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은 전공자만 할 수 있는 부분은 '동인'이 하고 쉬운 부분은 '고블린파티'가  팔로만 춤을 준다고 생각하고 연주를 한다.

해금은 전공자만 할 수 있는 부분은 '동인'이 하고 쉬운 부분은 '고블린파티'가 팔로만 춤을 준다고 생각하고 연주를 한다. ⓒ 옥상훈


25현금, 피리, 대금, 해금, 장구가 무대의 오른쪽에 사선으로 놓였다. 검은 옷을 입은 다섯 연주자는 '꼭두각시'의 음절을 하나씩 바꿔가며 읊조린다. 선율이라 하기엔 2프로 부족한 리듬에 맞춰 반대쪽에선 세 안무가가 사운드에 맞춰 춤을 춘다. 총 6장으로 구성된 공연은 연주자와 안무가들이 뒤섞여 신명나게 놀이판을 벌인다. 무용수가 연주자를 조종하고 연주자가 무용수를 조종하는, 양자가 내부들간 정체 갈등을 표현하는 상호주관적인 관계를 구현하는 장으로 이어진다. 다른 장르의 객체를 조종하는 이 공연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누군가에게 움직임을 당하는 '수동성'을 이야기한다. 음악과 무용이 대칭을 이뤄 무대를 이끌고, 몸짓과 소리는 객석을 압도한다. 알 수 없는 비언어로 연극적 요소를 드러내는 작품. 대사는 없지만 내러티브를 전해들은 느낌이다.

지난 11일, 12일 양일간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된 <꼭두각시>는 전통음악의 '음악동인고물'과 현대무용의 '고블린파티'가 손을 모아 제작했다. 음악과 무용의 장르적 협연이 정점에 달했고, 전통과 현대의 시대적 간극을 초월한 완벽한 컬래버레이션. 이번 작품을 위해 동고동락했던 두 단체는 이번 초연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고생하며 달려왔을까. 이전에도 음악과 무용의 협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인 적이 있었겠지만, "동등한 협력의 위치에서 공동제작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이렇듯 <꼭두각시>는 이전의 사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목표에서 출발했다.

전통음악의 연주, 작곡, 이론 전공자들로 구성된 '음악동인고물'은 전통창작 분야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려 '공연형 다큐멘터리(Staged Documentary)'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척한 단체다. 여기에 '한국의 도깨비를 닮은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모임인 '고블린파티'는 컨템포러리 댄스에 기반해 관객과 소통을 중요시하는 단체다. 두 팀이 공통으로 주목했던 '꼭두각시'의 종속적 관계는 "인간이 기계를 작동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계가 인간을 부리는 것인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가속도를 내고 있는 미래를 대비한 작품이다. 그래서 전통음악의 입으로, 현대무용의 몸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모아 제작했다. 

"우리의 목표는 도전입니다."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전통 부문으로 최종 선정된 이후 약 1년간 숙고의 시간을 거쳐 어렵게 탄생한 초연작에서 힘을 쏟은 부분은 '도전'이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들이 무모한 실험을 보기 위해서 호기심에 찬 얼굴로 오진 않았을텐데. 아무래도 전통공연과 현대무용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구축하고 있는 두 단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듯 그들은 50분간 무대에서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토해냈다. 정확한 딕션을 전달하는 내러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완성된 화음으로 선율을 전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8명이 추는 몸짓의 과반수 이상은 아마추어에 가까울 정도로 빈틈까지 보였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이후 깊게 풍기는 여운은 어느 마스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기술점수로 완벽함을 채점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위대한 도전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조종하고, 조종당하는 인고의 시간들 
 
 다른 장르의 객체를 조종하는 <꼭두각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누군가에게 움직임을 당하는 수동성을 이야기한다.

