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장르에 속한 작곡가가 아니라 그냥 작곡가이고 싶어요."

여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명의 작곡가가 모였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듯 같은 목소리를 냈다. 졸업 이후 주로 상업 뮤지컬에 참여한 성찬경(33) 작곡가와 국공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을 이어온 김영상(30) 작곡가. 걸어온 길은 달라보여도 자신이 원하는 작곡가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고 입모아 말했다. 옷 매무새, 말하는 방식, 표현기법, 걸어온 길, 작품의 주제 등에서 극대칭점을 보았던 필자는 앞으로 걸어갈 길도 다를 것이라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온 성 씨와 국악에 기반을 둔 김 씨는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을지 궁금했다. 

오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진행하는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에 참여하는 이들은 국악 부문을 빛낼 다섯 작곡가들 중 일부이다.  대한민국 창작음악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아창제>는 지난 2007년에 시작해 올해로 13회째를 맞는다. 특히 이번에 공개되는 작품들은 "관현악기법, 음향, 작품의 구조 등 각 작품에서 창작의도를 잘 표현했으며, 협연곡의 경우 협연자의 기량을 최대한 발산했다"고 평가를 받았다. 원일이 지휘하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진행되는 <아창제>는 '금희악기점'(성찬경), '곶'(김영상), '어린 꽃'(손다혜), '폭포수 아래'(이정호), '쇄루우(灑淚雨)'(홍민웅) 등 5명이 참여한다.

그동안 서양의 고전음악이 일색이던 한국음악 시장에 작곡가와 지휘자, 연주자들이 창작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적인 창작음악축제. 이 행사는 작곡가의 혁신적인 창작력과 개척정신이 반영된 작품을 발굴해오면서 한국 창작관현악의 산실 역할을 해왔는데, 양악부터 국악에 이르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창작음악제로 자리매김했다. 행사를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이 두 명의 젊은 작곡가를 지난 10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가의집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작곡가는 어떻게 비슷하고 다를까
 
 제13회 아창제에 참여하는 김영상(왼쪽) 작곡가와 성찬경 작곡가

제13회 아창제에 참여하는 김영상(왼쪽) 작곡가와 성찬경 작곡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성찬경(33) 씨는 작곡과를 졸업한 이후 20대에 콩쿠르와 공모전 참여했다. 전작인 '니진스키'를 비롯해 최근 3년간 뮤지컬에 몰두했다. 약 7년간 영화음악, 음악극 등 대중적인 접근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청중을 만난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대중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그가 <아창제>의 국악 부문에 지원한 이유가 궁금했다.  

"아창제는 많은 작곡가들에게 꿈과 같은 존재에요. 7~8년 전부터 출품하고 싶은 생각을 꾸준히 해왔는데, 이번에 지원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관현악곡 이다보니 호흡이 길잖아요. 마음을 먹고 책상에 앉아야 하는데. 비로소 실천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사로 공부할 때, 지도교수였던 전통예술원 임준희 원장이 그를 응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시작한 이 작업이 성 씨에게는 첫 국악관현악 작품이 된 셈이다. 
 
"지금까지 내러티브가 기본인 뮤지컬을 해왔는데, 이번 작업은 음악을 틀면 이미지와 서사가 그려진다 해도 결국엔 추상적이잖아요. 많은 분들이 저를 소개할 때, 뮤지컬 작곡가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그냥 작곡가이고 싶어요." 

그는 특정 장르에 속한 뮤지컬 작곡가가 아니라 그냥 작곡가로 보이고 싶다며, 한 장르에만 국한하지 말고 자신의 색깔을 다양하게 낼 수 있는 작곡가로 보이고 싶었다. 

반면, 김영상(30) 씨는 국악과를 졸업하고 5년간 국악 콩쿠르와 경연대회, 공모전에 참여했다. 특히 영화, 게임, 무용, 영상 등 다방면에서 작업을 해왔지만 전통악기를 활용한 국악이 포함된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여기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다양한 연주무대를 작곡하면서 국악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았다. 

