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뜻밖의 동물학대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KBS 측은 20일 공식입장을 내고 <태종 이방원> 촬영 중 벌어진 사고에 대해 사과했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해 11월 2일 방송된 <태종 이방원> 7회에서 이성계(김영철)의 낙마 장면을 촬영하던 중 발생했다. 극중 상황은 이성계가 사냥 중 갑작스러운 낙마로 큰 부상을 입는 모습이었다. 이성계가 위중한 상황을 틈타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는 정몽주(최종환)와 정적들의 공격이 이어지는, 극의 흐름상 중요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당시 현장 촬영 장면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태종 이방원> 제작진의 동물학대와 안전불감증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영상에는 사람을 태운 말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달리다가 강제로 넘어뜨리는 모습이 담겼다. 말은 이 과정에서 몸체가 완전히 뒤집히며 땅에 처박혔고, 함께 떨어진 대역 스턴트 배우 역시 부상이 걱정될만큼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나마 촬영 직후 스태프들은 쓰러진 배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급하게 달려가지만, 정작 말의 상태는 누구도 확인하지는 않았다. 쓰러진 말은 한참 동안 홀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듯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우려와 공분을 샀다. 급기야 해당 말이 촬영 일주일 후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제작진을 향한 비판 여론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동물자유연대 측 "촬영 방식에 경악"
 
 KBS 1TV 사극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 촬영현장. 말의 다리에 줄을 걸어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촬영한 영상을 동물자유연대가 공개했다.

KBS 1TV 사극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 촬영현장. 말의 다리에 줄을 걸어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촬영한 영상을 동물자유연대가 공개했다. ⓒ 동물자유연대

 
해당 영상을 공개한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는 "2022년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촬영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동물자유연대 측은 "현행 동물보호법은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 금지 처벌하고 있다"며 "또한 이같은 장면을 담은 영상을 촬영, 게시하는 것도 동물학대로서 범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태종 이방원>에서 말을 강제로 쓰러뜨린 장면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던 촬영 현장에서의 동물 학대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며 KBS 측에 해당 촬영 장면의 전체 원본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KBS는 결국 20일 공식입장을 내고 "<태종 이방원> 촬영 중 벌어진 사고에 대해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KBS는 "낙마 장면 촬영은 매우 어려운 촬영이다, 말의 안전은 기본이고 말에 탄 배우의 안전과 이를 촬영하는 스태프의 안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제작진은 며칠 전부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준비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이어 KBS는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촬영 당시 배우가 말에서 멀리 떨어지고 말의 상체가 땅에 크게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지만 최근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건강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촬영 후 1주일쯤 뒤에 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KBS는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며 "다시 한번 시청자분들과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거세지는 비판 여론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

 
KBS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에는 제작진을 성토하며 방송 중단과 폐지를 요구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방송 촬영을 위해 안전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의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라는 동물자유연대의 청원에 동의한 누리꾼들의 숫자가 5만 명을 돌파했다(21일 오전 기준). 
 
<태종 이방원>은 KBS가 지난 2016년 <장영실> 이후 무려 5년 만에 부활시킨 대하사극이다. 이미 여말선초의 시기를 다룬 사극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식상함, 극의 완성도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 대한 우려에도 드라마는 10%대의 시청률을 돌파하며 대하사극을 원하는 고정 시청층이 있음을 증명했다.
 
사실 지상파 방송에서 정통사극은 시청률과 같은 대중성과 상업적 지표로만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태종 이방원>은 방송의 공영성차원에서 추구되어야 할 콘텐츠의 가치, 한국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과 재해석, 소외된 중견배우들의 재발견  차원에서 의미를 가지다. 그래서 <태종 이방원>의 성공 여부는 겨우 다시 물꼬를 트기 시작한 KBS 대하드라마가 앞으로도 그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암초를 만나며 드라마의 존재 당위성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 아직도 현장 곳곳에서 남아있는 낡은 제작 관행상의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점, 특히 대규모 사극 제작 과정에서 벌어지는 안전불감증과 생명 경시 풍조라는 어두운 그림자 역시 확인한 순간이다.

한국 사극이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안전을 담보삼아 무리한 위험을 강요하는 제작관행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단순히 극의 재미를 넘어서 역사 고증, 주제의식과 메시지, 제작 관행 등에 이르기까지 컨텐츠 전반에 시청자들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시청률은 그 이후의 문제다. 
태종이방원 동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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