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문학작품이 흔히 수미상관 구조를 취한다. 명시적인 수미상관이 있는가 하면, 암시적인 수미상관도 있지만 주제의식을 또렷하게 해주고 화룡점정처럼 전언을 뾰족하게 모아준다는 점에서 효과가 동일하다. 물론 잘 된 수미상관에 해당하는 얘기다. 처음과 끝이 닮았다고 모두 성공적인 구조라는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

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쿰댄스컴퍼니 서연수 대표의 안무로 무대에 오른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도 수미상관 구조를 취한다. 문학과 달리 춤공연은 수미상관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는데,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에서는 사다리라는 오브제를 활용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장면

▲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장면 ⓒ 쿰댄스컴퍼니

 
막이 오르면 남자 무용수가 보통 A형 사다리라고 하는 발판사다리를 들고 등장하여 무대 오른편에 설치한다. 남자 무용수 혼자 사다리에 올라가며 잔잔하게 시작한 공연은, 피날레에서 여러 무용수가 사다리의 모든 발판과 사다리 주변을 떠들썩하게 채운 채 축제처럼 끝난다. 사다리가 놓인 위치도 중앙으로 바뀐다.

공연 관람을 마친 관객은 극장을 나서며 사다리가 무엇을 의미했을지 궁금해할 법하다. 공연 팸플렛을 펴보면 "나무다. 우뚝 선 나무다"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서 대표도 "나무를 염두에 두고 사다리를 배치했다"고 말했다. 나무를 춤으로 형상화했다면, 시작 시점의 나무는 앙상하고 끝날 때의 나무는 무성하다. 마지막 장면을 나무가 열매 맺은 것을 춤으로 표현했다고 봐도 좋다. 물론 다른 것을 상상해도 자유다. 여름 바람에 시원하게 흔들리는 잎사귀가 아니라, 수류탄의 폭발이나 촛불을 그렸다고 상상한들 전혀 상관이 없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모습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모습 ⓒ 쿰댄스컴퍼니

 
3장으로 구성된 공연은 1장에서 주로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풍경(風磬)은 또 다른 오브제이다. 무대 앞 오른편에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다가 곧 풍경이 내는 소리가, 풍경을 매단 줄 사이로 흐느적거리는 무용수의 춤이 관객을 매혹한다.

풍경은 매달린 존재다. 풍경 사이로 여자 무용수와 남자 무용수가 춤을 추다가 어느 순간 풍경에서 종을 떼어내 여러 무용수가 동작에 배태(胚胎)된 소리를 하르르하게 춤춘다. 매달린 풍경이 흔드는 종으로 바뀐다. 이러한 변화를 주체의 몸짓이란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좋고, 그냥 동작을 증폭하는 아름다운 장치로 보아도 좋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모습

▲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모습 ⓒ 쿰댄스컴퍼니

 
무용수들은 버선을 신고 걷는다. 서서히 걷다가 걷는 속도가 빨라지고 때로 뛰기도 한다. 버선을 신은 채 걷고 춤추던 무용수들이 어느 순간 버선을 벗고 맨발로 공연을 펼치는데, 그 사이에 버선은 오브제로서 발아의 형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매달려 있던 풍경이 손에 달린 종으로 변하듯, 발 디딤과 걷기를 부각한 버선은 싹으로 변신한다. 발이 아니라 머리를 바닥에 댄 무용수의 다리는 싹으로 터져 나온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모습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모습 ⓒ 쿰댄스컴퍼니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는 전통춤 '승무'를 모티브로 했고, 승무가 공연의 뿌리로 역할한다는 게 서 대표의 설명이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는 하나의 창작무용으로 앞으로 단독 공연으로 관객을 만나게 될 텐데 6일 공연은 1993년 창단한 쿰댄스컴퍼니의 기획 공연의 하나로 준비됐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를, 직전에 마찬가지로 쿰댄스컴퍼니의 기획 공연의 하나로 펼쳐진 김운미 한양대 무용과 교수의 승무와 연관지어 보면, 불일불이라고 하면 과하겠지만 두 개의 공연이 하나인 양 수렴되는 걸 느낄 수 있다.

특히 하얀 의상을 입은 김 교수가 흑장삼을 허공으로 던지며 춘 승무는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에서 검은 뿌리에 하얀 싹을 틔우는 반대 형상의 군무로 확장된다. 버선은 싹이 되고, 흑장삼이 펼쳐지듯 싹이 성장하여 나무가 된다. 싹을 틔우며 싹이 씨앗의 껍질을 털어내듯 이제 무용수는 버선을 벗은 맨발로 무대를 종횡무진 날아다닌다.
 
승무     김운미의 '승무' 공연 모습

▲ 승무 김운미의 '승무' 공연 모습 ⓒ 쿰댄스컴퍼니

 
그러다가 녹색 색종이가 공중에서 뿌려지며 무대에서 녹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구르고 뛰고 날아오르며 씨앗은 싹이 되고 싹이 자라 아름드리나무로 우뚝 선다. 그렇게 서다.
 
"한 그루의 나무로 서기 위해 그 땅을 다지고, 물을 주고, 씨앗을 뿌려 한 발짝 두 발짝 딛고 또 딛는다. 우리 모두는 그 길을 쉼 없이 달려 나간다. 씨앗이 뿌려진 그 길을 걸으며, 바라보고, 마주한다. 하나의 씨앗이 거목이 되는 자연의 섭리처럼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서고자 한다."(서연수 안무가)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의 공연 모습. 서연수 안무가가 직접 출연했다.

▲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의 공연 모습. 서연수 안무가가 직접 출연했다. ⓒ 쿰댄스컴퍼니

 
안무의도에 충실하게 무대가 꾸며졌고, 유기적인 흐름이 꽉 찬 무대를 만들어 괜찮은 볼 거리가 되었다. 언급하고 갈 대목은, 공연의 초반부에 떼로 걸어가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한 무용수가 홀로 돌아서서 잠시 뒤편을 바라보는 모습이 있었는데, 그게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춤을 서사로 받아들인다면 그 작은 역린이 공연 전체에 준 강한 인상의 효과를 무시하기 힘들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공연을 물과 그 흐름으로 받아들였고, 또 연상작용으로 계절의 변화로도 느꼈다. 물의 흐름이라고 하면 그 역린은 반짝이는 하나의 특별한 물방울이라고 해야 할까, 물의 요정이 본향을 바라보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 느릿느릿 얼음 언 물이 흐르다가 급류로 바뀌고, 마지막에 활력 있게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장면. 거기에 혹시 물고기라도 물 밖으로 튀어 오르기라도 했을까. 하여간 그런 피날레를 잠시 상상했다. 그렇다면 풍경 소리는 햇빛의 부서짐이라고 해야 하겠다.

또한 1, 2, 3장으로 구성된 이 공연을 겨울, 봄, 여름의 순차적인 흐름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이런 발상에선 가을을 추가해 사계로 발전시킨다는 생각이 허무맹랑하지는 않아 보인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모습

▲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공연 모습 ⓒ 쿰댄스컴퍼니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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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춤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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