다른 장르의 객체를 조종하는 <꼭두각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누군가에게 움직임을 당하는 수동성을 이야기한다. ⓒ 옥상훈

 
20분짜리 쇼케이스가 완성된 이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 50분짜리 초연작으로 오르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물론 음악과 무용 등 각자 영역에서 생업에 종사하다가 시즌이 다가오면서 시간을 쪼개 연습했단다.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이번 공연을 보는 재미입니다"라고 소개할만큼 예전에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현대무용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는 임진호 안무가는 "작품의 포인트가 (자신이 잘하는) 무용수의 몸짓이 아니라 연주자, 오브제가 추는 춤(안무)"이라고 언급할 정도다. 그렇게 <꼭두각시>는 무용수가 연주를 하고, 연주자가 무대 중앙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공연이다. 이 작품에 대한 완성도를 말하려는 예의없는 관객은 없다. 아니 그것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뿐. 우리는 다른 부분에 주목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우선, 50분을 마치고 객석을 나오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연습을 얼마나 했을까"라는 궁금증과 (인고의 시간을 견뎌왔던) 출연진에 대한 걱정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협연을 봐왔지만, 이 정도 수준의 컬래버레이션은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서로 다른 장르에 깊숙이 개입해서 주인공을 대체하는 것을. 무용과 음악, 몸짓과 소리, 서로 다른 비언어적 요소가 충돌(?)한다. 하지만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낯섬을 인정한 채 누군가의 조종을 받으면서 공연은 정점에 달해간다. 

"만약 (서로 다른 장르가) 깊게 개입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많이 봤던 공연이었을 거예요. 그럴려면 굳이 왜 모여서 하나요? 서로 다른 활동은 어차피 어려운데 말이죠. 그냥 이것을 도전해보는 것이 목표였어요." (음악동인고물 이태원 연출가) 

공연은 역시 쉽지 않았다. 관객이 한 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고, 무대 위에서 땀 흘린 출연자도 작품을 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무용에서는 "어떻게 음악하는 사람의 몸을 자기들과 함께 섰을 때 무용적으로 말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이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와 함께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여기엔 반대쪽도 마찬가지다. 

"선택할 수 있는 음악적 양식, 언어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전통적이거나 전문적인 부분이었다면 우리는 못했을 거예요. 그것은 전문가들만 하는 것이니까요." 

덧붙여 음악동인고물의 이태원 연출가는 무조(無調)적(뚜렷한 조성이 없어 장조나 단조 등의 조를 따르지 않음)이지만, 약간은 랜덤하고, 자유로운 것을 기획했다. 그래도 음악이 될 수 있는 일정한 흐름을 만든 이후  그것을 앞뒤 맥락 어디에 놓는 것을 고민했다. 완벽한 깊이가 아니라 관객이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거리를 둘 정도로. 반면에 무용은 몸으로 직접 뛰는 것이다보니 훈련이라기 보다는 많은 연습이 필요했던 공연으로 기억했다.

"어렵다기보다 다른 장르를 경험하다보니 재미있어서 (그동안 갇혀 지냈던 자신의 장르로부터) 해방된 느낌이랄까요. 마치 엄마한테 혼나다가 친구들하고 놀이동산가서 신나게 노는 기억이랄까. 자식을 질투하는 엄마의 느낌이 드네요.(하하)" 

음악감독의 위치로서 고블린파티의 음악적 퍼포먼스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비음악적 전문가가 들어와서 자신의 영역에서 활동한 것에서 궁금했다. 그에게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됐는지, 아니면 어느정도 만족했는지 물었다.

"음악이 아니라 일종의 사운드였어요. '만족'을 얘기하기는 어려워요. 만족은 기대를 해야 만족하는 건데, 그런 기준은 아예 없었거든요. 이것은 무용수가 악기를 잡고 소리를 내는데 서로 반씩 연주를 하는 것이거든요. 해금의 경우로 설명을 하자면, 전공자만 할 수 있는 부분은 '동인'이 하고 쉬운 부분은 '고블린파티'가  팔로만 춤을 춘다고 생각하고 알려줬단다. 만족하기보다는 그것을 재미있어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의 정점은 한 악기 내에서 두 사람이 협연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섯 악기들 중 조금의 여유도 없이 티키타카하는 과정이다. 얼마나 숙달된 과정을 거쳤을까. 5명의 연주자와 3명의 안무가들이 한데 어울려 8명이 완벽하게 앙상블을 이루는 모습에서 감탄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여느 장르에서 별로 없는 큐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려워보일 수도 있는데, 장난으로 편하게 생각하면 돼요. 음악인은 무용수를, 무용수는 음악인을 대할 때, 놀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면서 해결했어요." 

