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세컨드> 영화 포스터

<원 세컨드> 영화 포스터 ⓒ 찬란


폭력 사건으로 노동교화소에 수감되어 오랫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름 없는 남자(장역 분)는 영화 상영 전 나오는 '중화뉴스 22호'에 딸의 모습이 담겼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자 그 길로 탈출해 필름을 찾아 나선다. 그는 사막을 헤치고 외딴 마을의 상영관에 도착했지만, 안타깝게도 상영은 이미 끝난 뒤다. 

관계자로부터 다음 마을의 상영회 소식을 들은 남자는 우연히 동생을 위해 필름을 훔쳐 달아나는 장가녀(류호준 분)를 목격하게 된다. 다음 상영회가 무사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뒤쫓던 남자는 제2농장 유일의 영사 기사 판(범위 분)에게 장가녀의 도둑질을 신고한다.

장이머우(張藝謀, 장예모) 감독은 중국 영화, 나아가 아시아 영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이다.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귀주 이야기>(1992)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인생>(1994)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 3대 영화제의 최고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대에 들어선 많은 제작비를 들인 <영웅: 천하의 시작>(2002), <연인>(2004), <황후화>(2006) 같은 무협이나 시대극을 찍으며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외에도 1997년엔 이탈리아 피렌체 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무대에 올리고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개, 폐막식 연출에 이어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행사 연출까지 맡는 등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원 세컨드> 스틸이미지

<원 세컨드> 스틸이미지 ⓒ 찬란

 
장이머우 감독의 신작 <원 세컨드>는 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단 1초를 위해 필름을 찾아 나선 남자의 이야기다.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색감으로 대표되는 대형 영화와 거리가 먼, 평범한 소시민의 소박한 삶을 그린 <책상 서랍 속의 동화>(1999)나 <집으로 가는 길>(1999)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다뤘다는 점에선 <산시나무 아래>(2010)나 <5일의 마중>(2014)도 떠오른다. 

장이머우 감독은 <5일의 마중>의 바탕이 된 소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어렸을 적 영화에 대한 추억을 덧붙여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그는 <원 세컨드>를 통해 "영화는 당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 속 인물들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를 묻고 싶었다고 밝힌다.

남자와 장가녀가 서로 다른 이유로 필름을 손에 넣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의 전반부는 마치 무성 영화 시대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펼쳐진다. 장이머우와 코미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미 <좋게 말로 하자고>(1997)와 코엔 형제의 <블러드 심플>(1984)의 리메이크인 <삼창박안경기>(2009)에서 블랙 유머를 보여준 바 있다. 

후반부는 <시네마 천국>(1988)이 선사한 따뜻함으로 가득하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외딴 마을에서 영화 상영회는 축제와 다름이 없다. 영화 상영회만 손꼽아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배송 사고로 인해 <영웅아녀> 필름이 더럽혀지자 영사 기사 판의 지휘 아래 필름을 물로 씻어서 부채 바람으로 말리는 세척 작업에 발 벗고 나선다. 마침내 필름을 건 영사기에서 나온 빛이 스크린을 비추는 순간은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다.
 
 <원 세컨드> 스틸 이미지.

<원 세컨드> 스틸 이미지. ⓒ 찬란

 
<원 세컨드>가 낭만과 향수 어린 시각으로 문화대혁명 시기를 그리진 않는다. 장이머우 감독은 검열 아래에서 가능한 방식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남자는 판 기사가 왜 노동교화소에 가게 됐냐고 묻자 '조반파(문화대혁명 지지파)' 대장과 싸워서라고 대답한다. 저항 세력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우회적으로 넣은 것이다. 아무리 외딴 마을이라고 해도 오락거리가 정부가 승인한 선전영화인 <영웅아녀> 밖에 없다는 사실은 문화대혁명이 얼마나 중국 문화를 황폐화했는지를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의 초반부와 마지막에 나오는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 풍경은 마치 당시 중국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담은 느낌이다.

장이머우 감독은 처음엔 남자의 딸(남자의 극 중 대사에 의하면 "고작 열네 살")이 밀가루 포대를 옮기다가 트럭이 움직여 죽는 설정을 영화에 넣으려고 했다고 알려졌다. 이것이 들어갔다면 남자가 딸이 나오는 1초 필름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영화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빼앗긴 시간을 되찾고 싶어 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의미의 시간(1초)의 영화인 셈이다.
 
 <원 세컨드> 스틸이미지.

<원 세컨드> 스틸이미지. ⓒ 찬란

 
<원 세컨드>는 지난 2019년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으나, 첫 공식 상영 직전에 갑자기 출품이 취소되는 해프닝을 빚었다. 영화제 측은 후반 작업 과정에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해서 상영이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중국 정부가 <원 세컨드>에 담긴 체제 비판적인 요소를 문제 삼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재편집과 재촬영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런 탓일까? 재촬영의 결과로 알려지는 영화의 '2년 후'를 다룬 에필로그는 무척 이질적이다. 앞선 문제점이 모두 해결되고 밝은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처럼 그려졌기 때문이다. 분명 명백한 타협이지만, 비난하고 싶지 않다. 이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장이머우 감독은 나름의 비판 의식을 영화에 담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분명 용감한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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