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꿈이 좌절된 뮤지션 준혁(오정세 분)과 삼촌을 닮고 싶은 조카 지후(이경훈 분)의 이야기를 담은 TV조선 <엉클>은 참 경쾌하고 따뜻한 드라마다. 그림이 곁들여진 오프닝의 화면도, 중간중간 삽입되는 준혁과 지후가 춤을 추는 장면도, 준혁이 부르는 노래들도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엉클>의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놀 권리를 박탈당하고, 학업적 성취를 강요받고, 어른들의 거짓말에 동원된다. 이는 아이들의 존엄을 무시한 엄연한 정서적 학대였다. <엉클>은 정서적, 신체적 폭력을 당한 아이들을 준혁이 구해내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주체가 부모 혹은 가족이라는 점이었다. 폭력을 사랑이라 일컫는 어른들 틈에서 드라마 속 아이들은 다양한 심리적 증상으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의 마음을, 그리고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어른들의 심리를 살펴본다.
  
  TV조선드라마 <엉클>의 포스터

TV조선드라마 <엉클>의 포스터 ⓒ TV조선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의 마음
 
음악적 재능을 지닌 지후는 재벌 '강토머니'의 후계자이지만, 대중음악가로서의 꿈을 키운다. 하지만, 강토머니의 회장인 할머니 화자(송옥숙 분)는 지후의 재능은 무시한 채, 자신이 원하는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땐 가차 없이 때리고, 경쟁 재벌의 손주와도 비교하며 밤새도록 공부를 시킨다. 심지어 잠을 안 자게 한다는 약까지 먹인다.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모두 당한 지후는 말을 잃고, 우울해하며, 천식이 심해져 숨쉬기조차 힘들어한다. 다행히도 지후는 친엄마 준희(전혜진 분)와 삼촌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는데 아마도 지후는 이 때문에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숨 쉴 틈 없이 자신을 압박해오는 엄마 혜령(박선영 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채영(신규리 분)은 엄마로 인해 강제로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깊은 우울에 빠진다. 그럼에도 혜령은 주변의 평판만을 생각하며 채영에게 "다 잊고 유학 가서 변호사가 되어 돌아오라"(7회)고 강요한다. 이런 엄마를 보며 채영은 죽음만이 이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결론짓고, 자살을 시도한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한 부모와 동일시하며 살아남으려 애쓰기도 한다. 타인을 짓밟으며 거짓말을 해서라도 경쟁에서 이겨야 함을 주입받아온 혜령의 아들 민기(공경민 분)와 다정(정수영 분)의 아들 세찬(박시완 분)은 부모의 모습 그대로 다른 친구들을 무시하고 깎아내린다.

드라마 속 아이들이 폭력에 반응하는 다양한 모습들은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노출된 현실 속 아이들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텅 빈 마음을 아이들로 보상하려는 어른들
  
 <엉클> 속 아이들은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엉클> 속 아이들은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 TV조선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아동 학대하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위기에 몰린 부모가 아이들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엉클>에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부모들은 부유하고 힘을 가진 자들이다. 경제적 능력과 권력을 가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에서 비롯된 인정 욕망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혜령은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혜령은 이혼한 사실을 숨기고 이웃들에게 부부애를 과시하려 들며, 펜트하우스에 살기 위해 맘카페 '맘블리'의 리더 역할을 하며 뒷돈을 챙긴다. 심지어 아이들의 학업적 성취마저 거짓으로 부풀려 칭송받으려 한다. 딸 채영을 도피 유학 보내면서도 장학생으로 뽑혀 간다 거짓말을 하고, 아직 어린 아들 민식에게도 비밀을 지키라고 강요한다.
 
아마도 혜령의 마음은 공허함과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없는 혜령은 부와 힘으로 치장해 텅 빈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한다. 그녀에겐 자녀들조차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딸 채영이 자살 시도를 해 자신의 거짓말을 들키게 되었을 때 혜령은 혼수상태인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차라리 죽지 그랬니?"(8회) 이 소름 끼치는 말은 혜령이 자녀들을 철저하게 도구화하고 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이렇게 아이들을 도구화하는 태도는 드라마 속 다른 부모들의 모습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3회 학부모 회의가 열렸을 때 세찬의 엄마 다정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려줘야죠.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이 말엔 아이들을 독립된 주체가 아닌 어른들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수동적이고 도구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엉클>의 부모들 대다수는 이 말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지후의 할머니와 새어머니 영아(배그린 분)도 마찬가지다. 신화자 회장에게 지후는 자신의 사업을 이어갈 수단이었고, 게임중독자 영아에게 지후는 자신의 승부욕을 발휘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건 이들 모두가 자신의 불안을 감추고 인정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이런 행동들을 '사랑'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력의 고리를 끊으려면
 
그렇다면 이 폭력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나는 근본적으로 부와 권력을 거머쥐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엉클> 속의 세상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엉클>을 관통하는 흐름 중 하나는 '임대차별'이었다. 이웃들은 전학 온 지후네 가족을 임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긴다. 맘블리 회원들은 지후네 가족에게 대놓고 "저기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민폐죠"(1회)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좋은 학원을 유치해 아이들의 학력을 올리고, 이를 통해 집값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에게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일뿐이다. 나는 이런 맘블리들의 모습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여기는 이들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기득권을 가져야만 인간 대접을 받는 현실의 적나라한 풍자 같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진심을 드러내지 못한다. 자신들의 약점과 아픔은 숨기고 부와 힘을 과시해야만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마주하는 이웃들에게조차 진심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드라마 속 인물들의 마음은 늘 불안하고 공허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불안과 공허를 아이들을 통해 보상받으려 한다. 이렇게 도구화되고 대상화된 아이들은 쉽게 폭력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면 부모들도 바뀐다. 드라마에서 준혁의 진심이 승리를 거두고 동네 분위기가 반전되자 부모들의 태도 또한 바뀐다. 이들은 숨겨두었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부모들이 진심으로 소통하기 시작하자 아이들도 마침내 진정한 친구가 된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사람들 역시 서로 진짜 마음을 나누게 된 것이다. 그러자 아이들 역시 훨씬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엉클>속 맘커페 맘블리 회원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사회적 인정을 갈구한다.

<엉클>속 맘커페 맘블리 회원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사회적 인정을 갈구한다. ⓒ TV조선

 
"우리 할머니 엄마는 나쁜 사람이었나 보다. 할머니 안 예뻐했었나 봐. 사랑을 못 받았으면 사랑을 못 하거든요."  

준혁은 14회 자신을 감금한 신화자 회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말이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경험이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이유를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며 모두 엄마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부적절한 태도다. 이 엄마들이 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없었는지, 어째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사회를 먼저 살펴보았으면 한다.
 
<엉클>의 부모들이 동네 분위기가 바뀌자 달라졌듯,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돈 없고 힘이 없어도,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다면, 아이들이 도구화되고 정서적 신체적 학대에 노출되는 일 또한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존중받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약자를 이용하고 짓밟는 폭력 또한 사라지지 않을까. <엉클>의 따뜻한 느낌만으로 채워진 세상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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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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