던 마음은 그들의 바람입니다. 사실, 탐매도는 당대의 김시습뿐 아니라 여러 학자들도 있었는데, 유난히 그의 것이 많이 남아있어요." 

왜 매화를 사랑했을까
 
예로부터 선비들은 네 가지 귀한 것이라 뜻하는 사귀(四貴)를 정해 관상의 요점으로 삼았다. 나무가 오래되어 구불구불하고, 줄기와 가지는 야위었으며, 꽃은 번잡하지 않고 활짝 피기보다는 봉우리가 맺힌, 기이하게 구부려지고 뒤틀려지기도 한 세월의 강인함을 견뎌내는 매화는 사군자(매·난·국·죽) 중 으뜸으로 부른다. 하지만 "정말 왜 그럴까?"라는 궁금증에, "얼마나 사랑했으면, 밀납으로 만들어서 왕에게 진상했을까?"라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그 기술을 책으로 편찬했고, 조선시대에 모든 학자들이라면 누구나 매화에 대한 글도 쓰고 탐매도도 그렸다. 이것을 좀더 유별스럽게 만든 이덕무는 밀납으로도 만들어 왕에게 진상했지만, 이젠 왕이 없어졌기 때문에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궁중채화박물관에서 이어온 것이다. 

"우연히 부산방송에서 황수로 박사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고, 이것을 작품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창작산실'에 지원해 1차 통과가 된 이후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바로 그길로 양산에 내려갔죠. 직접 눈으로 보고 들어보니까 채화양식뿐 아니라 김시습의 탐매도를 작품으로 만들면 더 의미가 있겠더라고요. 철학적으로 깊이 파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적 소재를 다르게 해석하다 
 
 공연을 10일 앞둔 지난 15일, 방배동의 한 연습실에서 김유미 안무가는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 부문 선정작 <윤회매십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공연을 10일 앞둔 지난 15일, 방배동의 한 연습실에서 김유미 안무가는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 부문 선정작 <윤회매십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 필립리

 
김 안무가의 작품활동은 꾸준하게 한국적 소재를 다르게 표현하는 패턴을 보인다. 대부분의 한국무용 안무가들이 한국적 소재에서 벗어나지 않냐는 물음에 "나만의 상상력을 더하는 과정"이 다르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수궁가에서 모티브를 얻은 전작 <아쿠아 알타>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제목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수위가 올라가는 만조를 뜻하는 과학적인 현상인데, 그는 이것을 인간의 욕망이라 해석한 작품이다. 원래의 수궁가와는 전혀 다른 안무가만의 상상력으로 색칠한 이야기이다.

"토끼는 자라를 사랑해 바다로 건너왔어요. 사랑에 눈이 먼 인간의 심리에 빗댄 토끼의 이야기인데, 수궁가에서 착안해 과학적인 현상이 이미지화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었죠. 작품엔 기본적인 뼈대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었죠. 토끼, 자라, 용왕만 나옵니다. 자라가 토끼를 등에 태웠을 때의 감성적인 장면도 나와요. 육지동물이 바다로 들어온다는 게 죽을 각오로 오지 않았을까요. 자라는 권력을 가진 용왕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거짓으로 토끼를 사랑합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자라에게 실망한 장면 등의 장면이 한국무용으로 풀어냈습니다."

<윤회매십전>은 창작산실에 선정된 총 19개 중에서 유일무이한 한국무용 작품이다. 수많은 후보작들이 있었을 텐데 이것만 살아남은 비결을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다며, 아마도 "한국적인 소재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창작으로 풀어낸 것"이 다르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매화의 향기

'오동은 천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처럼 사대부의 매화 사랑은 대단했다. 여기에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화를 자신의 철학이자 절대적인 존재로 대입시켰다. 조선시대 매화는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세월이 흘러도 이런 현상은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삶을 관통하는 것을 윤회라고 생각했다.

