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반중국 정서가 한층 확산되고 있다. 14년 만에 베이징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을 통해 힘을 과시하려는 듯한 중국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품고 있다.
 
반중감정은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최근에는 유럽의회를 중심으로 크게 부각됐다. 일례로, 2021년 10월 23일에는 유럽의회가 타이완과의 관계 강화 및 투자협정 등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11월 3일에는 유럽의회 방문단이 타이완을 방문해 쑤전창 행정원장을 면담했다. 중국이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일부러 무시하고, 보란 듯 타이완을 방문한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부에 비해 유럽 민심을 더 많이 반영하는 유럽의회다. 이런 곳에서 중국을 자극하는 행보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타이완과의 반도체 협력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확산되는 반중국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극심했던 명나라의 갑질... '윤이·이초 사건'

반중감정 확산은 중국의 경제·군사적 성장에 더해 미국의 반중국 홍보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중국 자신의 귀책사유로 생긴 일이다.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양성한다며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하는 것 같던 중국이, 최근 들어 '전랑(戰狼) 외교'를 노골적으로 선보이며 '늑대전사' 같은 이미지를 감추지 않는 데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630년 전에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도 그런 모습에 상당한 반감을 품었다. 몽골(중국식 표현은 '원')을 북쪽 초원으로 몰아내고 최강이 된 명나라가, 강해진 만큼 겸손해지지 않고 한층 더 위세를 부렸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주인공 이방원(주상욱 분)과 작은어머니 신덕왕후 강씨(예지원 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조선 건국 과정에서 중국이 끼친 악영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명나라의 갑질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368년에 중국대륙 지배자가 된 명나라는 1392년에 세워진 조선에 대해 이것저것 시비를 걸었고, 이는 조선의 여론 주도층과 조정 내에서 반중감정이 퍼져 나가는 원인이 됐다. 이와 관련된 것이 '윤이·이초 사건'이다.
 
이 사건은 건국 2년 전인 13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파평군(坡平君)과 정5품 중랑장(中郞將)을 자처하는 윤이(尹彝)와 이초(李初)가 명나라 황제 주원장을 찾아갔다. 스스로를 제후급이니 무관이니 하며 소개했지만, 실은 사칭이었다.
 
위화도회군을 일으킨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공민왕 아들인 우왕을 폐위하고 창왕을 옹립했다. 그 뒤 조민수를 숙청하고 공양왕을 새로 옹립했다. 윤이·이초가 명나라 남경(난징)으로 간 시점은 그 뒤였다.
 
조선 <태조실록> 서두에 따르면, 이들은 '이성계가 추대한 공양왕은 고려 왕족이 아니라 이성계의 인척이며, 이성계가 공양왕과 함께 상국(上國)을 침공하려 하니 군대를 보내 이성계를 벌해주소서'라고 주원장에게 주청했다.
 
음력으로 태조 3년 6월 16일자(양력 1394년 7월 14일자) <태조실록>에 따르면, 윤이·이초는 명나라 황제 앞에서 이성계를 친몽골파(친원파)인 '이인임의 후사'로 언급했다. 이인임의 제사를 받들 후계자로 소개한 것이다.
 
구세력인 권문세족을 이끌던 이인임은 이성계와 최영에 의해 숙청됐다. 이인임을 숙청한 뒤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을 일으켜 최영을 몰아냈다. 이성계와 그런 관계였던 이인임을 이성계 아버지로 언급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명나라 황제 앞에서 이성계가 친몽골파의 후사라고 언급했다. 명나라와 몽골의 적대관계를 감안하면, 이 발언이 얼마나 민감한 것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을 괴롭혔던 '무기'
 
  KBS 1TV <태종 이방원>

KBS 1TV <태종 이방원> ⓒ KBS1

 
'이인임 후사 이성계'는 명나라가 조선을 괴롭히는 무기가 됐다. 건국 2년 뒤인 1394년에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은 이성계를 고려 이인임의 아들로 지칭해 조선 조정을 당황케 만들었다. 군주의 혈통이 왕조의 정통성을 좌우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적폐세력으로 규정된 이인임을 이성계의 아버지로 운운했으니, 조선 조정이 깜짝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조선 조정은 이성계와 이인임은 관계가 없노라고 적극 해명했다. 위 날짜 <태조실록>에 따르면, 이성계는 주원장에게 서신을 보내 "신은 (이)인임과 본시 같은 이씨가 아닙니다"라고 밝혔다.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이고, 이인임의 본관은 성주였다.
 
