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계에 또다시 음주 관련 사고가 발생했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지난 19일 음주운전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프로농구 서울 삼성 소속의 농구선수 천기범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당일 저녁 아파트단지 앞 계단에 걸쳐있는 차량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천기범과 동승 중인 여성을 발견했다. 음주 측정 결과 당시 천기범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인 0.03% 이상으로 알려졌다. KBL은 22일 천기범에 대한 재정위원회를 열었다.
 
음주운전 자체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큰 잘못이지만, 그중에서도 천기범의 행위는 악질적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천기범은 술 취한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하고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는 직접 운전하지 않았다는 '거짓 진술'에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은 CCTV 조사 결과 천기범이 운전자였음을 확인했다.
 
또한 천기범의 승용차는 일반 도로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이동하는 아파트단지 앞 계단에 걸쳐있던 황당한 상황이었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었다.

더구나 천기범의 소속팀 삼성은 불과 8개월전 김진영의 음주운전으로 큰 곤욕을 치른바 있다. 당시 김진영은 KBL로부터 받은 정규리그 27경기 출전 정지, 구단 자체적으로는 54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김진영의 사고 당시 상무 소속이었던 천기범은 지난해 12월 군복무를 마치고 소속팀에 복귀했으나, 얼마되지 않아 삼성 구단에 또다시 음주운전사고라는 불명예를 안겼다.
 
연세대 재학 시절 농구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천기범은 2016년 신인 드래프트 4순위로 삼성에 지명되었으나, 프로에선 통산 정규경기 196경기에 출전해 평균 4.1득점, 3.0어시스트, 1.8리바운드에 그치며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무 복무를 마치고 2021-2022시즌 복귀한 이후에도 9경기에 출전했으나 부상이 겹치며 별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삼성으로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삼성은 올시즌 7승 25패, 승률 .219에 그치며 리그 꼴찌에 그치고 있다. 새해 초에는 올시즌 최다인 11연패 수렁에 빠지는 등 최근 14경기에서 무려 13패를 기록하며 걷잡을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선수단이 똘똘 뭉쳐서 분발해도 모자랄 시점에, 삼성은 농구 외적으로 1년도 안되는 기간에 벌써 두 번이나 소속 선수들이 음주운전을 저지르는 대형사고를 쳤다. 사실상 천기범의 공백으로 인한 전력누수는 물론이고 팀분위기를 더욱 침체시키는 대형 악재다.
 
천기범과 김진영은 모두 '이상민 감독 시대'에 발탁한 선수들이다, 신인드래프트 상위 순번으로 지명을 받으며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기대를 모았던 자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삼성으로서는 안목도 없었고, 성적과 팀 기강 모두 엉망이 됐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말이 없게 됐다.
 
삼성은 결국 21일 구단 공식 SNS를 통해 천기범의 음주운전 혐의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삼성은 "천기범의 음주운전 사건과 관련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라고 전하며 "구단은 작년 김진영의 음주운전 사건 발생 이후 근절을 위하여 노력했음에도 또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하여 깊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음주운전은 용납할수 없는 범죄행위인 만큼 해당 선수에게 강력한 징계를 내리고 다시는 구단에서 음주운전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책을 강구하여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천기범은 김진영의 사례와 비교해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 그 죄질이 더 나쁘다. 더구나 팀동료가 불과 몇 달전 음주운전으로 어떤 댓가를 치르는지 지켜보고도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가중 처벌을 받아도 할말이 없어 보인다. 또한 특정 구단과 선수를 넘어서 농구계 차원에서 봐도 코로나19 시대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인기 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는 프로농구의 이미지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었다. 농구팬들의 여론은 출장정지 수준을 넘어서 아예 퇴출 등의 일벌백계를 요구하는 반응이 대다수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농구계와 그 선배들부터가 모범을 보이지 못한 자업자득인 측면도 크다. 특히 유명한 주당들이 즐비하고 인맥과 학연으로 엮여있는 남자농구계는 예전부터 "술마시고 실수할수도 있지" 혹은 '끼리끼리 의리의리'로 요약되는 그들만의 폐쇄적인 집단주의 문화가 강했다.

농구계 레전드로 꼽히는 허재, 서장훈, 현주엽 등은 모두 한 차례 이상 음주운전 경력을 보유한 인물들이다. 프로화 이후로도 음주 관련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김민구는 전주 KCC 소속이던 2014년 당시 국가대표 합숙기간에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며 본인이 고관절에 큰 부상을 당하여 이후 농구선수로서의 커리어가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김지완, 2018년에는 박철호 등 잇달아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또한 음주 관련 사고의 범위를 더 넓히면, 지난해 울산 현대모비스의 기승호는 구단 숙소에서 회식중 후배 선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주취 폭행'을 저질러 농구계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KBL은 이런 음주 관련 사고가 발생할때마다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여론의 화살만 피하려는 형식적인 조치나 '제 식구 감싸기'식 동정론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저지른 김민구, 김지완, 박철호 등은 모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여론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다.
 
그나마 2020년대에 접어들며 '윤창호법' 제정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음주관련 사고에 대한 처벌 기준과 수위를 점점 더 강화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체육계 역시 음주 관련 사고에 있어서는 이제 한번만 사고를 저질러도 퇴출까지 거론될 정도로 강경해지는 분위기다. 야구계에서 촉망받는 메이저리거 스타였던 강정호는 음주 관련 사고로 미국에서 퇴출당했고, 국내 복귀를 추진하던 것도 여론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농구계 역시 앞으로 음주관련 사고에 있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까지 가능할 정도의 강도 높은 무관용 원칙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설사 과거의 사례라고 해도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농구계 활동을 제약하는 등의 강도 높은 후속 조치가 마련되어야한다. 지나간 잘못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학습효과가 없다면, 앞으로도 농구계에 이런 추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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