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맥베스의 비극> 포스터

영화 <맥베스의 비극> 포스터 ⓒ 애플TV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4대 비극'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쓰였지만 현재에도 통하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햄릿>은 주인공이 우유부단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파국으로 내몰고, <리어왕>은 주위의 충고를 무시한 교만이 가족의 파멸을 초래하며, <오셀로>는 질투가 사랑하는 이를 해하는 결말에 이른다. 그리고 <맥베스>는 마음 한 구석에 숨어 있던 야망의 불꽃이 결국 자신을 불사르고 만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약간씩 갖게 마련인 원초적 결함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발화되는 파멸의 이야기는 지독할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중세에서 현대 영어로 해당 언어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전환점이 되는 시절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수립하고, 그 뒤를 이어 '초강대국'의 자리를 이어받은 미국의 세기가 이어지면서 두 나라의 공통어인 영어, 그리고 문화상징인 영문학의 아이콘이 된 셰익스피어의 대표작들은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다. 아마 지금의 세계가 무너지고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수준의 위상인 셈이다.

그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숱하게 번역되고 원래의 형태인 연극으로 공연됨은 물론 엄청나게 많은 영화 버전이 만들어졌고 현재도 계속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중이다. 특히 4대 비극의 영화화는 동서양을 초월해 이뤄지는 중이고 다양한 형태로 현지화 됨은 물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재해석되기도 한다. 이 중 근래 가장 활발하게 새로운 버전이 탄생하는 작품으로 <맥베스>를 꼽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맥베스> 영화화의 작은 역사
 
11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왕 막 베하드(영어 명 맥베스)의 비극적 운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희곡 <맥베스>는 영화화가 잦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특기할 정도로 시공간을 초월한다. 주로 언급되는 영화 버전 중 첫 번째는 <시민 케인>으로 세계 영화사에 획을 그은 오손 웰스의 1948년 영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영국의 유명 배우들 중에선 연극 활동에서 출발해 영화로 영역을 확장한 이들이 적지 않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로 유명한 이언 맥컬런 경도 셰익스피어 극의 본산이라 할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 출신이다.) 오손 웰스 역시 셰익스피어에 대해 평균은 아득히 뛰어넘은 애착을 갖고 다수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바 있다.
 
오손 웰즈의 버전은 전형적인 문학작품의 각색 형태로 완성되었다. 즉 원작 내용이 거의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겨졌다고 보면 된다. 1940년대 배경이다 보니 아무래도 지금 시각으로 보면 '옛날' 느낌이 나지만 거장의 손길이 닿은 만큼 충분히 지금 봐도 볼 만하다. 특히 오손 웰스 특유의 표현주의적 느낌이 잘 살아 있다. 아무래도 폭력수위나 묘사에 제약이 있던 시절이라 (원작에서 적지 않은) 잔인한 수위 묘사에 이런 표현주의 기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다음으론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영화화에 도전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과감히 배경을 일본 전국시대로 옮기는 등 상당한 각색을 도입해 1957년, <거미집의 성>으로 새로운 버전의 맥베스를 선보인다. (감독은 훗날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역시 일본 중세로 옮긴 또다른 대표작 <란>도 제작한다.) 시대 배경이 옮겨지면서 파격적이라 할 변경도 이뤄졌는데, 영미권 리메이크 작품들이 가능한 원작의 대사를 살리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반해 과감히 희곡 대사를 전혀 쓰지 않았고, 세 마녀 대신 일본 고유의 귀신 '오니'로 대체함은 물론 구로사와 특유의 장대한 시대극 연출을 가미해 특히 국내에선 가장 잘 알려진 맥베스 영화화가 되었다.
 
다음으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71년 <맥베스>가 등장한다. 해당 작품은 수위가 결코 낮지 않은 맥베스의 영화화 중에서도 가장 고어 풍 연출로 유명하다. 이전 오손 웰스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들이 고풍스럽고 상징적인 표현이 강조된 반면, 컬러 화면으로 선보인 폴란스키의 영화는 원작의 배경인 중세 유럽의 풍경을 실감나게 재현해 놓았다. 폭력 수위 또한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아 지금 봐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되기 딱 좋을 정도다. 맥베스가 광기에 물들면서 벌이는 살육이나 그의 비참한 최후 이후 시신을 훼손하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연출한다. 그저 선정적인 장면이 아니라 인물의 몰락과 패배자에 대한 대중의 냉담함이 잘 표현된 대목으로 구로사와의 영화에 이어 재해석이 돋보이는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앞서 등장한 거장의 영화들 때문인지 알려진 새 영화화는 뜸한 편이었다. 결말까지 잘 알려진 원작의 유명세에다 거장의 솜씨로 더해진 영상화란 쉽게 도전하기엔 퍽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전 리메이크를 벗어나 새로운 작업이 2010년대 이후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근래 들어서는 2015년, 저스킨 커젤 감독 연출,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코티야르 주연으로 <맥베스>의 새로운 버전이 소개되었다.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는지 국내에선 <맥베스>의 영화화라면 이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언급하는 외에는 오히려 2015년 판 영화를 떠올리는 경우가 일반적인 경향이 되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과거 영화들에 대한 향수를 가진 입장에선 아쉽긴 하지만 그만큼 셰익스피어 고전 비극이 가진 생명력을 증명하는 사례일 것이다.
 
