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급 레전드 복서 '해머 펀치' 조지 '에드워드' 포먼(미국‧73)은 복싱 역사상 최고의 강타자로 불린다. '아마겟돈 펀치' 어니 세이버스, '아이언맨' 마이크 타이슨, '더 브론즈 봄버(The Bronze Bomber)' 디온테이 와일더 등 2인자라면 서러운 하드펀처들도 존재하지만 복싱 팬들은 여전히 최고의 파괴력하면 포먼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젊은 시절에도 괴물로 통했던 그는 40대의 나이에 링으로 복귀해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며 강펀치 논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풀스윙이 아닌 가볍게 툭툭 맞추는 듯한 펀치에도 거구의 헤비급 복서들이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압도적 파워를 갖췄다는 점은 맨손으로 전투력을 겨루는 격투 스포츠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포먼은 상식 밖 파괴력에 비해 스피드나 발놀림 등에서는 다소 약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전성기 시절 무하마드 알리의 전략에 허를 찔리며 무너지기도 했다.

만약 그런 포먼이 아웃복싱 능력까지 갖췄다면? 다소 황당한 가정이지만 그런 일이 가능했을 경우 복싱계는 발칵 뒤집혀 졌을 것이 분명하다. 코끼리가 호랑이처럼 빠르게 앞발을 휘두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태계 파괴인 것이다. 비록 복싱은 아니지만 그런 존재가 실제로 격투 무대에 나타났다. 기존의 엄청난 강점에 새로운 강점이 더해진! 현 UFC 헤비급 챔피언 '프레데터' 프란시스 은가누(36·카메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 UFC 헤비급 챔피언 '프레데터' 프란시스 은가누

현 UFC 헤비급 챔피언 '프레데터' 프란시스 은가누 ⓒ 은가누 인스타그램

 
UFC 헤비급, 괴물 중의 괴물
 
헤비급 레전드 '얼음 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46‧러시아)는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 인터뷰 등을 통해 헤비급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표도르는 "향후 헤비급은 피지컬의 시대가 올 것 같다. 압도적 신체 조건 앞에서 어지간한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 하드웨어에 테크닉이 결합된 선수들이 등장하며 경합할 것이다"는 의견을 밝혔다.

인터뷰를 하던 때만 해도 큰 공감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10년 불패를 자랑했던 표도르 본인은 물론 미르코 크로캅 등 헤비급 무대를 평정하던 파이터들은 대부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안드레이 알롭스키 등 스피드 혹은 테크닉 등이 돋보이는 케이스가 성적이 좋았다.

줄루, 자이언트 실바, 얀 '더 자이언트' 노르키아 등 이른바 덩치에 비해 실속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UFC 챔피언 출신 팀 실비아 정도만이 그나마 이름값을 해줬다. 하지만 표도르의 발언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판이 커지자 선수풀이 넓어졌고 여기에 과학적 트레이닝과 몸관리가 더해지면서 전체적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다.

'비슷한 기량이면 체급이 깡패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하드웨어가 승패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리얼 헤비급 선수들이 득세를 하게 된다. 한때 UFC 헤비급 4대천왕으로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던 쉐인 카윈, 브록 레스너, 케인 벨라스케즈,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 등이 대표적이다. 상대적으로 벨라스케즈는 신장은 작은 편이었으나 장사형 체형, 파워 등은 예전 선수들과 사뭇 달랐다.

그렇게 리얼 헤비급이 득세하는 가운데 같은 헤비급 파이터들 조차 혀를 내두르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괴물이 등장했으니 은가누가 바로 그다. 193cm‧119kg의 당당한 근육질 체구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파워와 맷집을 과시하며 괴물들의 무대인 UFC 헤비급 무대서도 괴물로 불렸다. 괴물 중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UFC 헤비급 최강, KO머신
 
괴수 이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은가누는 기술적으로 정교한 파이터는 아니다. 순발력, 운동신경, 파워, 맷집 등 남다른 신체능력을 앞세워 상대를 파괴하는 유형이다. 이런저런 기술적 보강에 대한 부분이 지적되어 왔지만 타고난 완력을 무기삼아 어지간한 테크니션은 정면에서 힘으로 박살내왔다.

상대의 잔 타격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성큼성큼 다가가 가드 사이를 뚫고 펀치를 꽂아 넣는가 하면 기무라 그립을 만든 후 힘으로 잡아 뽑아 억지로(?) 성공시키는 모습은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였다. '압도적 힘 앞에서 어지간한 기술적 격차는 의미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은가누가 자랑하는 주 옵션은 펀치 공격이다. 구태여 앞손, 뒷손 디테일하게 전략을 짜오기보다는 상대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기회다 싶으면 지체없이 펀치를 날린다. 뭔가 기술적으로 정돈된 모습보다는 거친 맹수가 본능적으로 휘두르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기에 더욱 무섭다. 파워와 핸드 스피드를 겸하고 있는 데다 맞추는 재주까지 빼어나다. 맷집에 워낙 자신이 있어 상대 공격시 카운터성으로 거침없이 휘두르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적중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리치가 긴 데다 타이밍, 궤도 등에서 변칙적 색깔까지 띠고 있어 대비하고 있다 해도 피하기 쉽지 않다. 같은 파워형 파이터는 물론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조차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이유다.

