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을 연출한 김정영, 이혁래 감독(왼쪽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을 연출한 김정영, 이혁래 감독(왼쪽부터) ⓒ 영화사 진진

 
1970년, 그리고 80년대 민주화운동은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독재정권과 공권력의 폭압에 맞선 투사들의 이름을 사람들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고, 그 주역들은 보이는 곳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선택에 따라 현실을 살고 있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을 접한다면 아마도 여러 생각이 들 것이다. '공순이' 혹은 '시다'(일본어 '시다바리'에서 비롯된 말로 보조를 뜻함)와 미싱사로 불렸던 여성들이 온몸을 던져 공권력에 저항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가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던, 애써 가려왔던 부분이다.

1977년 9월 9일의 투쟁, 그러니까 당시 독재정권은 노동조합원 교육을 위한 학교가 공산당 교육의 산실이라며 강압적으로 노동교실을 폐쇄하려 했고, 청계피복노동조합원과 여공들은 그걸 막으려 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정영 감독과 이혁래 감독은 <미싱타는 여자들>이 단순히 아픔을 들추거나 그들의 행동을 마치 유신 시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배경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기보단 그들의 젊었던 모습들을 하나씩 조명하며, 동료와의 기억과 서로 연대한 흔적을 수놓는 데에 더 큰 비중을 싣고 있었다.
 
노동교실에 담긴 남다른 의미
 
서울시 봉제역사관에 들어갈 영사 아카이빙을 위한 인터뷰 중이었다. 조건이 20대부터 80대 현업 노동자였다. 영상을 다 만들고 보니 그분들 인터뷰가 너무 좋았다. 역사관엔 너무 기술 중심 이야기만 들어갔는데, 인터뷰할 때 너무 큰 감동을 얻어 이분들 이야기를 따로 모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반을 쫓아다니며 허락을 한 분씩 구했지.
 
선생님들은 왜 실패한 사건을 다루려 하냐며 처음엔 인터뷰를 고사하시곤 했다. 어린 나이에 노동교실을 지키려 한 건데 그때 얼마나 무서웠겠나. 그러던 중 (출연진인) 이숙희 선생님이 그때 함께 투쟁하며 상처받고 힘들었던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이미 이분들 마음에 시나리오가 있다는 걸 느꼈다. 제가 뭘 짤 필요가 없었다. (김정영 감독)
 
그렇게 2019년 4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을 할 수 있었다. 프로듀서 출신인 김정영 감독은 상업영화 경험이 있는 이혁래 감독에게 도움을 구했고, 고민 끝에 이 감독이 공동연출로 합류했다.
 
사실 처음엔 이 작업에 크게 흥미가 있진 않았다. 김정영 감독님이 이미 찍어놓은 게 있다고 해서 후반 작업 2개월 정도면 완성할 수 있겠다 싶었지. 근데 촬영한 걸 쭉 보는데 일단 재밌더라. 이분들 이야기 자체도 좋았지만 그 이야길 하면서 보이는 반응과 태도가 재밌어서 더 얘길 듣고 싶었다. 출연하시는 분들이 좀 더 편하게 속에 담긴 얘길 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래서 1977년 9월 9일 사건을 함께 겪은 동료분과 대화하는 식으로 인터뷰를 촬영하거나, 전태일 열사의 친구인 이승철 선생님이 질문하는 식으로 구성했지.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그 사건이 궁금해서 검색해도 정보가 잘 안 나올 것이다. 다른 투쟁만큼 사회적 파장이 크게 있던 게 아니었거든. 다만 이분들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 실체가 궁금했다. 9.9 사건의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노동교실을 잃게 됐을 때 이분들 마음이 어땠는지 담고 싶었다. 그리고 잊고 싶었던 당신들의 과거를 마주할 때의 반응을 풍부하게 담고 싶었다.(이혁래 감독)
 
'1번 미싱사', '7번 시다' 등으로 불리던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교실에 들어서자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등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공부할 형편이 안돼서 혹은 일찌감치 기술을 배우고자 노동 현장에 뛰어든 이들은 대부분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컸다. 그렇기에 노동교실이 갖는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 플라잉타이거픽쳐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 플라잉타이거픽쳐스

 
가려지고 잊힌 역사를 돌아보다
 
그럼에도 그 과거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게 두려웠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는 구치소에 갇혀 실형을 살기도 했고, 건강을 잃기도 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진 아픔을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지 않았을지.