"저도 국악과로 첫길을 걸었을 뿐이지 어떤 악기를 생각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요. 주로 초연작을 출품하는 경연대회에 참여해왔는데, 지금까지 총 5곡의 국악관현악곡을 썼습니다. 그런데 저도 성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생각이 비슷해요." 

대중성을 쫓은 vs. 국악에 중심을 둔... 그들이 걸어온 길

지난해 8월, 성 씨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지휘 원일)가 제작하는 창작뮤지컬 '금악'의 작곡가로 참여했다. 여기에는 원일 작곡가를 포함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4명이 참여했다. 사단을 구성한 것은 원일 감독였지만, 그가 이 작품에서 맡았던 역할이 궁금했다. 

"뮤지컬 등장인물 중 저는 상징적인 인물을 맡았어요. 욕망이 현실화된 존재이죠. 인간은 아닌데 사람에게 다가가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 그래서 반주도 서양적이었고, 반음계가 많았어요. 합주할 때 편곡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대중적이었어요. 노래도 뮤지컬에 맞는 창법이었고요." 

반면, 김 씨는 10명의 젊은 국악 작곡가를 선정해 관현악을 짧고 임팩트있게 하는 보여주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3분관현악 프로젝트'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첫선음악회'의 작품 공모에 선정되어 서울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앞선 것보다 조금 대중적으로 접근하며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 음악을 쓴 게임음악에도 참여했지만 결국엔 같은 결이라고 강조했다.

활발한 도시 vs. 한적한 시골… '장소'에서 영감을 얻다. 
 제13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의 국악 부문이 오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제13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의 국악 부문이 오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 아르코한국음악창작음악제조직위원회

 
이번 연주회에서 두 작곡가의 공통점을 굳이 뽑자면 음악적 영감을 장소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1921년 지금의 종로 2가에 세워진 '금희악기점'에서 출발한 성 씨와 제주도 화순 곶자왈의 풍경을 담은 김 씨.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현대적인 요소가 많은 종로의 한복판과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생태는 서로 다른 음악적 색깔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뿐만 아니라 성 씨는 100년 전, 당대의 사람들의 느낌을 상상하면서 판타지를 담았다면, 김 씨는 바로 이 자리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다르다. 
  
100년 전에 조선인이 경영했던 유일했던 악기점. 당대 대중음악을 선도하는 역할을 한 곳이 '금희악기점'이다. 거리에는 지나가는 행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거리에는 축음기를 틀어놓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는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 노래를 들으면서 흥얼거린다. 지금으로 치면 방송의 멜론차트와 같은 곳. 새로운 노래가 알려지고 퍼지는 장소다. 이런 음악적 상상을 펼친 성 씨는 철저하게 '대중성'에 키워드를 꽂았다. 

"제 공연의 특징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거예요. 작곡가가 직접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의미 있어요. 거리에 축음기를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줬듯이. 노래 보급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반면에 김 작곡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제주도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 그중에서 '곶자왈'에 꽂혔는데, 숲을 의미하는 '곶'와 풀이 우거진 덤불을 뜻하는 '자왈'의 뜻을 담아 자연 생태계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재작년 가을에 우연히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생태 숲을 발견했어요. 거기에서 압도된 생태 숲에서 생동감 있고, 덤불도 우겨져 있는 바람, 새소리, 산책로를 걸으면서 강한 인상이 다가오더라구요. 그 기록을 가지고 음악을 착수했습니다. 곡은 조용한 부분도 있는데, 생동감과 흡입력이 있는 것 같아요."

창작과정은 달라도 '꿈의 무대'였어요.
 