이 정도로 해명했으니, 알아듣는 게 당연했다. 이성계 본인이 적극 해명한 데다가, 이성계와 이인임의 적대관계가 명확했으니, 알아듣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도 명나라는 못 알아들은 척하고 계속 거론했다. 이성계가 물러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성계의 후손들을 상대로도 이 문제를 집요하게 건드렸다. '너희 아버지, 너희 할아버지가 이인임의 후사라며?'라는 식으로 괴롭힌 것이다.
 
태종 이방원 때인 1402년에는 명나라를 다녀온 사신이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명태조 주원장의 유훈에 조선왕실이 이인임의 후손으로 기록돼 있다'는 보고였다. 1398년에 사망한 주원장의 유훈에 그런 사실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는 조선과 여진족의 결합을 우려했다. 그래서 둘을 갈라놓고 조선을 자기편에 묶어두고자 건국시조의 혈통 문제를 이용해 조선을 괴롭혔던 것이다. 강대국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했던 것이다.
 
명나라의 행위는 혈통을 갖고 조선 왕실을 놀리는 행위였다. 동아시아 최강국이 이런 식으로 조선을 조롱하게 되면 조선의 국제적 지위가 위축될 수 있었다. 조선 국내의 반정부 세력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우려해 조선이 수정을 요구했지만, 명나라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도리어 한술 더 떠 주원장의 유훈에까지 기재해뒀던 것이다.
 
조선 조정은 이듬해인 1403년에 사신을 보내 수정을 요구했다. 1404년에 돌아온 사신은 더욱 기막힌 소식을 전해줬다. '이인임 후사 이성계'가 주원장의 유훈뿐 아니라 행정법전인 대명회전에까지 기록돼 있더라는 것이었다. 조선을 괴롭히고자 명나라 당국자들이 각종 아이디어를 짜냈던 것이다.
 
조선은 당황하고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강국이 된 명나라를 힘으로 억누를 수는 없었다. 거듭거듭 수정만 간청할 뿐이었다. 조선이 어찌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명나라도 태조의 유훈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느냐며 번번이 거절할 뿐이었다.
 
윤이·이초의 허위 진술이 계기가 돼 1394년에 시작된 이 사건은 종계변무(宗系辨誣)로도 불린다. 왕실 계보에 관한 무고를 변증하고 바로잡는다는 의미의 사건으로 불렸다. 이 사건은 조선 전기 내내 계속 이어졌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발발 3년 전인 1589년에 대명회전을 개정하는 기회에 조선의 요청을 반영해줬다. 무려 195년 만에 조선의 간곡한 청을 들어준 것이다.
 
대국 지위를 이용해 조선을 괴롭힌 이 갑질로 명나라가 얻어낸 것이 있다. 조선과 여진족을 갈라놓는 실리가 그것이다. 명나라는 여진족 토벌전쟁에 조선을 끌어들이는 명분 중 하나로 종계변무를 활용했다.
 
'이인임 후사 이성계'만큼 조선왕실이 듣기 싫어하는 것도 없었으므로, 이를 이용해 조선 군대를 자국의 여진족 토벌전쟁에 활용한 것이다. 윤이·이초 사건 혹은 종계변무 사건은 힘만 생기면 이런 식으로 이웃나라들을 괴롭힌 중국 한족의 생리를 반영하는 사례였다.
 
명나라를 뒤이은 청나라가 허약해짐으로써 중국의 위상이 추락한 19세기 후반에 갑신정변 주역인 김옥균 등은 중국과의 관계 청산을 시도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중국의 오랜 갑질로 인해 조선 사회에 뿌리 깊게 내재된 반중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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