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과 장예모
 
1966년부터 만 10년 동안 중국을 휩쓴 문화대혁명의 광기(狂氣)는 1976년 9월 9일 모택동의 사망과 10월 6일 4인방의 체포로 종언을 고한다. 중국의 영화 인재를 길러내던 북경 영화학교도 1966년 폐교되었다가 1978년 다시 문을 연다. 그때 영화학교에 입학하여 1982년도에 졸업한 일군의 영화감독을 가리켜 5세대 감독이라 부른다(기자주 : 1949년 10월 1일 개국한 중국 인민공화국 이전에 활동한 감독을 1세대, 1949년부터 1965년까지 영화를 찍은 감독을 2-3세대, 1966-76년까지 영화를 공부했지만, 제대로 영화를 찍지 못하고, 그 후에 영화를 찍을 수 있던 사람들을 4세대 감독이라 일컫는다).
 
진개가(陳凱歌)와 장예모(張藝謀)가 대표하는 5세대 감독의 의미 있는 첫 번째 영화로는 진개가가 1982년 연출한 <황토지>가 있다. <황토지>는 문화대혁명 이후 최초로 해외에서 찬사와 주목을 받았던 중국 영화다. <황토지>는 1984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함으로써 유럽 영화계에 제5세대 영화의 작가주의를 예고한 셈이다.
 
<황토지>의 촬영감독으로 영화 인생을 시작한 장예모는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아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받는다. 1992년 <귀주 이야기>로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 1994년 <인생>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1999년 <책상 서랍 속의 동화>로 그는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다시 받는다.
 
장예모의 변신
 
장자이(章子怡)를 등장시킨 <집으로 가는 길>(1999)은 대작 <타이타닉>(1998)을 무색(無色)케 하는 순애보로 심금을 울린다. 장예모는 이 놀라운 영화에도 현대 중국의 비극적인 사건인 '대약진운동'을 부설한다. 눈이 밝고 신중한 관객만 포착할 수 있지만, 맑고 지극한 사랑을 헤살놓은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매설해놓은 그의 역량은 대단하다.
 
장예모가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하여 1990년대를 풍미한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은 현대 중국의 복잡다단한 사회-정치문제의 천착이 바탕이다. 하지만 2002년 <영웅>을 기점으로 그의 영화 세계는 일대 변모를 경험한다. 국가주의, 대국주의, 천하주의로 무장한 그는 2008년 북경 올림픽의 예술 총감독으로 기용됨으로써 어용 논란을 낳는다.
 
그가 연출한 영화 <연인> (2004), <천리주단기> (2006), <황후화> (2007) 등도 서서히 관객의 뇌리에서 사라져간다. 화려한 색감과 고혹적인 줄거리 전개에도 관객은 거장의 작품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이후 장예모는 남경대학살로 주제를 전환한다. 2013년에 개봉된 <금릉의 13 소녀>가 그것이다. 중국인들의 잠들은 애국혼을 일깨운 것이다.
 
장예모는 2014년 <5일의 마중>으로 다시 현대 중국사로 귀환한다.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5일의 마중>은 매달 5일 정거장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격변의 세월 속에서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 여인의 한을 담은 영화 <5일의 마중>. 그렇게 장예모는 다시 문화대혁명과 대면한다.
 
<원 세컨드>의 시간과 공간
 
1초라는 뜻을 가진 제목 <원 세컨드>는 영화의 속성을 적실하게 잡아낸다. 영사기 렌즈가 포착하는 찰나의 순간이 모여 만들어내는 1초의 시간이 생의 본질을 현현한다. 1974년 문화대혁명이 끝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중국 북부의 내몽구 자치구가 영화의 시공간이다. 고비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고, 거기서도 사람은 삶의 질긴 끈을 이어간다.
 
딸이 영화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영화를 보려는 인간 장주성. 모자를 꾹 눌러쓰고, 추레한 입성의 장주성이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고 깊다. 그런 그에게 영화필름을 도둑질하다가 발각당하는 처녀 류가녀. 필름이 들어있는 통을 두고 두 사람이 벌이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사막과 비포장도로와 거리 곳곳에서 전개된다.
 
그들을 이어주는 인물이 마을에서 영화 상영을 도맡고 있는 기사 판영화다. 대단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영화를 틀어주는 판영화. 한 달에 한 번 상영되는 영화를 보려고 마을 사람들은 축제일처럼 장사진을 이루고 몰려든다. 거기서 사건이 벌어지면서 관객은 50년 전 과거로 깊이 소환되어 끌려간다. 아, 저 때는 저랬구나, 하면서!
 
