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느림의 미학'으로 주목을 받았던 좌완 투수 유희관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두산은 18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유희관이 정든 유니폼을 벗는다. 그는 18일 구단에 현역 은퇴 의사를 밝히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유희관은 구단을 통해 "오랜 고민 끝에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 좋을 때나 안 좋을 때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모든 팬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작년 시즌 이후 많은 고민을 했고, 후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야 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고 은퇴 소감을 말했다.
 
 지난해 9월 19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에 등판했을 당시 유희관의 투구 모습으로, 이날 경기서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9월 19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에 등판했을 당시 유희관의 투구 모습으로, 이날 경기서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 두산 베어스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하게 걸어온 100승 투수 유희관

장충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를 졸업해 2009년 신인 드래프트서 2차 6라운드로 두산의 지명을 받은 유희관은 지난 시즌까지 1군 통산 281경기에 등판, 1410이닝 101승 69패 ERA 4.58 피안타율 0.298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1.46을 기록했다.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상무야구단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첫 시즌이었던 2013년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불펜 투수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가 그해 5월 4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서 선발 투수 임무를 맡게 됐다. 순서상 선발 등판이 예정돼 있던 니퍼트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진욱 전 감독이 유희관 카드를 택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5⅔이닝 5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프로 데뷔 첫승을 신고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유희관은 5월 말 이후 아예 선발투수로 보직을 전환, 그때부터 두산 선발진의 한 축을 맡기 시작했다.

구속은 아무리 빨라야 130km대 초반이었다. 그럼에도 매 시즌 좋은 결과를 만들더니 2020년까지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했다. '공이 느린 투수'라는 편견 속에서도 정교한 제구와 싱커 등을 앞세워 상대 타자들을 요리했다.

마침내 지난해, 9월 19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6이닝 무실점 투구로 통산 100승 투수가 됐다. 100승을 거두기까지 우여곡절이 많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값진 성과를 이뤄냈다.

KBO리그 기록 전문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오직 두산에서만 뛰었던 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100승 고지를 밟은 투수는 유희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KBO리그 전체 좌완 투수 가운데선 송진우(210승), 양현종(147승), 김광현(136승), 장원준(129승), 장원삼(121승), 차우찬(112승)에 이어 7번째다.
 
 지난해 9월 19일 키움 히어로즈전서 통산 100승 달성 이후 김태형 감독의 축하를 받은 유희관

지난해 9월 19일 키움 히어로즈전서 통산 100승 달성 이후 김태형 감독의 축하를 받은 유희관 ⓒ 두산 베어스

좁아진 입지, 유희관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유희관의 공에 점점 익숙해진 KBO리그 타자들은 유희관 공략법을 찾아냈고,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던 위력도 사라져갔다. 충분히 재정비할 시간을 갖고 1군에 올라와도 소용이 없었다.

2020년까지는 로테이션이라도 꾸준히 돌았는데, 지난해의 경우 풀타임으로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다. 15경기 4승 7패 ERA 7.71이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긴 채 10월 10일 NC전을 끝으로 더 이상 1군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시즌 종료 이후 발표된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돼 있어 2022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듯했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유희관은 연봉 협상 대신 은퇴를 결정하기로 했다.

유희관은 "후배들이 잘 성장해 베어스의 미래를 이끌어줬으면 한다. 비록 마운드는 내려왔지만, 언제나 그라운드 밖에서 베어스를 응원하겠다.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구단주님, 김태형 감독님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프런트, 동료들, 모든 팬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한 유희관은 당분간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두산 구단은 올 시즌 중에 유희관의 은퇴식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속도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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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기록 출처 = 스탯티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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