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다수의 수다>의 한 장면

JTBC <다수의 수다>의 한 장면 ⓒ JTBC

 
우리의 일상을 함께 했던,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따뜻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시청자들에게 반가운 감동을 선사했다. 29일 방송된 JTBC 토크 예능 프로그램 <다수의 수다>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배철수,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의 이금희, '별이 빛나는 밤에'의 김이나가 출연했다. MC 유희열과 차태현 역시 라디오 DJ 경험이 있었기에 출연자들은 모두 라디오에 얽힌 다사다난한 추억들을 나누며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했다.
 
TV 출연을 잘 안 하기로 유명한 배철수는 <음악캠프>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에 참여해준 후배 유희열에 대한 고마움으로 보답 차원에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배철수는 두 MC를 향하여 "그나마 이렇게 방송을 할 수 있는 건 라디오 DJ를 하면서 연습을 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라디오 DJ 출신들은 나를 빼고 말을 다 조리 있게 한다"며 셀프 디스를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배철수는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기재하는 직업란에도 라디오 DJ라고 적는다고 고백하며 라디오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음악 프로그램이 장르마다 세분화되어있는 외국에서는 배철수가 '무슨 음악을 다루냐'는 질문에 '모든 음악 장르를 다루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라고 답하면 선뜻 이해를 못 한단다.
 
출연자들은 모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현직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DJ인 배철수는 올해로 '음악캠프' 32주년을 맞이했다. 이금희가 15년째 진행을 맡고 있는 '사랑하기 좋은 날'은 KBS 쿨FM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김이나가 27대째 별밤지기를 맡은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는 무려 53년 역사를 자랑하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배철수도 1978년 가수 데뷔하자마자 출연한 경험이 있다고.

지금은 라디오 DJ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지만 배철수는 1980년 '젊음의 찬가'라는 라디오에서 6개월 만에 잘렸던 흑역사를 공개했다. "많이 속상했다. 잘리고 나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때는 방송이 끝나고 뭔가 지적을 받으면 거기에 맞추려고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중심을 못 잡았다"고 회상하며 "1990년에 음악캠프를 시작하면서 10년만에 기회가 다시 왔다. 그때부터는 좋은 이야기는 받아들이지만, 후회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배철수의 뚝심은 어느덧 32년의 역사로 이어졌고, 특히 30주년에는 레드 제플린, 비틀스 등이 작업한 세계적인 스튜디오로 꼽히는 영국 BBC의 마이다 베일 스튜디오에서 특집 방송을 진행할 만큼 그 위상을 인정받았다. 당시 스튜디오에서 공연을 해준 뮤지션 앤 마리와 윤도현 등을 언급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때의 기분에 대해서 배철수는 "그냥 똑같이 했다"며 애써 덤덤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어서 공개된 당시 자료화면에서는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진행 중 남다른 감회에 젖어 눈시울이 촉촉해졌던 모습이 드러나며 눈길을 끌었다.
 
이금희는 "모든 바다에는 등대가 있다. 낮에 보는 등대는 그냥 예쁠 뿐이지만, 밤에 보는 등대는 '저기로 가야 해'라는 목표가 되어준다. 그게 배철수 선배님이다"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배철수는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오늘 우리가 아무렇게 이야기를 막 해도 이금희 씨가 정리를 너무 잘해준다. 전작 만나서 같이 방송을 했어야 했다"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배철수는 '자신의 방송 때문에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에 대해 "제가 정제된 언어도 아니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막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런 것을 듣고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유희열은 "배철수 '덕분에' 음악을 알고 '덕분에' DJ의 꿈을 키웠다는 분들이 정말 많다"고 밝혔다.
 