딸과 동생 그리고 아들
 
장주성은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사소한 싸움에 휘말려 옥살이하게 된 주성. 어린 딸이 여덟 살 때 수감(收監)되어 지금은 열네 살이 되었으니, 어느새 6년 동안 그는 죄수로 살아온 셈이다. 딸이 눈에 밟힌 그는 단 1초를 위해 탈옥을 결심할 정도로 결기가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딸을 낳아준 여인과 그의 서사는 흔적도 없다.
 
언뜻 보면 불량한 사내아이를 연상시키는 류가녀는 부랑자처럼 거리를 떠돈다. 승냥이나 들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거친 모습의 류가녀. 그녀가 필름에 한사코 집착하는 까닭은 나이 차가 아주 많은 남동생의 소원 때문이다. 당시 크게 유행했던 전등갓의 재료가 영화필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부모 없는 고아로 세상을 떠도는 류가녀.
 
어린 시절 잘못된 이후로 머리가 조금 모자란 인간으로 성장한 판영화의 아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영화필름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크게 훼손한 것도 모른 채 아버지를 찾아온다. 온갖 핀잔과 욕지거리에도 해맑게 웃는 아들에게 화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영화 기사. 이들 세 사람이 영화의 관계와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다.
 
문화대혁명과 영화
 
흥미로운 사실은 장주성의 딸이 어떻게 영화에 나온다는 것인지, 하는 문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상영된 영화 시작 전에 중국판 <대한 늬우스>의 주인공은 단연코 모택동이다. 환한 미소로 인민들의 자애로운 아버지를 몸소 연출한 모택동. 장주성의 딸은 그런 선전영화에서 딱 1초 동안 화면에 얼굴이 나온다. 그것을 보고 또 보고 다시 보는 장주성. 만날 수 없는 딸의 모습을 화면으로나마 확인하고자 하는 아버지.
 
<원 세컨드>가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은 마을 주민들이 보여주는 영화를 향한 놀라운 사랑과 경배다. 망가진 필름을 물로 정성스럽게 닦아내고 헝겊으로 닦고, 다시 부채질하여 말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우상숭배가 따로 없다. 지난달에 본 영화를 다시 틀어도 절대 싫다 하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영화광인 셈이다.
 
모택동은 영화를 향한 인민들의 열망을 이용해 한편으로는 정권 유지에 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 유지에 써먹은 문예 정책의 대가다. 중일전쟁 시기 일제와 싸우는 영화를 보면서 마을 주민들이 애국주의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축제이자 장날이지만, 동시에 민중의 영혼과 정신을 잠식하는 마약이다.
 
저 장쾌하고 부드러운 고비 사막을 어이하랴
 
<원 세컨드>에서 우리는 촬영 전문가 장예모의 미의식을 확인한다. 초창기부터 일관되게 자신만의 놀라운 색감을 선보인 장예모.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왕가위 감독의 감각적인 색(色)의 연출보다 담대하고 야성적인 색의 대가 장예모가 이번에는 '선(線)'으로 우리를 매료한다. 그것은 고비 사막의 춤추는 듯한 놀라운 선들의 유영으로 드러난다.
 
사막은 부드럽게 물결치듯 이리저리 흐르고 굽이치며 때로는 물고기 비늘처럼, 때로는 공룡의 등처럼 때로는 잔잔한 바다의 물살처럼 그려진다.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바람과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놓은 것 같은 고비 사막의 장관(壯觀) 속에서 잠시 부유하는 인간군상의 작은 이야기들이 조용히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날 듯하다가 사족(蛇足)처럼 2년 후의 장면을 그려내 보일 때 관객은 홀연히 깨우친다. 그래, 이 영화가 여기서 끝난다면 조금은 허망할 것이야!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가 가뭇없이 스러지고, 대륙의 삶이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점에 우리는 장주성과 류가녀의 맑고 티 없는 얼굴을 사막과 대비해 바라볼 수 있다.
 
고희(古稀)가 넘어선 나이에 현대 중국의 굴곡지고 어두운 역사와 정치를 가지고 돌아온 장예모의 영화 세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하다. 때마침 북경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숱한 판정시비가 불거지고, 문화공정으로 주변 국가들이 불편한 지금, 그가 중화 민족주의 같은 발등의 불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것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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