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조직이 없었던 시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특별히 두각을 보인 시기를 찾아내는 것은 쉽다. KBS 사극 <꽃피면 달 생각하고>의 시대 배경인 조선 후기가 바로 그 시기다.
 
이 시대의 조직폭력은 인구의 도시 유입과 함께 심화됐다. <꽃피면 달 생각하고>에 등장하는 폭력배들도 유동인구가 많은 시장 거리에서 주로 활동한다. 좀 단순해 보이면서도 생명력이 꽤 질긴 왈자패 두령 계상목(홍완표 분)도 저잣거리 상인들을 상대로 완력을 행사하고 있다.
 
 KBS2 <꽃 피면 달 생각하고>.

KBS2 <꽃 피면 달 생각하고>. ⓒ KBS2

 
조선시대 사회체제의 핵심은 지주가 노비 출신 소작농을 토지에 묶어놓고 이들의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수취하는 것이었다. 법률과 관습에 의해 보장되던 이 체제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을 계기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회변화가 크게 일어났다.
 
1598년까지의 장기간 전쟁 와중에 그 체제가 짓밟힌 면도 있었다. 소작농을 포함한 평민들이 의병활동에 나섬에 따라 이들의 지위가 상승한 결과 체제가 손상됐다. 대중의 지위 상승이 지주계급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이런 현상은 체제에 묶이고 토지에 묶여 있던 대중의 일부가 농토를 벗어나 도시로 유입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 때문에 발생한 도시의 인구증가가 <꽃피면 달 생각하고> 속의 번화한 도시 풍경을 낳게 되고, 조폭들이 도시를 배경으로 세를 확장하는 양상을 부추기게 됐다.
 
조폭들이 급성장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호칭들도 새로 생겨났다. 천상의 28구역을 근거로 운명을 판단한다는 이십팔수(二十八宿) 같은 조폭 명칭도 생기고,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의 일곱 현자를 본뜬다는 죽림칠현 같은 조폭 명칭도 생겼다. 그에 더해 검계(劍契)라는 조직 명칭도 생겨났다.
 
영조 임금 헷갈리게 만든 명칭

이 중에서 영조 임금을 헷갈리게 만든 명칭이 있었다. 검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조직에 관해 보고받은 영조는 검계라는 글자가 어떻게 폭력 조직을 뜻할 수 있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가 의문을 표한 사실이 비서실 업무일지인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다.
 
이 일이 있었던 해는 음력 1월 21일(양력 2월 13일)에 사도세자가 출생해 영조(만 41세)를 포함한 왕실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경축 분위기로 들떴던 1735년이다. 사도세자 출생으로부터 음력 기준으로 4개월 뒤, 양력 기준으로 5개월 뒤에 영조가 검계에 대해 궁금증을 품는 일이 있었다. 음력 간격과 양력 간격이 1개월 차이를 보인 것은 음력 4월 뒤에 음력 윤4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영조 11년 5월 25일자(양력 1735년 7월 15일자)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영조는 숙종 때인 1684년경에 출현했던 검계가 지금에 이르러 재등장했으며, 이 해괴한 조직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때 영조의 입에서 나온 말이 "검계라는 것은 검을 만드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냐, 검을 쓰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냐?"라며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간다더냐?"라는 물음이었다. 신하들이 보고할 때 분명히 폭력조직이라고 설명했었다. 검을 만드는 사람들의 계가 아니라 검을 쓰는 사람들의 계임을 알 수 있었는데도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지나치게 친절한 대답이 나왔다. 55세인 좌의정 서명균은 "도당을 결성해 검으로 사람을 찌르는 것을 가리킵니다"라고 '정성껏' 답변했다. 단체로 검을 사용하는 조폭들이 등장했기에 이런 장면까지 나오게 됐다. '조폭의 흉포화'를 반영하는, 역사 속의 한 장면이다.
 
조폭들이 기세등등해진 것은 이들이 검을 소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의 집단적 존립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기반이었다.
 
<맹자> 양혜왕 편에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가질 수 없다(無恆產,因無恆心)"는 문장이 있다. 안정적인 경제기반이 있어야 안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정적인 경제기반'은 조폭들이 '안정적인 마음'을 갖고 조직에 몸담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조선 후기의 도시 발달에 기인한 유흥업의 성장이 바로 항산이 됐다.
 
순조 3년 8월 9일자(1803년 9월 24일자) <순조실록>에는 국정 비판 기구인 사간원의 종3품인 사간 이동식이 술집들이 번영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동식은 검계와 관련된 유흥업 종사자들을 체포할 것을 건의했다. 조폭과 유흥업의 유착이 이 시대에도 병폐로 지적됐던 것이다.
 
이동식은 형조·한성부·포도청을 동원해 단속에 착수할 것을 건의했다. 공권력을 동원한 '범죄와의 전쟁'을 제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제 발등 찍기인 측면이 없지 않았다. 국가 공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측면이 다분했다.

범죄와의 전쟁
 
 KBS2 <꽃 피면 달 생각하고>.

KBS2 <꽃 피면 달 생각하고>. ⓒ KBS2

 
영조와 서명균의 대화에서는 검을 휘두르는 조폭들 중에 관청 실무자인 서리 혹은 아전들이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이들의 대화에서도 나타나듯이, 범죄와의 전쟁은 관청 서리들과의 싸움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 발등 찍기인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서리들은 관청에 신분적으로 얽매인 관노비인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과거시험을 거치는 벼슬아치와 달리, 구실아치로 불린 서리들은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관노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국가가 이들에게 봉급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행정비용을 절감하고자 국가가 관노비들을 이런 식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관노비는 교대제로 근무했기 때문에 비번 날에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다. 관청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대신, 쉬는 날에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큰돈을 버는 관노비들도 꽤 있었지만, 모든 관노비들에게 그런 초인적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상당수 서리들은 부정부패를 통해 생계를 충당했다. 합법적으로 돈을 벌기보다는 부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서리들이 꽤 많았다.
 
선조 1년 5월 26일자(1568년 6월 21일자) <선조실록>에 수록된 상소문에서, 남명 조식은 '서리들이 나라를 마음대로 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서리들이 행정실무를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를 대거 자행하는 현실을 비판한 상소였다. 이들의 부정부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은 그들 상당수가 관노비라서 봉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서리들 중에는 조폭과 유착하거나 그 일원이 되는 이들도 있었다.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데서 나오는 '권력'과 생활비를 관청 밖에서 벌어야 하는 데서 나오는 '압박감'이 이들을 그 방향으로 유도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폭력 조직들이 볼 때도 이들이 유용한 존재였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처럼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유흥업이 성장하는 현상과 함께 조선 후기 조폭문화가 한층 더 발달했다. 여기다가 '권력은 있지만 생활이 막막했던' 노비 출신 서리들이 폭력조직과 유착한 것이 지하세계의 성장을 더욱 더 부추겼다.
 
<꽃피면 달 생각하고>의 계상목은 좀 단순해 보이기는 하지만, 한국 조폭의 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던 시대를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꽤 역사적 의의가 있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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