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집 포스터

▲ 축복의 집 포스터 ⓒ 필름다빈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갓 스물을 넘긴 것처럼 보이는 가녀린 여자가 어째서 그토록 고달픈 삶은 사는지를 말이다.

그녀는 쇳가루 가득 날리는 열악한 공장에서 땀범벅이 되어 퇴근한다. 그 끝은 집이 아니다. 밤에는 식당에 나가 불판을 닦고 잔반을 치우고서야 돈 몇 만원을 들고 집으로 향한다. 그녀의 집은 재개발 지구로 지정돼 집들이 무너지고 있는 산동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물을 틀면 한참동안 녹물이 나오고 치안이 좋지 않아 문단속을 몇 번이고 다시 해도 불안한 그곳이 그녀의 집이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해서도 그녀는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한다. 한참이나 문 밖에서 서성이던 그녀는 날이 밝은 뒤에야 집에 들어가 짐을 챙겨 나온다.

영화 <축복의 집>이 가장 인상적인 것은 15분여의 오프닝이다. 해수란 이름의 여자의 고달픈 일상을 대사 한 마디 없이 건조하게 보여주는 이 오프닝 시퀀스로부터 그녀가 가진 사연이 무엇인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영화를 명도로 구분할 수 있다면 이 오프닝이야말로 가장 어두운 것일 게 분명하다.
 
축복의 집 스틸컷

▲ 축복의 집 스틸컷 ⓒ 필름다빈

 
집에는 목졸려 죽은 엄마의 시체가 있다

첫 대사는 다음날 오전에야 등장한다. 성경책 가운데 꾸깃꾸깃 챙겨둔 돈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 해수는 외딴 곳 문 닫힌 의원을 찾는다. 나이 지긋한 의사는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각종 서류를 발급하곤 하는 듯 보이는데 해수도 그에게 서류를 부탁한다. 의사가 요구한 건 돈 25만원, 해수는 그에게 돈을 건네고 서류 몇 장을 받아 어느 남자와 만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해수와 그가 집에서 만난 건 엄마의 시신이다. 전깃줄에 목이 졸려 방에서 숨을 거둔 엄마의 육신을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사진기에 찍어 담는다. 그러고는 장례 절차를 위해 해수와 식장으로 이동한다.

<축복의 집>은 한 인간의 죽음과 남겨진 이들이 그 죽음을 마무리하는 방식을 따른다. 죽은 이는 해수의 모친이고, 남겨진 이는 해수와 그녀의 동생이다. 해수의 엄마는 왜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고 해수는 또 왜 늦은 밤 집에 들어갈 수 없었는지, 어째서 영화 내내 그토록 불안에 떨어야 했는지가 영화의 중심된 관심이다. 영화는 그로부터 아마도 영화를 본 관객 대다수가 좀처럼 경험해 본 적 없을 삶에 다가서고 그 고민에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
 
축복의 집 스틸컷

▲ 축복의 집 스틸컷 ⓒ 필름다빈

 
이 시대엔 축복조차 선택적인가

영화의 제목은 완전한 반어법이다. 해수에겐 집이 있지만 그 집은 결코 축복되지 않다. 물리적인 집은 다 무너져가는, 또 곧 무너질 게 확실한 집이다. 그 공간에선 울음조차 소리 내어 울 수 없고 잠조차 마음 편히 잘 수 없다.

집의 또 다른 의미, 가정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 없고 어머니는 아마도 해수에게 숨이 끊긴 것처럼 보인다. 하나 뿐인 동생은 엇나가기만 해서 해수는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다. 축복은 행복을 비는 것이라는데 세상 어디에도 해수와 그녀의 집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는 없는 듯하다.

세상 누군가는 단돈 몇 백만 원에 목숨을 버린다. 누군가에겐 보잘 것 없이 가벼운 일이 누군가에겐 헤어날 수 없는 구덩이일 때가 있다. 그라고 무능해서, 게을러서, 어리석어서 그런 걸까. 행운과 축복이 그렇듯 불운과 저주 역시 인간의 노력을 무력하게 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나기 어려운 누군가의 고난에 우리는 무지하단 걸 인정해야만 한다. 영화 속 해수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뜯어보아도 해수는 참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의 삶은 과연 정당한 보상을 받았는가.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기고 축복된, 최소한 정상적인 삶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무엇도 장담키 어려운 그녀의 이야기로부터 관객은 자기도 모르게 외면해온 이 시대 누군가의 삶을 목격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 <축복의 집>이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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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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