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 은퇴 선언 시속 120㎞대의 느린 직구로도 개인 통산 '101승'의 금자탑을 쌓은 유희관이 정든 마운드를 떠난다. 사진은 2021년 5월 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1 KBO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이 5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펼친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 유희관 은퇴 선언 시속 120㎞대의 느린 직구로도 개인 통산 '101승'의 금자탑을 쌓은 유희관이 정든 마운드를 떠난다. 사진은 2021년 5월 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1 KBO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이 5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펼친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NBA(미프로농구) 스타 앨런 아이버슨은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아이버슨의 정확한 표현은 "중요한 것은 서류상의 키(size on paper)가 아닌 마음의 크기(size of Heart, 승리에 대한 열망)"이라고 했던 내용을 의역한 것이다. 2001년 NBA 올스타전에서 아이버슨과 그가 속한 동부팀이 서부보다 신장이 작아서 불리할 것이라는 대부분의 전망을 보란 듯이 뒤집고 역전승을 거둔 뒤에 나온 발언이었다.
 
아이버슨은 거구들이 넘쳐나는 NBA에서 180cm 초반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단신 득점왕과 MVP를 차지하고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하며 입지전적인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아무래도 타고난 신체적인 조건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아이버슨의 성공은, 농구와 단신 선수들에 대한 선입견을 보기좋게 극복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인상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농구선수에게 타고난 키와 운동능력이 중요한 재능이듯 야구선수, 특히 투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공의 속도, 즉 구속이다. 프로수준에서 투수로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직구의 구속이 140km/h대 중후반 이상은 나와줘야 한다는 것이 야구계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물론 구속이 투수의 전부는 아니지만 파워넘치는 강타자들이 즐비한 프로에서 공이 느린 투수는 살아남을 확률이 그만큼 떨어진다. 150km/h대의 강속구를 가지고도 실패하는 투수들이 즐비할 정도다.
 
그런데 고작 평균 120~130km/h대의 구속으로 한 시대를 호령한 투수가 있다. 단지 느린 구속으로 프로무대에서 살아남은 정도를 넘어서, 통산 100승을 넘어선 '전설'이 됐다. 농구의 앨런 아이버슨만큼이나 독특한 유형의 성공사례로 오랫동안 기억될 야구선수, 바로 '느림의 미학' 유희관이다.
 
느린공으로 '전설'이 된 유희관

유희관이 최근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소속팀 두산 베어스는 18일 유희관이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유희관은 2009년 중앙대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로 두산에 지명되었고, 군복무(2011~2012년) 기간을 제외하고 줄곧 두산에서만 활약한 '원클럽맨'이다. 프로야구 통산 기록은 총 281경기에 출전해 1410이닝을 던지면서 101승 69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4.58을 올렸다. 특히 101승은 역대 두산 좌완 투수로는 최다승 기록이다.
 
유희관의 트레이드마크는 유난히 느린 구속, 운동선수답지 않은 체형, 유쾌한 개그 캐릭터 등으로 요약된다. 그의 대표적인 별명이었던 느림의 미학이라는 수식어처럼, 유희관은 가장 빠른 공을 던져도 최고 시속 130km대 중반 정도였다. 당장 고교 수준에서도 그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수두룩하고, 프로 수준에서는 연습용 배팅볼 투수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유희관은 이 느린 공으로 10년 넘게 프로에서 살아남으며 심지어 정상급 선발투수로까지 군림했다.
 
유희관은 데뷔 초기부터 항상 냉정하고 비관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프로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느린 공 때문에 유죽하면 상대팀이었던 선배 타자가 자신을 무시하냐면서 화를 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유희관이 선발투수로 자리잡은 이후에도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한다는 건 줄곧 약점으로 치부됐다. 전력분석이 발달한 현대야구에서 타자들이 적응하기만 하면 유희관의 구속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운동선수같아 보이지 않는 비만형에 가까운 체형과 개그맨같은 유쾌한 이미지 때문에 자기관리에 소홀할 것이라는 오해도 많이 따라다녔다.
 
속도 아닌 방향

하지만 유희관의 최대 강점은 '속도가 아닌 방향'에 있었다. 구속이 부족한 대신 유희관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언제든 정확하게 공을 찔러넣을 수 있는 정확성과, 파워히터들과의 기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이 있었다. 유희관은 스트라이크존의 좌우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정교한 제구력,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볼배합을 바탕으로 타자들을 압도했다. 평균 시속 100km 이하 초슬로우 커브, 우타자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싱커 등은 유희관의 대표적인 결정구였다.
 
수치상의 구속은 느려도 무브먼트가 많아 구위는 결코 빠른 투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데다가, 볼배합상 가장 느린 공과 가장 빠른 공 사이의 구속 간극이 워낙 크다보니 타자들이 느끼는 체감 구속은 훨씬 더 빨랐다. 외부에서 팬들이 보기에는 '프로선수들이 왜 저렇게 느린 공도 못치냐'고 이해하기 어려워했지만, 정작 실제 상대하는 타자들 입장에서는 배팅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게 유희관의 공이었다.
 
유희관은 2013시즌부터 선발투수로 혜성같이 등장해 10승을 올렸고 2015시즌 18승 5패 평균자책점 3.94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며 두산에게 14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사했다. 이후 2020시즌까지 무려 '8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거뒀는데 KBO 역사에서 이 기록을 세운 것은 유희관을 포함하여 이강철(1989~1998년), 정민철(1992~1999년), 장원준(2008~2017년)까지 4명에 불과하다. 전성기에는 2015년부터 3년 연속 180이닝 이상을 소화할 만큼 이닝 소화력도 최정상급이었다.
 
물론 더스틴 니퍼트나 조쉬 린드블럼처럼 팀의 1선발 에이스는 항상 외국인 선수들의 몫이었지만, 3·4선발로는 KBO리그 역대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업적을 남긴 레전드가 됐다. 유희관의 전성기 동안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2015∼2021년)에 진출하며 세 차례나 우승(2015, 2016, 2019년)을 차지했다. 특히 2016년 우승 당시 아이언맨 마스크와 티셔츠를 착용한 유희관을 중심으로 두산 선수단이 환호하던 장면은, 유희관 야구인생 최고의 순간이자 KBO리그 역대 최고의 우승 세리머니 중 하나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하지만 유희관도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유희관은 사실상 2020년부터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했고, 2021년엔 생애 첫 FA(자유 계약) 자격을 얻었으나 연봉(3억 원)보다 인센티브(7억 원)가 더 큰 1년 계약에 그쳤다. 마지막해였던 지난 시즌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4승(7패, 평균자책점 7.71)에 머무르며 9년 만에 10승 달성에 실패했다.

30대 후반으로 기량 하락세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이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가파른 추락으로 사실상 프로에서의 경쟁력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미 시즌이 끝나고 은퇴가 어느 정도 예상된 상황이었다. KBO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느린 구속 때문에 전성기에도 한 번도 국가대표로 발탁되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 남는 기록이다.
 
비록 마무리가 아쉽긴 했지만 유희관은 '신체능력의 핸디캡'과 '세상의 편견'에 맞서 프로무대에서 자신만의 성공스토리를 구축했다는 당당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잠시 1~2년 반짝하다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유희관은 KBO리그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레전드가 됐다. 아이버슨이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농구했던 것처럼, 유희관은 '속도가 아닌 방향'을 선택하며 자신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