두 작곡가는 창작초연의 경력과 작품의 창작기간에도 차이를 보였다. 축적된 에너지가 분출된 것인지 김 씨는 공모 마감에 맞춰 작품을 쥐어짜내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타이트한 일정에 맞춰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쉽지 않아보였지만 그동안 다섯 작품을 만들었던 노하우를 살려 이번 작품을 완성하는데에는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작품을 단 시간에 집중해서 만들어내는 놀라운 역량을 가지지 않았나 추측한다. 여기에 성 씨는 국악관현악곡의 입봉작으로 첫 출발을 알렸기 때문에 남다른 창작의 고통을 고백했다. 자신도 나름대로 짧은 창작기간을 거쳤다고 자신했지만, 김 씨의 일주일을 듣고선 이내 마음을 접었다.

"콘셉트를 잡기 위한 구상을 포함해 한 달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너무 즐거웠어요. 아마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서 행복한 거 같아요."  

국악과 양악을 아우르는 관현악 대표축제로서 13년 동안 독보적인 역할을 해온 <아창제>에서 약 7: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됐다. 이들이 오래 전부터 자신의 꿈이라 밝힌 이 축제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물었다. 

"7~8년 동안 나가고 싶어서 굳게 마음 먹고 준비했는데. <아창제>는 제게 인생의 목표입니다. 다음 목표는 다시 선정되는 것이죠.(하하) 그런데 진짜 좋은 것은 더 많은 악단에게 알려져서 그 악단이 연주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성찬경)  

"아창제는 꿈의 무대입니다. 개인적으로 큰 무대이다 보니, 어떤 음악을 선보여야할까. 어느 만큼 음악적 역량, 어휘를 실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작곡가의 잠재적인 역량을 키워서 표현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고요. 내가 이정도까지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실험해볼 수 있겠네라고.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표현방식,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일지에 대한 실험을 해봤습니다." (김영상)


서로에게 묻고 싶은 단 하나의 질문은 무엇인가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집에서 포즈를 위하는 성찬경(왼쪽) 작곡가와 김영상 작곡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집에서 포즈를 위하는 성찬경(왼쪽) 작곡가와 김영상 작곡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터뷰를 마치면서 서로에게 묻고 싶었던 하나의 질문을 던질 기회를 줬는데 그들은 공통적으로 서로의 무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톡톡 튀는 말투, 1920년대 패션왕 처럼 세련된 옷으로 꾸민 성 씨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이에 반해 조용한 말투와 잔잔한 감성을 보여주는 김 씨는 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마치 겉은 부드럽고 안은 단단한 외유내강의 모습으로. 인터뷰를 마치며 그들에게 알고 싶은 단 하나의 질문을 물어보니 이렇게 말했다. 

"무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서정적이거나 역동적입니다. 그런 다양한 것들이 한 곡 안에서 어우러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김영상)

"저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보다는 세련됨을 추구하는 작곡가입니다. 이 말이 무엇인지 곡을 들으면 알 거예요. 철학적이고 혁신적이며 새로운 기법은 없지만 제가 자부하는 것은 철저하게 대중의 감각입니다. 그리고 최다관객 앞에서 공연을 해보는 경험이 너무 뿌듯해요.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합니다. 많은 대중을 만나기 때문에 어떻게 좋은 음악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성찬경)


<아창제>는 작곡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깃든 작품을 동시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축제이다. 이를 통해 작곡가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연주자에게는 창작곡 연주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미래의 한국관현악의 튼튼한 디딤돌로서 '오늘의 우리음악'의 궤적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초연에 600만 원, 재연에 100만 원이 제공되며, 국내 최고수준의 전문연주단체와 함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다.

또한 공연실황 음원과 영상도 제작한다. 아카데미 그래미상 수상자인 사운드미러 코리아를 통해 고음질 음원으로 녹음해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로 감상할 수 있다. 수준 높은 작품은 향후 해외 콩쿠르 지원 등 작곡가들의 예술활동 확장을 위한 발판이 된다. 각 부문 3회까지작품 당선이 가능하며, 3회 당선 시 우수작곡가로 임명과 작품을 위촉해 지속적인 창작활동의 모범을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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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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