21세기 등장한 <맥베스> 영화의 특색
 
 영화 <맥베스의 비극> 스틸

영화 <맥베스의 비극> 스틸 ⓒ 애플TV

 
과거의 맥베스 영화화가 전쟁 시대극의 색깔로 다가왔다면, 21세기 들어서 소개되는 영화 경향은 미니멀리즘 경향이 추세인 듯하다. 저스틴 커젤의 영화는 앞서 등장한 작품들에 주눅들지 않고 원작 자체의 해석에 집중하는데 특히 대사 처리가 그렇다. 가능한 희곡의 고풍스런 문어체 대사를 살리려 노력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면 욕심낼 대규모 전쟁 장면이나 시대 배경 고증에 매몰되기보다는 심리 묘사에 많은 공을 들였다. 원작이 가진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고찰이 가지는 보편성에 착목하는 접근법이다. 그런 경향은 공식적으로 12번째 영화화된 조엘 코엔의 최신판 <맥베스의 비극>에서 극대화된다.
 
2021년에 제작된 가장 새로운 맥베스의 버전은 거의 연극을 보는 듯 분위기로 완성되었다. 그 지점에서 독창성에 호감을 표하는 이와 당혹해하는 이들이 분명히 구분될 듯싶다. 영화 전체 분량이 고풍스러운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촬영 덕분에 과거 고전영화의 분위기도 전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장면 전환이 인상적인데, 원작 초반에 맥베스와 벵코가 황량한 들판에서 접하는 안개가 등장했다 걷히듯 장면에서 장면이 이어진다. 마치 무대에서 페이드 인(fade-in), 페이드 아웃(fade-out)을 지켜보는 것처럼 처리된다. 이런 연출기법은 어떤 순간에는 지극히 모호하고 흐릿하게 다가오다가도 때로는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나 대사를 곱씹게 만든다. 호오를 떠나 독특하게 뇌리에 남는 기묘한 이미지의 향연이 가득 펼쳐진다.
 
줄거리 설명이 달리 필요할까? 특히나 이번 버전은 고전 희곡을 거의 (현대어 버전으로만 각색했을 뿐) 원작 대사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그래서 더욱 연극적 향취를 풍긴다. 확고한 감독의 고집이라 품평을 하기보단 취향의 차원으로 다가가야 할 지점이다. 이미 앞선 11편의 영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고전 비극을 영화로 옮겨보겠다는 선언으로 느껴질 만큼, 조엘 코엔 감독의 단호한 입장은 아주 독특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조엘 코엔만의 인장을 새겨 넣은 <맥베스의 비극>
 
극도로 '미니멀'한 연출과 구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몰입도는 높은 편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굳이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호화롭다. 특히 맥베스 역에는 덴젤 워싱턴, 그와 함께 야망을 불태우고 함께 파멸하는 부인 역에는 프란시스 맥도맨드다. 이외에 덩컨 왕 역을 맡은 브랜든 글리슨도 눈에 익은 배우다. 고전 흑백영화를 닮은 <맥베스의 비극>의 선명하게 부각되는 인물들의 윤곽은 검증된 배우들의 이미지를 관객의 눈에 각인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연극적 특징이 오히려 아쉬운 지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대사 전달에 중점을 두는 전개가 두드러지다 보니 배우들의 풍부한 연기 색깔보다는 대사에 집중해야 하는 지점들이 적지 않게 느껴졌다. 고전영화의 미덕 중 흑백의 시각적 효과는 충실히 복원되었지만 무성의 사운드 측면이 이미지에 집중하게 해주던 부분은 오히려 반감된다고 할까. 일진일퇴인 셈이다. 그럼에도 <맥베스의 비극>은 몇 순간 압도적인 시각적 황홀경을 제공하는데 무엇보다 세 마녀 캐릭터의 놀라운 그로테스크함이다. 마녀들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의 긴장감은 지금껏 봐온 몇 편의 맥베스 영화화 중에서도 정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채로운 지점도 꽤 여럿이다. 중세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흑인 비중이 많다. 특히 주인공 맥베스와 라이벌 맥더프 모두 흑인일 정도로 영화는 관객의 통념을 깨트린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셰익스피어 원작의 영화화에선 그렇게 놀랍지는 않다. 원래 셰익스피어의 원작 자체가 역사적 고증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던 걸 감안할 필요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튜더 왕조에서 스튜어트 왕조로 영국 역사가 격동적으로 교체되던 시절에 고전 이야기 속에 당대 정치현실을 풍자적으로 녹여내는 시도를 즐겨했던 것으로 유명하기도 한지라 뜬금없이 로마 시대 배경에 자명종 시계가 나오는 식의 묘사가 적지 않은 편이다.
 