그리도 이들의 아들, 딸, 가족의 응원과 지지가 이어지고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출연진 중 하나인 박태숙씨 동료의 딸은 영화 <1987> <택시운전사> 등 민주화운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나올 때 "엄마도 그때 힘겹게 투쟁했는데 왜 아무도 그 이야긴 하지 않냐"며 물었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도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소환 됐고, 동일방직이나 YH 무역 이야기도 이미 나온 마당에 이분들을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다면 청계피복 노동자들 이야기는 좀 더 미뤄졌을 것 같기도 하다. 일부 지식인들은 1980년대 운동권 경력을 팔아먹었는데 이분들이야말로 노동하면서 근로시간 단축 합의를 이뤄내신 분들이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한 게 자녀분들의 반대였는데 오히려 완성된 영화를 더 좋아하셨다. 스태프 중 한 명은 자신의 어머니도 당시 미싱 노동자였다며 말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고백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이게 영화의 힘인가 싶다. (김정영 감독)
 
유신 시대 여성 노동자들 이야기를 우리가 몰랐던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하난 지식인들, 힘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귀에 더 들어오니 여성 노동자 이야긴 들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가 알려지게 된 게 전태일 열사를 통해서인데 그의 서사에서 그들은 수동적으로 묘사된다. 공순이라 무시당하는 것도 싫지만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본인들의 10대, 20대를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시진 않았을까. 거기에 두 번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리 작업의 목표는 선생님들이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자신들의 10대와 20대 시절을 확인하셨으면 하는 데에 있었다. 분명 아픈 이야기를 하는 거라 죄송한 마음이 있었지만 회고의 과정을 통해 그때 아름다움을 확인하시길 원했다. 그래서 그때 선생님들이 함께 불렀던 노래를 부르게 했고, 그때 썼던 편지와 글을 다시 읽게 했다. 그때 출연진이 느끼는 마음이 오롯이 관객분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누구라도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면 아름답다 말하고 자신있게 말했으면 좋겠다.(이혁래 감독)
 
모두가 함께 찾은 기쁨
 
다행인 건 영화가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와 2021년 DMZ다큐멘터리 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출연진을 비롯해 이들의 가족과 이웃이 함께 영화 이야기와 과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혁래 감독은 "힘든 과거를 털어놓으신 건데 그분들이 완성된 영화를 보고 괜히 참여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즐거운 현상을 말했다.
 
코로나19로 개봉이 미뤄지면서 수정 과정을 좀 거치는데 선생님들 대부분이 보시면서 만족해하셨다. 전태일 열사 친구 이승철 선생님도 영화를 보시고 후배 여성 조합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 새삼 느꼈다면서 당신께서 준비하시던 책을 쓸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됐다고 하셨다. 큰 고비는 넘겼다 싶었지. 물론 관객분들 반응도 중요하지만 참여하신 분들이 보람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후회는 안 해야 하거든. 이게 영화보다 더 중요하다.(이혁래 감독)
 
신순애 선생님 큰딸이 경찰인데 지난 시사회 때 함께 영화를 보러 왔더라. 제가  물었다. 지금 경찰이신데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했는데, 경찰을 하면서 지켜야 할 선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여러모로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김정영 감독)
 
1977년 그 사건의 본질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게 두 감독의 말이었다.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또래보다 비싼 버스 요금을 내야 했던 여성들, 한자를 몰라 은행에 갈 수 없었던 여성들은 노동교실에서 권리를 배웠고, 자존감을 찾았다. 2022년 <미싱타는 여자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 또한 그 자존감 찾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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