이같은 파이팅스타일은 전적을 보면 더욱 뚜렷히 알 수 있다. 은가누는 통산 17승 3패를 기록 중인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피니시 능력이 가장 돋보인다. 17승 중 판정승은 단 한 번(6%) 뿐이며 나머지 경기는 타격에 의한 넉아웃 승리가 12번(71%), 서브미션 승리가 4번(24%)이다. 반면 자신은 종료 공이 울리기 전에 패배를 당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3번의 패배는 모두 판정패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될 부분은 유일한 판정승이 그냥 판정승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은가누의 판정승은 가장 최근 경기에서 나온 것인데 오히려 그 판정승으로 인해 경쟁 상대들은 더욱 큰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분위기다. 판정승으로 은가누가 잡아낸 상대는 체력, 경기운영 등에서 최고로 평가받아온 선수였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넉아웃보다 더 가치 있는 판정승이라고 할 수 있다.
 
 현 UFC 헤비급 챔피언 '프레데터' 프란시스 은가누

현 UFC 헤비급 챔피언 '프레데터' 프란시스 은가누 ⓒ 은가누 인스타그램

 
레슬링까지 장착한 괴수, 압도적 시대 구축?
 
지난 UFC 270대회서 있었던 헤비급 타이틀전은 은가누의 위상을 더욱 끌어올리기에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상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던 10연승 무패의 주인공 시릴 가네(32‧프랑스) 마저 패퇴시켰기 때문이다. 이날의 결전으로 은가누는 인류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굳히게 됐다.

많은 팬과 관계자들이 은가누에게 놀라고 있는 것은 가네를 이긴 방식에 있다. 당초 은가누와 가네의 대결은 포먼과 알리에 비교됐다. 압도적 파괴력의 은가누와 헤비급 최고 테크니션 가네는 서로가 잘하는 영역이 완전히 달랐다. 포인트 싸움으로 경기가 진행되어 판정 승부로 가면 가네, 한방이 터져서 넉아웃으로 경기가 끝나면 은가누의 우세를 점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깬 은가누의 3-0 판정승으로 끝났다. 은가누는 5라운드를 꽉 채우면서 체력적인 우려를 불식시켰고 경기 운영 면에서도 효과적인 모습을 과시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은가누는 장기전, 포인트 싸움에서 불리할 것이다는 대다수의 의견을 비웃듯 첫 번째 판정승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끌어냈다.

이전까지의 은가누는 전략적 파이터, 경기 운영에 능한 선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반면 가네는 그런 쪽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은가누 측은 거기서 완전히 가네 측의 허를 찔렀다. 은가누는 아무도 예상 못한 레슬링을 들고나와 치고 빠지는 데 능한 가네를 꽁꽁 묶어버렸다. 잘 조련된 흑표범을 부둥켜안고 깊은 심해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그래플링 전략은 영리한 가네마저도 멘붕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그간 은가누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괴수로 체급 내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해왔다. 그나마 약점으로 여겨졌던 부분 중 하나가 그래플링이었다. 하지만 이번 가네 통해 작은 구멍마저도 막아버렸다. 방어적인 부분은 물론 공격적으로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남에 따라 은가누를 상대할 때 대비해야 할 부담만 더 늘어나게 됐다.

파라에스트라분당 홍순근 관장은 "은가누는 데뷔 때부터 폭발적인 타격과 피지컬이 강점으로 꼽혔으나 반대로 낮은 수준의 그라운드 게임과 순간적인 체력 저하를 자주 지적당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를 보면 비약적 레슬링 실력의 발전과 매 라운드별 적절한 체력안배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적지 않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그라운드 기술과 체력의 진화가 계속 이뤄지고 있는 바 향후에도 좋은 경기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로 발전하는 챔피언 은가누의 모습을 설명했다.

더불어 "하지만 금전 문제로 인한 주최측과의 다소 껄끄러워 보이는 관계, 복싱 무대 진출에 대한 본인의 의지 등 외부적인 요소가 경기력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런 문제가 정리되고 현재와 같이 꾸준하게 훈련하고 경기를 가진다면 헤비급에서 큰 획을 그을 선수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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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어질 2편에서는 전 UFC 라이트급 파이터 남의철과 함께 은가누에 대해 얘기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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