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배우와 테이블은 온통 하얀 색이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을 보여주는 <조동>은 무엇에 쫓기듯 바쁜 움직임을 보여준다.

무대 위의 배우와 테이블은 온통 하얀 색이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을 보여주는 <조동>은 무엇에 쫓기듯 바쁜 움직임을 보여준다. ⓒ 필립리

 
디귿자로 막힌 사방, 타일같이 군더더기 없는 벽면. SF영화에 나오는 우주선 안이라 해도 믿겠다.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무대에서 공연은 시작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얀 색을 뒤집어쓴 11명의 무용수가 등장한다. 몇 개의 음악에 맞춰 동작을 반복하는데, 누구의 조종이 받았는지 쫓기듯 바쁘다. 여자는 남자의 등에 올라타 목덜미를 부여 잡는다. 네 발로 기어가는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일을 한다. 무대는 온통 하얀색이 지배한다. 등장하는 인물도, 무대 가운데를 짓누르는 책상까지. 그 위에 걸터앉은 남자는 책상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만 쉽게 허락받지 못한다. 손을 떼려해도 통제불능이다. 괴롭고 숨이 가파오른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가 등장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붉은 피가 묻은 천을 입에 물고 나타났다. 11명의 무용수는 저마다 피비린내 나는 재갈을 입에서 떼지 못한다. 괴로움에 가득찬 이들은 그것 때문에 소리조차 지를 수 없다. 몸은 괴롭지만 손은 쉬지 않고 클릭을 할 만큼 정신을 빼앗긴다. 격정의 시간을 몸으로 표현하는 무리들. 일사분란하게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는 동작은 그들의 옷색깔 만큼 어둡고 침울할 뿐이다.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잊고 사는 것들이 많아요. 여유와 행복 등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이죠."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 부문에 선정된 <조동>(2월 5~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제작한 김성훈 안무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불혹에 들어선 그는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 설명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 속에 쉼없이 달려가는 현대인의 매너리즘에 관한 것. 그는 회사에 얽매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꼈다며, 이런 우울한 감정을 이겨내는 힘을 주고 싶었단다. 덧붙여 매일 아침 죽을 만큼 싫었던 출근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직장인의 마음처럼 자신도 쉬지 않고 '개같이 일해온' 지난 과거에 대한 고찰이다. 

성급하게 움직이는 현대인의 고통
 
 공연 중간에는 빨간 색 피가 묻은 천을 입에 문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입에 물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대인을 상징한다.

공연 중간에는 빨간 색 피가 묻은 천을 입에 문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입에 물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대인을 상징한다. ⓒ 필립리

 
제목을 '조동'이라 지었다. 여기엔 다양한 해석을 가늠할 수 있다. '이른 겨울(早冬)'. '성급한 움직임(躁動)'. 서로 다른 한자를 사용했지만, 작품에선 이 모든 내용을 담고 싶었다. 앞선 의미는 지금의 계절을 반영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며칠 전, 하얀 눈을 뒤덮은 거리만큼 하얀 옷을 입은 사람과 테이블은 겨울에 제격이다. 한적한 겨울은 추워서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앞길만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한다. 무엇에 쫓기듯 자신만의 패턴을 반복하는 현대인을 그대로 상징한다. 몇 개의 단막극이 옴니버스로 연결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분초를 다투는 움직임에 있다. 처음과 중간을 거쳐 마지막까지 같은 패턴으로 성급한 움직임. 현대인의 숨막히는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현대무용에 충실한 전반부와 다르게 뒤로 갈수록 안무가의 다양한 시도가 돋보인다. 현대인이 어깨를 짓누르는 억압과 스트레스는 조명의 도움을 받아 시각적인 효과를 더했다. 무용수의 머리에서 시작한 작은 점은 점차 무대 위를 덮을 정도로 퍼져나간다. 작은 몸짓은 조명에 비춰 절규하듯 투영된다. 자신의 감정을 몇 배로 부풀려 놓은 의도가 아닐까. 다음 장면에는 보다 직설적인 장치를 들고 나온다. 고민이 있어 보이는 직장인은 'problem'이라는 단어가 LED로 보이는 가방을 들고. 연극적 오브제를 도입시켜 관객들에게 친절한 해설을 돕는다. 마지막을 장면은 몸짓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빛으로 형상화했다. 그것은 공연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영화에서 또는 전시에서 사용하는 기법을 차용한 것이라 믿는다. 