매화는 자기를 사랑해준 수많은 인간들의 군상을 봤을 것이다.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신지식이든 젊은 청년이든 가리지 않고. 매화는 삶을 관통하는 조선시대의 김시습도 봤고, 현재를 살아가는 김시습도 봤을 것이다. 이들은 지금을 견디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나 청년이다. 힘든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 

"저라고 왜 안 힘들겠어요? 안무가로서 욕심, 꿈 등 미션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저만 힘들지는 않을 거예요. 저 이전에 사람도, 가까운 사람도, 이후의 사람도 안무를 한다면 이런 경험을 겪지 않을까요.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매일 마스크를 쓰면서 단원들과 연습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많이 불안해요. 내일 공연을 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이 안 올 정도예요. '이렇게 땀을 흘렸는데,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 때문에요."

하지만 매화는 이런 역경 속에서도 윤회사상을 이어왔다. 추위 속에서도 결코 자신의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의 강인함과 고고함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는 힘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회매십전>은 따뜻한 위안이자 새로운 희망의 등불의 의미를 담은 한국무용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 융복합이 나온다

코로나19는 공연예술계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무용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AI, VR 등 4차 산업혁명이 한국무용과 만나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국무용협회에서 진행한 <락토 댄스 프로젝트>는 그중 하나였다. 코로나로 인해 예술인에게 과학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교육을 받았다. 비대면으로 공연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노하우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약 2달간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홀로그램 기술을 배웠다. 

"정말 혹 했어요. 이런 기술도 있으면 우리가 언젠가는 활용할 수 있겠구나. 쇼케이스할 때 홀로그램 맵핑을 시도했어요. 그런데 막상 장면을 직접 보니 생각보다 무대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사람을 똑같이 따서 올렸는데, 내가 진짜 나오면 신기술이라고 여겨야 하는데 요즘 영화도 너무 발전하다 보니까 이질감이 많았어요. 아직은 부족한 것도 느꼈어요." 

그래서 <윤회매십전>은 홀로그램 맵핑에 온전히 의존하기보다는 영상에 기대지 않고 몸으로 수단을 삼았다. 대신에 손에서 손으로 이어가는 감성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홀로그램을 쓰지만 사람의 실사가 아니라 매화의 이미지를 홀로그램 맵핑으로 덮은 것이다. 작품의 구심점은 매화와 김시습의 탐매도에서 출발했다. 김시습을 만날 때와 매화가 홀로 필 때, 맵핑을 활용해 상상하는 꽃으로 색상화했다. 때론 무형이 되기고 하고, 도형과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상상하는 매화가 색상으로 발현되는 순간이다. 이것은 단순히 형태를 모방하니고 실사가 아니라 감성에 토로한 작품이다. 

도제식 무용을 넘어 창의력이 필요할 때

김 안무가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문체부랑 경찰청의 협력하여 유휴공간을 예술공간으로 바꾸는 '문화파출소 군포'를 운영한 바 있다. 공연예술 콘텐츠를 가지고 문화예술 교육사업을 진행한 것인데, 이번 <윤회매십전>를 무대에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춤 언어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결성된 '자작 무브먼트'는 그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의 시작이기도 하다. 춤 자체에 집중해보고 싶은 그의 바람을 담아 단체를 결성했다. '자작 무브먼트'는 이전의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상하관계가 아니라 같은 지위를 갖기 위해서 만든 단체다. 사실 예전에 해왔던 교육사업도 그렇게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무용이 필요는 하지만 도제식으로 진행되다 보니까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이 틀을 해제해야 합니다. 자작 무브먼트는 '스스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11명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다수 제자들로 구성됐는데, 이제 창작산실로 첫 공연을 올리게 돼서 부담도 됩니다."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한국무용에 집중하고 싶다는 그에게 앞으로 활동계획과 기대하는 바를 물었다. 

"한국적인 깊이를 보여주는 흐름인 한류가 20년 전부터 성행했지만, 그 원류는 한국의 춤이라 생각해요. 그에 비해서 아직 한국춤은 흥행하고 있지 못해요. 한국의 철학적인 정수를 짚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대중스타가 스쳐 지나가면서 한국적인 색깔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춤의 깊이감으로 해외무대에 도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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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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