배철수는 "어떤 이들은 우리 방송을 듣고 음악을 어렵게 튼다고 하고, 나이 드신 분들은 음악이 너무 트렌디해서 못 듣겠다고 한다"며 극과 극의 반응이 공존하는 선곡의 고충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장르를 떠나서 '좋은 음악'을 튼다"고 밝히며 "물론 주관적일 수 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이 음악이 잘 만든 음악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귀는 가진 것 같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배캠'은 외국 아티스트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필수 방문지로도 꼽힌다. 유희열이 "왜 '스케치북'은 안 나오고 배캠만 나갈까 싶었다"라고 질투심을 드러내자 배철수는 " 방송은 녹화 날짜를 맞춰야 한다. 라디오는 1년 365일 스케줄 조정이 유동적이다"라며 라디오만의 강점을 설명했다. 김이나도 '배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가 배철수로부터 "라디오 DJ해도 되겠다"는 칭찬을 들었던 일화를 회상하며 "소나 돼지가 투플러스 등급 도장을 받는 기분이었다"고 비유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배철수는 DJ 김이나의 강점으로 "목소리도 좋고 음악에 대한 상식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호기심이 있더라. 어떤 DJ들은 게스트에게 질문을 던져놓고 듣지를 않는다. 호기심이 있는 김이나는 방송을 하면 좋은 진행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라디오 DJ의 덕목을 언급했다. 

김이나는 별밤지기를 제의 받았던 순간을 회상하며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가족들도 너무 좋아했다. 부모님마저도 아시는 프로그램이었으니까"라며 행복했던 마음을 고백했다. 배철수는 1980, 1990년대 '별밤'의 남다른 위상을 언급하며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을 모아 프로젝트 밴드 결성과 특집 콘서트까지 열었던 일화를 회상하기도 했다. 이수만-이종환-이문세 등 기라성같은 DJ들의 추억으로 세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금희는 '배캠'과 동시간대 DJ들은 모두 배철수를 청취율로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금희는 "제가 1위 하지 않았을 때는 청취율을 믿지 않았는데 막상 1위 하고 나니 너무 정확한 것 같더라"고 언급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배철수는 "젊었을 때는 청취율을 신경 썼다. 하지만 지금 라디오 DJ들은 누가 1위를 하든 라이벌 의식보다 전체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고 다른 DJ들도 공감했다.
 
'배캠'도 청취율 때문에 폐지의 위기가 있었다. 유희열은 배캠 폐지설 때 MBC PD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김이나는 "배캠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라디오가 그 틀을 지키고 있는 느낌과 같다"고 그 영향력을 설명했다.
 
배철수는 해외에 나갔다가 20년 만에 귀국했다는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며, 모든 것이 많이 변했지만 라디오에서 여전히 익숙한 배철수의 목소리를 듣고 한국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는 일화로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유희열은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주신 결과다. 기억 속에 있는 모든 것들, 거리도 풍경도 달라져도 배철수의 목소리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고 평했다.
 
배철수는 라디오 생방송 시간에 맞춰 항상 생방송 2시간 전 원고 체크와 선곡 점검 등 똑같은 루틴을 지킨다는 의미로 '배칸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CD와 LP 등 아날로그식 음악기기를 고집하기로도 유명하다고. 이에 배철수는 "음악도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음악 맛이 다르다. 시청자와 소통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며 집에 일찍 돌아가는 이유도 "다음 방송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워낙 철저한 직장인같은 삶을 사는 배철수에게 가끔 휴가를 주기 위하여 배우 이서진-김혜수-유해진, 그리고 유희열 등이 가끔 스페셜 DJ로 나서서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했다고.

김이나는 DJ를 하고 나서 규칙적이고 건강한 삶이 되었다고 밝히며 오히려 "쳇바퀴 같은 삶이 너무 좋다"고 고백했다. 밴드 생활을 오래 하며 불규칙한 삶을 살았던 배철수 역시 라디오를 진행하며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삶이 주는 행복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유희열은 "DJ는 생활이다. 하루에 2시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건 기적"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김이나는 '감성변태'라는 신조어를 낳았던 유희열의 라디오 DJ시절을 회상했다. 배철수는 "요즘 그렇게 방송하다간 큰일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이나는 "가장 좋았던  게 방송이라고 관성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친한 오빠가 술자리에서 하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고 칭찬하는 듯 하다가 "그래서 배철수의 방송을 주 1회씩 들으면서 귀를 정화시키곤 했다"는 반전 고백으로 폭소를 자아냈다.
 
