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열리기 직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의 대기실에서 유장일 안무가와 함께 <senseless violence>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공연이 열리기 직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의 대기실에서 유장일 안무가와 함께 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필립리

 
"폭력이 많이 일어나지 않나요? 그런데 막상 마주치면 나랑 상관 없다고 피해버리는 비겁한 일도 많습니다."

무엇을 작정한 듯 보였다. 한 맺힌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다. 폭력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피해자를 옆에서 지켜본 관찰자인가. 지난 5일,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감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된 컨템포러리 발레 <센스리스 바이올런스(senseless violence)>(2월 5~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을 제작한 유장일 안무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작품의 부제는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라 붙였다. 그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진 부제에 대한 해석이 반은 이해가 갔는데 나머지 반은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와 상관 없이 피해버리는 것"에 관한 부분이다. 

"현대사회는 신체 폭력과 언어 폭력뿐 아니라 미디어 폭력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인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작품을 기획하기 3년 전, '조커'라는 영화를 봤어요. 1970년대 미국의 '브롱크스'(Bronx)가 배경입니다. 그곳은 빈부 격차와 부동산 문제로 사람들이 상실감에 빠져서 괴물로 변해버린 사회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유 안무가는 영화 속 장면에서 'senseless violence'를 떠올렸다. 우연히 접한 단어에 공감했는데, 이후 영화를 소개하는 유튜브에서도 이 단어를 선택해 더욱 와닿았단다. 그러면서 미디어 폭력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니까 앞서 궁금했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무용수들의 속내를 무대로 끄집어내다

이 작품은 총 7명의 무용수가 등장한다. 그중엔 브롱크스에 살았던 무용수도 있었고, 미디어 폭력을 경험했던 당사자도 있었다. 유 안무가는 작품을 구상하기에 앞서 이들과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누며 무대로 끄집어냈다. 폭력을 당했던 실질적인 피해자의 고백이 무용수의 몸짓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절절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 작품이 간절해 보이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이 작품엔 국립발레단 간판스타 이재우, 미국 뉴욕 앨빈에일리무용단 단원 성창용, 헝가리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활동한 김민정, ABT2·올랜도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원진호, 보스턴 털사발레단 솔리스트로 활동한 이승현, 유니버셜발레단·미국 텍사스발레단에서 활동한 용기, 국립발레단 최고의 테크니션 엄진솔 등 7명이 출연한다.

"모든 무용수가 큰 직업 발레단의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세계적인 무용수로 성장했어요. 뉴욕에 살았던 각자의 사연을 들으면서 에피소드를 녹여냈죠. 그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한 테두리 안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senseless violence'은 앞뒤가 맞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서 계속 움직인다는 내용이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자의든 타의든 벗어날 수 없는 현재를 바라보게 된다.

창작발레에 음악의 중요성을 고집하다
 
 첫 공연을 마치고 무대인사를 하는 무용수들

첫 공연을 마치고 무대인사를 하는 무용수들 ⓒ 필립리

 
이번 공연은 전통적인 창작발레에서 보기 드문 다양한 실험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음악적 완성도를 꼽고 싶다. 무용작품을 얘기하는데 왜 음악을 언급하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지난 5일, 객석의 왼쪽인 A구역에서 관람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음향 서라운드 시스템의 효과 때문에 더욱 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풍량한 음향의 덕택을 봤기 때문이다. 음악의 다양성은 전통 클래식부터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종류와 방식을 한정짓지 않았다. 웅장한 음악이 필요할 땐, FM대로 나갔고, 현대인의 극한 심정을 표현할 땐 원래의 효과에 충실했다. 관객은 배경음악을 들으며, 무용수의 동작만 집중하면 된다. 오히려 그들의 손동작과 몸짓 하나에 빠져들어 감정의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런 음악에 대한 유 안무가의 고집은 지난 2016년 제37회 서울무용제에서 <트리스트>로 대상을 타면서 성과를 보였다.

"발레는 눈보다 귀가 가장 예민하다고 생각해요. 무용을 보면서 답답했던 것이 음향이었습니다. 무용수들이 의상은 신경쓰는데, 음악은 그렇지 않거든요. 5.1채널 작곡을 통한 음향 사운드는 공연예술계에서 우리 발레단만이 가진 장점입니다. 사운드슈퍼바이저가 최대한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서 대상을 타게 된 배경이에요. 이밖에 캐스팅을 비롯해 모든 것이 완벽하기도 했고요." 

유장일 발레단은 컨템포러리 발레의 웅장함을 겸비한 단체로 서울무용제,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등을 통해 안무력, 탄탄한 춤, 적절한 프레임으로 최고의 프로젝트 발레단으로 성장했다. 시각, 청각의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춤과 안무를 시도하는 단체로. 완벽한 작품을 꿈꾸는 유 안무가는 이후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페러토리에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극장에 올렸다.

"여기는 사운드 시설이 굉장히 좋은 곳입니다. 이런 공연은 이전에 관객들도 경험하지 못해고, 무용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최고의 무용수, 최고의 수준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번 공연은 전통 클래식 발레에 기본을 둔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이다. 내용과 무대장치, 음향 등 다양한 씨어터적 기법으로 완성도를 높였지만 오페라에 버금가게 완벽한 구조를 뒷받침했다. 그러기 위해서 유 안무가는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왔다.

"발레라고 하면 오페라와 함께 최고의 예술입니다.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도 있지만 발레는 클래식과 컨템포러리로 나누어져요. 클래식에 기반해서 컨템포러리를 만들어야지 더 폭넓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발레에 대한 고집과 완성도 높은 작품을 꿈꾸는 그에게 프로다운 모습만이 살아남는 일이라며 그간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일반관객이 접했을 때 대중화에 앞서는 발레단이 있는데, 프로답지 못하고 전문화하지 못한 무용수와 함께 함으로써 오히려 더 낙후시킵니다. 저는 작업을 할 때, 사비를 털어서라도 최고의 무용수들과 함께 합니다. 그이상 모든 부분까지 최고를 지향해야 하죠. 그래야 일반 관객이 봤을 때 제 작품을 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거든요.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가는 관객도 봤어요. 저도 뿌듯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무용수들이 같이 느껴야 좋은 작품이지 안무가 한 명만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공연의 주역들이 그대로 와줘서 고마울 뿐이죠."
 
유장일 안무가는 앞으로도 최고의 공연을 뽑아내 관객을 만나야지 한가지라도 부족하면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다른 발레도 같이 발전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현대인의 고민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준 작품에 대한 배경을 들어보면서 유장일 발레단만의 색깔이 궁금했다.

"희망과 사랑입니다. 이번 작품이 무거운 편인데 마지막에 오버더레인보우를 처음과 끝에 넣었는데, 절망 속에서 희망을 봐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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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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