이런 파격적 특성을 활용해 셰익스피어의 다른 원작 영화화에서 이미 상당한 시도가 이뤄진 바 있다. 줄리 테이머 감독의 <타이투스>나 이언 맥컬런 경이 열연한 <리처드 3세>는 고대 로마나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원작에 20세기 현대를 뒤섞는 시도를 선보여 호평받기도 한 지라 출연배우들의 피부색 빼고는 거의 원작에 손대지 않은 이번 시도는 별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후발주자는 원작 뿐 아니라 이전 버전의 영화화 작업들과도 연결되게 마련이다.
 
처음은 아니지만 맥베스와 함께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되는 운명의 주인공 벵코의 캐릭터 재해석도 눈여겨볼만 하다. 원래 야망의 화신으로 변하는 맥베스에 대비되는 충신 이미지였던 벵코의 캐릭터가 본 작품에서는 마녀의 예언이 하나씩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 욕망을 품게 되는 다면적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 이중적 모호성은 지극히 현대적 감성의 발로다. 실제 원작 해석에서도 벵코의 자손들은 (셰익스피어 생전이기도 한) 훗날 잉글랜드와 통일왕조를 이루는 스튜어트 왕조의 선조로 보는 설정이라 이모저모 영화와 뒤 배경 여담으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측면이다.
 
OTT 전성시대 영화의 방향을 생각하다
 
 영화 <맥베스의 비극> 스틸

영화 <맥베스의 비극> 스틸 ⓒ 애플TV

 
이제는 수많은 거장 감독들이 OTT에서 활발히 작업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꼭 OTT 탄생과 함께 개막된 것은 아니다. 이미 21세기 초부터 HBO 같은 대형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들이 영화 감독들과 협업해 대작 드라마들을 선보이게 되면서 예고된 일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극장용 영화 vs.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일종의 '선'을 애써 강조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2010년대가 지나 비약적으로 온라인 스트리밍과 쌍방향 수용이 추세가 되면서 그 미묘한 균형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극장이 코로나19 팬데믹 된서리를 맞고 OTT가 그 빈자리를 접수하는 현 상황은 전혀 새로운 국면임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그런 배경을 놓고 보면, 본 작품에 대한 판단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극장 개봉 없이 곧바로 스트리밍 공개가 이뤄졌지만 미국에선 극장 개봉이 선행된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 느낌으론 <맥베스의 비극>은 OTT의 주요 시청방식인 안방에서 텔레비전이나 노트북 모니터, 혹은 스마트폰 액정화면으로 보기엔 그리 추천하지 않는 형태의 작품이다. '영화적' 혹은 '연극적' 관람형태가 작품을 즐기기에 가장 적절하다는 판단이 처음 화면을 접하자마자 들기 시작했다. 요즘 OTT에 대항해 극장이 '영화적'이라 내세우는 한 유형인 장대한 스케일의 대하 전쟁사극과는 거리가 멀지만 몰입도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다소 폐쇄적 환경(즉, 전통적 극장 관람의 형태)에서의 수용을 요구하는 결과물이다.
 
연극공연을 관람하듯 두 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동안 <맥베스의 비극>을 보는 체험을 가진 후 들게 되는 생각은 꽤나 복잡했다. 원작과의 싱크로 비율 면에선 너무나 스트레이트한지라 보태고 뺄 게 없다. 오히려 OTT 상영을 전제한 작품이 극도로 정반대 관람환경을 상정한 파격에 당황해하며 여운을 가진 것 같다. 기존 매체 간 경계가 무너지는 데 대한 저항적 시도인지, 조엘 코엔 감독의 욕망 구현 차원인건지 잘 판단이 안 서는 지점이다.
 
어떤 형태가 이 12번째 <맥베스>를 누리는 최상의 방식일까.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안방에서 혼자 보는 형태가 최상의 감상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극장에서 다수의 '동료' 관객들과 함께 본 작품을 봤더라면, 혹은 몇 편의 같은 원작을 가진 작품들과 비교 시사의 자리에서 작품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가 끝나는 순간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욕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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