유희열은 "그때 당시 저만의 원칙이, '음악은 고민해서 튼다.' 그 대신 비주류 음악만 틀면 안 들을 게 뻔하기 때문에, '멘트는 세상에서 제일 가볍게 한다'는 게 나름의 전략이었다"고 청취자와의 친밀감을 위한 의도된 계획이 있었음을 뒤늦게 밝혔다.
 
레전드 DJ들의 방송 적응을 위한 숨은 노하우가 공개됐다.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DJ 마이크 옆에 붙여놓거나, 마이크 옆에 애인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아나운서실의 격언이 공개됐다. 김이나는 "그렇게 교태를 부리다가 느끼해진다"며 질색했다. 배철수는 "미국에서는 라디오를 '퍼스널리티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거고 누구를 따라가려고 하면 안 된다"며 DJ들이 각자 고유의 시그니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JTBC <다수의 수다>의 한 장면

JTBC <다수의 수다>의 한 장면 ⓒ JTBC

 
배철수는 DJ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싸이와 BTS의 음악이 빌보드에 올라간 순간을 거론했다. "언젠가 우리나라 뮤지션도 차트에 오르고 1위를 하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란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해냈다"며 감격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BTS는 배캠에도 출연했으며 배철수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32년 동안 외국의 팝 음악만 소개했는데 은퇴하기 전에 방탄소년단이 1위를 해줘서 너무 고맙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DJ들은 시대에 따라 라디오의 달라진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금희는 "최근에는 모어 토크, 레스 뮤직(Mor talk, lee music)의 시대"라고 설명했고, 배철수도 "청취자와 쌍방향 소통이 강조되면서 저도 음악보다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김이나는 코로나19라는 상황을 언급하며 "많은 분들이 대화에 목말라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금희는 "인간이 인간인 것은 서로가 서로의 대화를 듣고 반응하며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며 "서로 고립되는 시대라서 사람이 너무 그리운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너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철수는 "동시간에 청취자들과 같이 공감하면서 쌍방향으로 대화할 수 있는 대중매체는 이제 라디오밖에 남지 않았다"며 라디오의 특수한 존재가치를 설명했다.
 
'라디오의 전성기가 다시 돌아온 것일까'라는 질문에 배철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라디오 청취자가 늘었다고 하더라. 확실하게 달라진 것 같다. 사람들이 격리되거나 혼자 고독하다 보니까 라디오가 친구가 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디오가 영원할 수 있을까'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 김이나는 "도심 위주로 생각하면 라디오의 비중이 줄어든 것 같지만, 지방이나 마을에서는 라디오가 필요한 곳이 아직 굉장히 많다"고 현실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배철수는 "TV는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지만, 라디오는 안 들으면 안 들을 망정, 듣는 청취자들은 모두 우리 편이 된다"면서 삶의 방식이나 음악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커뮤니티' 같은 성격이 강한 라디오 문화만의 특성을 설명했다. 이금희는 "영상 매체들이 나를 독점하고 싶은 '연인' 같다면, 라디오는 늘 곁에 있는 '친구' 같다"라고 정의했다

세 DJ는 마지막 라디오 방송이라고 가정하고 마지막으로 선곡하고 싶은 노래로, 김이나는 유희열의 '뜨거운 안녕'을, 이금희는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를 선곡했다. 배철수는 "언젠가 그만두는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상상을 하고 싶지 않다"며 고민하다가 MC들이 보라색 의상을 입은 것을 보고 즉석으로 딥 퍼플의 '솔저 오브 포춘'을 선곡하는 유쾌한 센스를 발휘했다.
 
라디오라는 매체가 몰락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나왔다. 1981년 미국의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MTV의 개국을 알린 그룹 버글스의 뮤직비디오 제목이었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라디오 음악 방송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음악을 눈으로 즐기는 새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섣부른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디지털 영상매체의 전성기가 열렸지만, 거쳐온 시대와 환경에 맞춰 라디오 역시 달라졌고 꾸준히 계속되어왔다. 21세기 한국에서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만의 매력과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라디오라는 매체에서만 가능한 소통과 공감을 전달해주는 소중한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치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배철수의 모습과, 라디오에 대한 DJ들의 진심 어린 애정은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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