꼭두각시… 그것을 표현하는 오브제 

어떤 것으로부터 조종을 받는 객체를 '꼭두각시'라 부른다. 이번 공연은 이런 수동적인 성격을 무대 위에서 재미있게 구현한 공연이 소개하고 싶다. 꼭두각시는 인형이라는 뜻을 가졌고, 다른 의미로는 초등학교 때 집단체조, 허수아비, 앞잡이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중의성'을 드러낸다. 이렇게 의도한 이유는 하나의 객체에 여러 의미가 담기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이걸로도 보일 수 있고, 저걸로도 보일 수 있는 상태를 의도한 것이다.  

"오히려 약간 의도했어요. 해골이 처음에는 꼭두각시로 보였다가, 장구치는 친구랑 인위적으로 듀엣을 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인위적인 짓을 하는가, 누가 웃고 누가 울고 이런 과정 속에서 해골은 수동적인 꼭두각시로 보였다가 장구를 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을 부리는 못돼먹은 대장으로 보이죠. 이런 다양한 해석을 관객이 느낀다면 정말 고마울 뿐이죠." 

꼭두각시는 형식적인 의미에서  '춤'(현대무용)이기도 하고 '노래'(전통음악)이기도 하다. 이런 이질적인 두 장르가 한데 섞여 신나게 벌려보는 '놀이'이기도 하다. 반면, 내용적 면에선  어떤가. 꼭두각시는 '꼭두'의 원래 의미를 담아 '장례'의 상징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순결을 강조했던 '여성'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조정 당하는 마리오네트 등 '인형'을 뜻하기도 한다. 무대 위에선 무용수, 연주자 가릴 것 없이 모두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놀기에 바쁘다. 움직임과 소리 등 비언어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즉각적인 메시지를 극적 요소로 다가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실험적 시도, 그 이후의 세계를 꿈꾸다.
 
 공연을 마치고 분장실에서 인터뷰를 한 이태원 연출가

공연을 마치고 분장실에서 인터뷰를 한 이태원 연출가 ⓒ 필립리

 
공연이 지향하는 여러 해석에 대한 의미를 연출자에게 묻는 것은 의미 없어 보인다. 무대 위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수많은 메시지에 대한 해답을 강요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어려운 수학문제를 앞에 두고 맨 뒤에 정답을 먼저 꺼내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확정짓지 않을 뿐. 서로 다른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공연. 이를 위해 이 연출가는 "복잡한 영화도 한 번 봐서는 안보이던 것이 두 번째는 보일 때가 있지 않나요?"라며 다양성을 존중했다. 

마침내 무대에서 완성된 이후 다음에 예정된 버전이 궁금했다.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가진 공연. 이 공연을 본 해외 관계자는 "이렇게 민주적인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는 극찬과 함께 정해진 포맷대로 연습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르에 대한 몰입감이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받았다는 해석으로 들린다. 이런 뉘앙스에 대해 이 연출가는 이렇게 바람을 드러냈다. 

"예정됐다기 보다 닥쳐오겠죠? 재공연 기회가 생긴다면 조건이 있을 거예요. 극장이라는 물리적 규모, 여러가지 장치들을 변경시켜야 할 것이고 이야기가 쏟아내는 말들을 하나에 깨끗하게 담기는 어려울 겁니다. 생각 자체를 공식화해서 이건 이거다라고 생각하진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될 것도 아니고요. 대신에 오늘 했던 것 중의 대부분은 가져갈 거예요. 그러나 '칼' 같은 구상적인 소재는 현대적인 일상의 어떤 것으로로 교체될 수도 있어요. 여기에 분량에 따라서는 극 속의 극처럼 만들 수도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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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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