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도 아니면서 자기를 유대인이라 밝히고, 신비로운 동화 속 이야기에 자기를 주인공으로 위치짓고, 그 동화 같은 이야기를 책으로 발표하고, 그 책이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읽히고, 심지어 그 책 내용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는데, 그 이후에야 그녀가 한 말이 모조리 다 거짓말이었다는 게 들통난 여성이 있다. 그 여성의 이름은 미샤 디폰세카. 물론 미샤 디폰세카는 꾸며낸 이름이며, 본명은 따로 있다. 
 
미샤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민사소송도 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 미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미샤와 늑대들>에 낱낱이 공개돼있다.  
 
영화 포스터 <미샤와 늑대들>

▲ 영화 포스터 <미샤와 늑대들> ⓒ 넷플릭스

   
우선 미샤가 꾸며낸 이야기를 따라가보기로 하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한창이던 때, 유대인 가정의 딸 미샤는 벨기에의 한 가정에 비밀리에 입양되어 살고 있었다. 미샤의 부모님은 나치에 적발(?)되어 갑자기 추방당했고, 그들의 어린 딸 미샤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동조하기 싫었던 벨기에 정부의 신중한 보호정책을 따라 비밀리에 카톨릭 가정에 위장입양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유대인 아이들이 제법 많았다. 입양가정에서 미샤는 모니크 드월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모니크 드월이 미샤의 본명이다.  
 
그러나 그 가정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한 미샤는 7살 어린 나이에, 독일 쪽으로 추방되었다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가출을 감행했다. 집을 나온 미샤는 독일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를 어슬렁거리다가는 언제 붙잡혀 강제수용소에 수감될지 아니면 가스실로 직행할지 알 수 없기에, 미샤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미샤는 우연히 늑대 무리를 만났다. 오래도록 늑대 무리가 미샤를 돌봐주었다. 미샤가 생존할 수 있도록! 전쟁이 끝나고 독일 나치가 물러날 때까지!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숲속에서 상당 기간 동안 늑대 무리를 따라다니며 생존을 유지해왔으며,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소지하고 있던 작은 칼을 사용해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까지 했다니,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다 놀랐다. 엄혹한 역사의 현장에서 작은 여자아이가 늑대의 도움으로 생존과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니! 늑대가 새삼 신비하게 느껴졌고, 작은 여자아이의 용기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미국에 살고 있던 미샤는 1990년대 중반 그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발설한 뒤로 미국 내에서 '특별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방송국에서도 미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출판업자들도 관심을 가졌다. 가장 집요한 관심을 보였던 사람은 당시 소규모 출판사 '마운틴아이비프레스'를 운영하던 제인 대니얼이었다. 

미샤의 이야기를 무고한 소녀와 사악한 나치의 대결에서 소녀의 승리라는 의미로, 즉 '신화적 이야기'로 해석한 제인은 무려 2년 동안 설득해 결국 미샤가 책을 쓰도록 이끌었다(1997년). 이 책을 내기 전까지 제인 소유의 출판사는 법률, 금융 분야 책들을 주로 냈었다. 분야도 완전히 다른데 이 책에 집착했던 걸 보면 제인은 미샤를 통해 경제성과 유명세를 노렸던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스틸컷 미샤의 이야기가 담긴, 여러 언어의 책들

▲ 영화 스틸컷 미샤의 이야기가 담긴, 여러 언어의 책들 ⓒ 넷플릭스

 
제인의 예측대로 미샤의 책은 미국 내에서 잘 팔려나갔고, 이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디즈니 영화사와 오프라윈프리 쇼 제작진도 미샤의 책에 관심을 보였다. 미샤와 제인이 떼돈을 버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미샤의 책이 오프라윈프리 쇼를 통해 전국으로 소개되려던 찰나(베스트셀러가 되는 최적의 경로), 웬일인지 미샤는 망설였다. 제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무렵 제인과 미샤의 관계가 눈에 띄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년 뒤 책 판매가 시들해지고 인세가 줄어들자, 미샤는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을 제인으로 지목했다. 책 판매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을 제인이 독차지한다는 게 미샤의 주장이었다. 두 사람은 합의에 이르지 못해 결국 법정에서 시비를 다투게 되었다. 결과는 제인의 패소였다. 제인은 배상금으로 2250만 달러(한화 약 260억 이상)를 선고받았다. 졸지에 제인은 무고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으로 등극했다.   
 
그때 제인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심정에 사로잡혔다. 제인은 미샤의 말에서 앞뒤가 미세하게 어긋나는 지점에 멈추어 새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머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했는데, 정작 본인의 은행 계좌번호에 첨부된 신상명세에는 어머니 이름이 버젓이 적혀있어 수상쩍었다. 그것 말고도 몇 가지 짚이는 게 있어서 제인은 사실을 대조하거나 분류하는 조사에 들어갔다. 그런 다음 그 내용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누군가 반응해오리라 거의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제인의 블로그를 보고 계보학자(genealogist) 샤론 서전트가 연락을 해왔다. 
 
