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는 인간을 중심으로 흘러왔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들의 삶은 더 편리해졌을지 모르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과연 더 살기좋은 지구가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인간들의 과도한 욕심과 이기심은 어느새 인간 자신들에게마저도 위태로운 지구로 바꾸어놓았다.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따라 생태계가 좌우되는 시대에,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여기는 공존의 시각이 요구되는 이유다.
 
2월 15일 방송된 tvN 스토리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에는 수의학자 장구 서울대 수의학교수가 출연하여 오늘의 책으로 <세상을 바꾼 동물>(아래 세바동)을 소개했다.
 
사람은 동물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는다. 동물들은 직간접적으로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주며 함께 공존해왔다. <세바동>은 동물이 어떻게 인간과 가까워졌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역사를 바꿔왔는지를 다루며 '동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역사'를 조명했다.
 
늑대를 키운 구석기 시대 인간들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구글에서 '사람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문장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개다. 그런데 놀랍게도 DNA 검사를 통한 개와 야생늑대의 유전적 차이는 0.04% 미만에 불과했다. 최근 연구된 논문에 따르면 인간이 사냥으로 잡은 고기 중 먹다남은 것을 늑대에게 나눠주다가 가축화되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세바동>에는 프랑스 남부 니스 지방의 라자레 동굴에서 발견된 늑대 머리뼈를 통하여 구석기 시대의 인간들이 지금 현대인들이 개를 기르듯 늑대를 길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설사 현대적인 반려동물의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간의 생활공간안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것. 그렇다면 개의 조상은 가축화된 늑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간은 왜 늑대를 비롯하여 소와 닭, 염소같은 가축들을 곁에 두었을까. 장 교수는 동물의 가축화로 인하여 얻는 장점들에 대하여 '안정적인 식량 확보', '사냥을 위한 도우미', '다른 동물이나 부족으로부터 안전을 얻기 위한 보초', 그리고 '정서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반려동물'로서의 역할 등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인간의 아기를 돌보듯 늑대 새끼를 돌보며 자연스럽게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친밀감이 높아진 인간의 곁에서 늑대들은 함께 머무는 가축으로 자리잡았고, 점차 오늘날의 개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개는 인간이 길들인 최초의 가축으로 추정되며, 세계 대부분의 문화권을 막론하고 오랜 시간 함께 공존해온 가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오늘날 늑대와 개는 정작 성격과 외양이 모두 전혀 다르다. 장 교수는 그 이유를 '인간의 인위적 교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바동> 본문에는 '사람들은 품종을 적절히 교배하여 가축이 적당한 크기가 되도록 통제하며 그 종의 진화와 발달에 영향을 주고 점차 표준적인 크기로 안정화된다'고 설명된다.

개가 늑대와 달리 외모와 체형이 매우 다양한 것도 인간에 의한 근친교배에 따른 품종개량의 결과라는 것. 개라는 동물은 바로 인간의 사육과 선택적 교배를 통해 인위적으로 특정형질을 조율(야생성-대인공격성 배제, 인간 의존성 극대화)한 늑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위적 교배의 영향으로 자연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들이 탄생하기도 한다. 세상에 가장 작은 개로 알려진 몰티즈 품종의 스쿠터, 세상에서 가장 큰 개로 알려진 자이언트 조지 등이 대표적이다. 개는 진화를 거듭하며 많은 유전적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동물 중 유전병이 가장 많은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진보적 성향의 수의사들은 더 이상 인간이 개의 근친교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장 교수도 본인이 직접 경험한 근친교배로 인한 부작용을 고백했다. 암컷 불독을 키우던 보호자가 영국에서 혈통이 좋은 냉동 정자를 수입해왔다며 꼭 그 정자로 자신의 반려견이 임신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탄생한 8마리 모두 기형이 발견됐다. 알고보니 정자는 바로 어미견의 할아버지 정자였고 즉 '근친교배'를 한 사실을 숨긴 것. 이러한 근친교배를 통한 기형은 후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높기에 대부분 안락사를 시켜야 했다. 미약한 기형의 경우 유전이 후대에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불임 수술을 시킨다고.
 
개가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또다른 특성은 인간에 대하여 친절하고 사교적이며 충성스럽다는 것.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브리지트 폰홀트 생태 진화생물학과 조교수에 따르면 인간에게서 발생하는 '윌리엄 증후군(William's Syndrome)'과 관련있는 유전자 변이가 개의 사교성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윌리엄 증후군은 1961년 뉴질랜드의 JCP 윌리엄 박사가 발표한 인간의 유전장애 중 하나로 2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사회성은 좋지만 지능이 떨어지고 건강과 외모에 장애가 나타나는 증상이 특징이다. 사람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친사회적인 특성 때문에 반사회적인 사이코패스나 자폐증과는 정반대의 개념에 있다.
 
윌리엄 증후군은 인간 염색체 7번-개염색체 6번의 결함에서 비롯되고 이 두 결함은 서로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금까지 개가 가축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에 길들여졌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면, 개들이 인간의 좋은 친구가 되도록 유전적으로 선택받은 것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장 교수는 "개의 유전적 결함이 인간에게는 최고의 친구를 얻는 축복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축화된 동물이 미친 영향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장 교수는 자신의 반려견이자 세계 최초의 복제견인 스너피를 출산한 심바의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심바는 저에게 반려견이었지만, 인류 역사상 최초의 복제견을 출산하여 복제 배아 연구에 큰 의미를 남긴 역사적인 개"라고 설명했다.

