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인간은 지키고 싶은 현실과 열망하는 미래를 지향한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맞는지 알 수 없기에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고 의심이 들더라도 눈을 감기 전까지 단정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두 가지 길이 있다. 다양한 직간접 경험을 통해 사유의 폭을 넓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거나, 믿고자 하는 것에 집착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적과 이유를 잃어버리거나 근본을 잊게 되는 경우, 수단이 목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순간 존재는 가치를 잃고 무너지게 된다. 희석된 가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주춧돌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현상에 매몰되는 사람은 거대한 파도를 예측하지 못해 점멸한다.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와 결혼한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 욕망은 실체가 없었다. 부와 명예. 화려한 사교계의 중심. 구찌의 본질과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사유 없이 발생된 욕망은 구찌 일가와 스스로를 파멸시켰다.
 
 파트리치아를 연기한 레이디 가가

파트리치아를 연기한 레이디 가가 ⓒ 유니버설 픽쳐스

 
구찌 가의 몰락을 그린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아담 드라이버, 레이디 가가, 알파치노, 자레드 레토 등 등장 배우가 화려하다. 심지어 감독은 리들리 스콧이다. 이 엄청난 구성원들이 구찌라는 소재로 만든 영화가 내게 던진 수많은 질문중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마우리치오는 자신이 구찌 대표가 되었을 때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이다.

그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법을 공부했고, 좋은 변호사가 되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차분한 열정을 가진 마우리치오에게 구찌 집안의 패션업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가업에 합류하는 것보다 스스로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어 했다.

파트리치아는 그런 그를 사랑했다. 물론 변호사를 꿈꾸는 청년이 아니라, 구찌 집안의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치오를 노골적으로 유혹해 결혼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둘의 사랑은 억지라기보다 자연스럽게 피어올랐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 여부를 떠나 조건부 사랑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모든 사랑에는 이유가 있고,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각자 사정에 맞게 결합하는 것이다. 어쨌든 둘은 마우리치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다.

마우리치오는 결혼 이후 파트리치아 욕심 때문에 구찌 가업에 합류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파트리치아에게 구찌는 단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클림프의 그림을 보고 피카소라고 하고, 책은 지루해서 읽기 싫다는 취향을 가진 여자였다. 운송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의 딸이라 다소 여유로운 형편이었다. 높은 구두를 신은 채 아버지 회사 현장 사무실에서 경리를 보고, 밤에는 파티를 즐겼다. 그런 그녀에게 구찌와 같은 고급 브랜드는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꾸밀 수 있는 반려품이었다. 구찌오 구찌의 가죽 공예, 뱀부백의 역사와 GRG의 미는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구찌는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 수 있는 수단이었고, 남편은 그 매개체였다.

마우리치오는 그런 파트리치아의 욕망에 이끌려 우여곡절 끝에 구찌 경영자가 된다. 타인의 욕망에 이끌려 이용되었지만, 후에 정상에 오르자 이것은 내가 원한 것이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이 모든 여정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면 견딜 수 없는 허무와 허탈감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높고 뾰족한 봉우리에는 외롭고 극단적인 좁은 세상만이 있었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법률가를 꿈꾸던 순박했던 청년은 너무 높이 올라와 내려갈 엄두를 못 냈다.

삼촌을 탈세 혐의로 감옥에 보내고 사촌 형을 파산시키면서 구찌 최대 주주이자 CEO가 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 무엇이라고 느꼈을까. 이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을까.

착한 변호사가 꿈꿨던 그가 냉정한 경영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모두를 위한 올바른 길이라고 믿었을까. 톰 포드를 영입하고 패션쇼를 성공리에 치르면서 그는 경영자로서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영화 속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의 행복한 시절

영화 속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의 행복한 시절 ⓒ 유니버설 픽쳐스

 
마우리치오는 결국 실패한다. 사촌의 경영권을 뺏기 위해 손잡은 외부 세력은 구찌 가를 몰락시킨다. 타인의 힘에 기댄 혁명은 결국 그로 인해 실패한다는 역사가 구찌에도 있었다. 표면적인 원인은 마우리치오의 과도한 개인 부채와 적자 경영이었지만, 이는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 마우리치오 아버지 때부터 곁에서 구찌 집안을 충실하게 보좌했던 변호사의 노림수였다.

마우리치오는 구찌를 사랑했고, 구찌를 구찌답게, 더욱 혁신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경영은 이름이 아니라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더욱 노련한 비즈니스맨이 알려주었다. 창업가의 몰락은 비극이었지만, 지금의 구찌 명성을 보았을 때 과연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영화 첫 장면은 마우리치오가 여유로운 아침에 야외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신 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다. 엔딩에서 그 장면은 다시 한번 더 나온다. 그제야 처음에 보였던 작은 웃음의 의미가 이해되다가도 과연 구찌로부터 버림받기까지의 긴 여정을 스스로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궁금해진다. 이후 그는 아내가 사주한 청부업자에게 살해당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읽으면 음악이 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