현대무용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한 작품. 무용수의 몸짓에 충실했던 전반부와 다양한 연출기법을 시도한 후반부는 묘한 대비를 부른다. 전체적인 톤은 겨울을 나타내는 흰색으로 깔았다. 중간에 피가 묻은 천을 입에 문 장면도 나오지만 이것은 현대인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원픽이었다. 다양한 장치들의 도움을 받아 연극적 요소를 가미시킨 종합 공연예술의 축소판이다. 첫 공연을 앞둔 지난 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로비에서 김성훈 안무가를 만나 공연과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용 <조동>을 제작한 김성훈 안무가(김성훈 댄스프로젝트)

무용 <조동>을 제작한 김성훈 안무가(김성훈 댄스프로젝트) ⓒ 필립리

 
- 이 공연의 특징은 무엇인가?
"기존에 무용수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은 각각의 무용수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끌고 가는 한 명의 무용수가 있지만 총 11명의 무용수들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발레나 연극처럼 한 명이 중심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에서 파생되는 그림을 생각했다." 

- 연극적 요소를 가미했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움직임을 많이 사용했다. 수많은 움직임을 리서치해서 추상적인 동작으로 풀어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짐을 나르는 동작을 현대무용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스피드, 방향성, 몸의 높낮이를 이용해서 현대무용에 접목시켰다." 

- 리서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했나?
"회사원인 친구뿐 아니라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거북목을 가진 다양한 직장인을 상상했다. 점차 지쳐가는 현대인을 말이다. 자기를 되돌아볼 시간조차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활이 계속되면 자기도 모르게 힘이 빠져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관객이 알 수 있지 않을까." 

'개 같이 일하는' 지난 날을 되돌아봐 

- 직장인의 바쁜 일상에서 착안했던 대표적인 동작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용수들에게 어떻게 전달했는가?
"개 같이 일한다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다. 짐승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나를 표현한 것이다. 상투적인 말로, 우리는 '개같이 일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공연 중에 짐승처럼 기어가는 동작이 나오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체적으로 블랙앤화이트 조명만 사용했다. 의상과 세트도 마찬가지로. 중간에 딱 한 번만 빨간색이 나오는데,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재갈이라는 게 고통을 참을 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물리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회사에 일하러 나갈 때 얼마나 힘드냐? 반복되는 삶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다. 그때 재갈에 피가 묻어 나온다. 그통을 참고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 전작에선 여러 색깔을 넣었는데, 이번 공연에는 한 가지 색깔만 넣었다. 
"흰색만 생각했다. 조동이라는 말이 '이른 겨울'이라는 뜻도 있다. 겨울처럼 바라보면 좋겠다 생각했다. 겨울은 추우니까 돌아다니지도 않고, 요즘 시국에 맞는 거 같아서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거 같다. 겨울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흰색이고, 공연 중에는 겨울을 나타내는 비발디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조급한 움직임과 연관이 있다. 이렇게 '조동'의 다양한 뜻을 포함한다. 흰색이 돋보이려면, 검은색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의미일 뿐이다."

- 재갈을 물리는 빨간 색을 주목해서 보면 재미있겠다.
"일하는 모든 회사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등장하는 모든 무용수들이 다 재갈을 문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 아니라 고통에 휩싸인 모든 현대인들이 공감하는 장면이다."

- 김성훈 댄스프로젝트만의 정신은 무엇인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소통하고 싶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인간 본연의 감정, 느낌,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전작 < Pool >은 소외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외침에 관한 작품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 즉, 고인 물을 나타낸다. 흑인들이 모인 할렘가를 고인물이라 표현한 것이다. 어느 미국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라스베가스 지하엔 노숙자만 산다더라. 그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하려는 외침이다. 가게에서 노숙자들이 돈 달라하면 외국은 소리를 지른다고 하더라.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금이나 물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것을 리서치를 했고, 소외된 사람과 방황해서 갇혀지낸 사람을 보여줬다."

- 여러 장면이 연이어 선보이는 옴니버스 방식은 전작에서도 나오는가?
"요즘에는 작품 자체에 짤이 유행이다. 우리는 그런 것에 익숙해졌다. 1분 내외로. 그래서 장면마다 임팩트를 줘야하는 것을 신경썼다. 예전에는 다양한 옷, 캐릭터, 이야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한 가지 이야기로 끌고가려고 한다." 

- 연출기법에서 가장 신경을 쓴 곳은 어디인가?
"고민은 뒤에 나오는 미장센 부분이다. 춤은 앞 부분에 많이 나오고, 뒤에는 그림적인 부분을 연출했다. 게다가 영상, 조명, 막힌 세트 등을 통해 공허함을 극대화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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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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