농부였다는 할아버지가 미샤가 펴낸 책의 자료사진 속에서는 전연 농부의 행색이 아니었고(중산층 복장), 기르던 개도 농장에 사는 개 같지 않았으며, 일곱 살 때의 사진으로 내놓았지만 서너 살 유아의 얼굴로 보인다는 점 등, 여러 가지가 샤론이 보기에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았다. 
 
샤론은 제인과 의논하여, 벨기에에 살고 있는 친구 이블린 헨델(계보학자)을 호출했다. 이블린은 과거 카톨릭 가정으로 위장입양된 유대인 소녀였다. 자신이 유대인인 줄도 모르고 성인이 된 이블린은 마흔이 넘어서야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양가정에서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미샤와 이블린은 닮은꼴이었기에 이블린은 미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이제 이블린까지 뛰어들어 미샤의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인지, 얼마나 거짓인지 뒤쫓는 작업이 시작됐다. 
 
마침내 이블린은 미샤의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샤는 유대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름도 미샤가 아니라 모니크였다. 모니크는 독일군에게 레지스탕스 조직원의 이름을 다 말해버린 (조직을 배신한) 아버지를 둔 벨기에 사람이었다. 모니크 아버지는 배신의 대가로 혜택을 받으리라 기대했지만, 기대와 달리 그는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고, 결국 거기서 죽었다. 그의 배신경력은 레지스탕스 활동경력을 완전히 상쇄할 만큼 치명적이어서 이후 벨기에 당국은 그를 레지스탕스 조직원 명단에서 과감히 삭제해버렸을 정도다. 전쟁 이후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배신자'로만 지칭했다. 어린 모니크는 그러니까 '배신자의 딸'이었다. 
 
처음에 미샤, 아니 모니크는 자신을 뒷조사하는 제인, 샤론, 이블린의 활동에 대해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행동했다. 그 와중에도 프랑스와 벨기에로 날아가 강연을 하고, TV에 출연하고, 각종 행사에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증거로 내세우며 바짝 압박하자, 결국 언론에 성명을 내고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모니크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헌데, 다큐멘터리에는 처음부터 자기가 미샤라면서 인터뷰에 응한 나이든 여성노인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여성노인은 미샤도 모니크도 아니었다. 그 여성노인은 미샤의 대역배우였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시청자를 처음부터 속인 것이다. '제가 미샤랍니다'라며 나서는 어떤 여성을 미샤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 그녀를 신화적 동화 속 소녀로 인식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던 여러 나라의 평범한 남녀노소 사람들의 심정을 작품의 전개과정에서 잠깐이나마 시청자들이 직접 느끼도록 의도했다면 그 의도는 적중했다. 

물론 모니크(미샤)의 대역배우가 분장을 지우는 모습을 볼 때는 씁쓸한 느낌이 들 것이다. "어허, 이게 뭐란 말인가? 누굴 놀리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씁쓸함 가운데 미샤를 둘러싼 여러 현상들이 얼핏 이해가 될 수 있다. 당대에 여성노인 한 사람의 거짓말 몇 마디에 책 제작자, 방송 제작진, 뉴스 제작자 및 아나운서들, 심리학자, 학교 선생, 미샤의 사연을 소재로 하여 온갖 창의적 예술작업을 감행한 학생들, 미샤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감독과 배우들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속아넘어갔다는 사실 말이다. 
 
영화 스틸컷 미샤, 아니 모니크 (본인)

▲ 영화 스틸컷 미샤, 아니 모니크 (본인) ⓒ 넷플릭스

   
영화 스틸컷 미샤, 아니 모니크의 대역배우

▲ 영화 스틸컷 미샤, 아니 모니크의 대역배우 ⓒ 넷플릭스

 
거짓말쟁이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면 속지 않을 재간이 사실 없다. 모니크가 '배신자의 딸'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건지, 망상에 빠져 지내는 게 습관이어서 거짓말을 늘어놓은 건지, 돈 욕심이 생겨서 거짓말을 창작한 건지는 아무도 정확히 단정짓기 어렵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영화 안에서도 여러 번 암시적으로 지적되듯) 거짓말이 이른바 "아름답고 신비롭고 매력적이라면"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진짜라는 걸 믿고 싶은 순수한 소망이 생길 수가 있다. 저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진짜면 참 좋겠다, 하는 소망을 안고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거짓말이 참말이 아닐 리가 없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거짓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며칠 '프리지아(송지아)'라는 여성과 관련해, 가품&거짓말 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냐, 처음부터 다 거짓 아니었냐, 여러 말들이 많다. 나는 이번 논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프리지아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고(관심이 없었음), 사실 논란의 전말도 자세히 모르는 축에 속한다. 그러나 그동안 그녀에게 큰 관심을 기울였고, 또 '구독'과 '좋아요'를 숱하게 눌러주던 수십,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들, 즉 그녀에게 속아넘어갔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 간단치 않을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유대인을 사칭한 미샤의 아름답고 신비롭고 매력적인 이야기에 남녀노소와 국적을 불문하고 속아넘어갔던 그때 그 수많은 사람들처럼 상처입은 마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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