전세계적으로 대형 포유류 148종 중 가축화된 포유류는 불과 14종이었다. 이 중 특정 지역에서만 가축화된 9종을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 가축화된 동물은 소, 양, 염소, 돼지, 말 등 5종 뿐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가축화된 동물은 가축화된 이유가 모두 비슷하고, 가축화될 수 없는 동물은 그 이유가 각기 다르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을 발표했다.
 
<세바동>은 다이아몬드의 연구를 인용하여 식성, 성장속도, 번식, 성격, 공포심, 사회적 구조라는 가축이 되기에 적합한 여섯 가지 조건을 설명했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가축이 될 수 없다고. 안나 카레니나 법칙에 따르면 가축이 되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천성적으로 사람을 잘 따라야하며 사육 환경에 대한 욕구가 높지 않아야한다는 것, 또한 인간에게 우유나 달걀, 고기들을 제공해야 하고, 성질이 까다롭지 않아 사육 및 관리가 쉬워야한다는 것. 그리고 번식이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장 교수는 "번식은 동물을 가축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강조하며 "인간은 동물의 번식주기를 체크하여 개체수를 조절하면서 동물의 가축화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가축화된 동물 중에 인간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동물은 단연 소다. 옥수수가 신의 작물이라면, '소는 신의 가축'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염제는 농업을 관장하는 신으로 소의 머리를 하고 손에는 이삭과 채찍을 든 모습을 하고 있다. 소는 인간의 농사일을 도우며 농경문화의 정착과 확산에 크게 이바지했다. 
 
개나 소가 인간에 이로운 대표적인 동물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는 쥐가 첫 손에 꼽힌다. 특히 곰쥐는 벼룩과 함께 흑사병의 매개체로 유명하다. 페스트균은 야생설치류에게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지만 벼룩을 통하여 곰쥐에게 감염되면서 무서운 속도로 전염성을 띠게 된다. <세바동>은 14세기에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이 바로 쥐에서 벼룩을 거쳐 인간을 덮쳤다고 설명한다. 흑사병은 당시 엄청난 전염성과 치사율로 전세계 인구의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장 교수는 흑사병 시대와 오늘날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현대의 풍경이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하는 현대인들처럼, 흑사병 당시에도 전염을 막기 위하여 가면과 장갑, 긴 옷을 착용하여 온몸을 가리는 것이 보편화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가 된 검역과 자가격리도 흑사병이 시초라고.

그런데 많이 알려진 선입견과 달리 흑사병은 오로지 쥐를 통해서만 전염된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13세기 당시 종교적 이유로 쥐를 잡을 수 있는 고양이를 인간들이 대량 학살한 것이 흑사병을 퍼트린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장 교수는 2009년 중국 페스트 사태를 언급하며 놀랍게도 당시 쥐가 아니라 고양이가 흑사병의 매개체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14세기 흑사병 대유행 당시에도 페스트균에 감염된 설치류를 사냥한 고양이가 오히려 설치류보다 더 위협적인 매개체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 이를 두고 장 교수는 책의 주제와 연결지어 "동물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류의 역사는 동물과 함께 발전해왔다. 동물의 가축화는 긍정과 부정적인 면모를 모두 포함한다. 식량과 노동력의 제공 등이 순기능이라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원균들은 역기능이라고 할수 있다. 홍역, 천연두, 결핵, 에이즈 등 대표적인 전염병들은 모두 가축에 서식하는 병원균의 돌연변이종에서 탄생했다.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인간의 신체에 적응하는 병원균도 진화하기 시작했다. '인수공통전염병(anthropozoonoses)'은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같은 병원체에 의해 전파되고 증상이 발생되는 전염병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페스트(쥐), 광우병(소), 신종플루(돼지), 메르스(낙타), 그리고 코로나19(박쥐)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종감염은 대부분 인간과 동물이 함께 어우러져있는 공간에서 쉽게 전이된다.
 
하지만 장 교수는 광우병과 그 기원이 된 18세기 스크래피(양들에게 유행한 뇌 전염병)의 사례 등을 언급하며, 이러한 전염병에는 결국 동물보다 '인간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지적한다. 가축 사육이 보편화되고 인간들이 단지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집착하면서 동물들에게 값싸고 저질스러운 사료를 먹이며 여러 가지 질병을 초래했다.

특히 당시 영국에서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먹인 것은, 잔혹하게도 사람으로 치면 인육을 먹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두고 장 교수는 인간에게 광우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쿠루병의 사례와 비교하며 그 원인이 아프리카의 식인 풍습에서 기원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설명했다.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또한 장 교수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될 확률은 극히 낮다"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하여 "진단도 어렵고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라며 경각심을 드러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인간광우병이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위험한 전염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늘날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매우 비위생적인 환경을 통하여 여러 종의 동물들이 거래되고 있는 현실은, 언제든 또다른 인수공통전염병의 등장을 우려하게 한다.
 
하지만 장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동물들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동물은 우리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자,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연구해나가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치료하는 연구를 통하여 사람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도 한다.

장 교수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언급하며 당시 반려견 사이에 호흡기 질환 증세가 먼저 유행했다며 그때 동물들에게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좀더 빨리 원인을 발견하고 인간에 돌아갈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워했다.

지금도 외국에서는 동물들의 질병을 수집하고 인간과의 공통점을 찾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코로나19만 해도 동물들 역시 감염되는 질병이지만, 사람에 비해서는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장 교수는 수의학은 동물의 질병을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동시에 그를 통하여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유전자를 다루는 생명과학 기술발달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오늘날의 동물은 그저 짐승으로서의 동물이라는 분류를 넘어, 인간과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에 가깝다. 동물을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해하며 존중할 때, 인류가 아직 찾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의 해답을 찾아주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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