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한 장면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한 장면 ⓒ 웨이브

 
제18대 대선 무렵이었다. 진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럴 거라 짐작되던 한 지인이, 누구를 찍어야 하냐는 고민을 나누는 자리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우리도 여자 대통령 한 번 뽑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놀라웠다. 그렇게 믿은 사람이 많아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최초 여성 대통령이 초유의 탄핵 대통령으로 추락하는 동안, 그의 정치적 무능과 무책임 외, 단지 여자라는 사실로 부적절한 말들이 범람하는 혼란의 시간을 지났다. 그러는 사이 '여성' 대통령이란 마치 생일날 망가진 케이크처럼 다시 쓰기 어려운 무엇이 되어버린 듯했다. 우리에게 가슴 뛰게 하는 여성 대통령을 맞게 되는 날이 올까. 하나마나한 상상을 해보던 어느 날, 막연한 희망에 불씨를 당긴 드라마가 나왔다.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아래 <이상청>)다.
 
그가 청와대로 직진해도 되는 이유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한 장면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한 장면 ⓒ 웨이브

 
<이상청>은 갑자기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깜짝 등판하게 된 정은(김성령 분)을 중심으로, 일관된 계획이라곤 일도 없는 주먹구구식 정치 해프닝을 코믹하게 엮는다. 웃음을 폭발시키는 코믹물이지만, 드라마는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인 상황들을 극 안으로 끌어들여, 키득키득 웃다가도 바로 현실 정치 쇼의 한 컷들을 떠올리게 하는 날카로운 감각을 보여준다.

VIP의 실세로 보이려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허세, 속물 국회의원의 역겨운 거래 정치, 정론직필은 전가의 보도가 되어 버린 언론의 천박한 보도 행태, 종교계 인사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막가파식 혐오 공세, 그리고 '어공'(어쩌다 공무원: 선출직 내지 별정직을 의미)과 '늘공'(늘 공무원: 직업 공무원을 의미)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까지, 정말 촘촘하고 생생하다.

전 문체부 장관의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 청와대는 신선한 인물을 필요로 했다. 이런 시기에 걸맞은 인사로 국민 영웅 이정은 전 의원이 낙점된다. 그는 전직 야당 국회의원이었다는 것 외에도,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사격 금메달리스트이자 앙골라에서 자이툰까지 섭렵한 군인 출신이다. 그의 충직하고 안정된 이미지는 추한 소문을 잠재우기에 딱이었다.

설계자의 계획에 이정은은 아마도 위기를 모면할 시한부 패였을 테지만, 어느날 갑자기 '어쩌다 공무원'(장관)이 된 정은은 진심을 다하기 시작한다. 이벤트성으로 출범시킨 문화예술체육계범죄전담수사처(체수처)가 잠깐의 여론을 움직이는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폭력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게 하지 않기 위해 그는 자신의 폭력 피해를 대담히 커밍아웃한다. 자신이 바로 체육계 폭력의 당사자이며 가해자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자칫 정치 쇼로 그칠 체수처 설치를 명실상부한 조직으로 만들려한다.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한 장면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한 장면 ⓒ 웨이브

 
정은이 느닷없이 각료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동안 "유시민이 되고 싶은 잔잔바리"로 불리는 진보 정치평론가 남편 김성남(백현진 분)은 열등감에 찌들어 위험한 음모를 꾸민다. 김성남은 사회의 부정의에 매우 민감한 척하고, 구조맹인 사회 구성원을 사회의 해악인 양 비난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이비 지식인이다.

장관 남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사업을 벌이고 싶은 그에게 번번이 "안 돼"로 일관하는 정은이 야속하다. 아내 덕 좀 보려는 얄팍한 계산이 무참히 거절당하자, 야속함은 선을 넘어 분노로 과녁을 이동시킨다.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남편을 무시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 맛을 보여주겠다는 성남의 치졸함은 남편이 싼 똥을 아내가 치우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락한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납치극을 꾸미는 것.

장관 기용에 이어 국민 스포츠 영웅 출신 대북 특사로 지명된 정은은 자신의 정치 인생에 일사천리로 벌어지는 일들에 얼떨떨하다. 이런 와중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끊어버린 라디오 방송에 걸려들어, 신참 장관은 얼결에 일약 대선 잠룡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러한 언론 보도 과정의 재현은 찌라시가 기사화되는 무참한 과정, 그리고 기사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 입맛대로 조작한 사실의 조합일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누설한다.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한 장면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한 장면 ⓒ 웨이브

 
그나저나 궁지에 몰린 정은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사실은 남편 본인이지만) 납치범은 이정은에게 장관직에서 24시간 내에 물러나면, 남편을 무사히 보내주겠다고 경고했다. 왜 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무엇이 공직자로서 결격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 납치범의 퇴임 요구 앞에 이정은은 고심한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폭력 앞에 무조건 납작 엎드리는 게 공직자의 정의로운 선택일까. 뭔지 께름하고 어설픈 납치극에 휘둘리는 대신, 그는 최선을 다해서 남북회담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서 남편을 찾겠다고 선언한다.

대담히 그리고 영리하게 불의의 폭력에 맞서는 정은의 도전에서, 흔히 여성 정치인에게 붙여진 조작된 성별 이미지를 탈각하고 힘차게 전진하는 영웅의 포스가 느껴진다.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늘공'의 마음까지 얻어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타개해 나가게 만드는 국무위원으로서의 리더십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갖은 불법과 부정의를 서슴지 않고 행하는 현실 정치인들의 몰염치를 돌아볼 때 그가 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 오히려 되묻게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됩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공작도시> 여성 대통령 욕망 정치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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