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39년 설립된 마블코믹스는 디씨 코믹스와 함께 미국 만화산업계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헐크 등 많은 히어로들의 원산지(?)가 바로 마블코믹스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판권을 판매해 많은 히어로들이 영화로 제작됐고 그중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세계적으로 24억 9400만 달러의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마블 코믹스의 원작 영화들이 모두 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했던 <고스트 라이더>나 벤 애플릭을 앞세웠던 <데어데블>, 제니퍼 가너가 연기한 <엘렉트라> 등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마블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마블 히어로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마블은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판권을 팔고 제작에 일부 참여하는 것을 넘어 마블이 직접 영화의 기획부터 제작 전반을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MCU의 시작을 알린 첫 작품은 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아래 로다주)의 재기작이자 23편에 걸친 MCU '인피니티 사가'의 출발점이 된 영화 <아이언맨>이었다.
 
 <아이언맨1>은 23편에 걸친 MCU '인피니티 사가'의 서막을 알린 작품이었다.

<아이언맨1>은 23편에 걸친 MCU '인피니티 사가'의 서막을 알린 작품이었다. ⓒ CJ 엔터테인먼트

 
마약중독 극복하고 슈퍼히어로로 재탄생

1960년대 뉴욕에서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를 둔 로다주는 톰 크루즈, 고 패트릭 스웨이지, 맷 딜런 등과 함께 1960년대생 청춘스타들을 의미하는 '브랫 팩'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 받았다. 하지만 톰 크루즈와 패트릭 스웨이지가 각각 <탑건>과 <더티 댄싱> 을 통해 스타로 도약하는 동안 로다주는 이렇다 할 대표작을 만나지 못했다(물론 마약에 찌든 문란한 사생활 역시 로다주의 더딘 성장에 영향을 끼쳤다).

가벼운 코미디 영화 위주로 활동하던 로다주는 1992년 <채플린>에서 전설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을 연기하며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로다주는 <채플린> 이후 <올리버스톤의 킬러>와 <도망자2>, TV시리즈 <앨리의 사랑만들기> 등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2004년에는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기력과 스타성을 갖춘 배우로 자리 잡아가던 로다주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심각한 마약중독의 마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로다주는 주변의 끊임없는 도움으로 꾸준히 작품에 출연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모색했다. 2002년 <고티카>에 출연하며 만나게 된 영화 프로듀서이자 연인 수전 러빈도 로다주가 마약 의존증에서 벗어나기까지 큰 도움을 준 은인 같은 존재였다.

2005년 러빈과 결혼한 로다주는 2008년 <아이언맨>을 통해 세계적으로 5억 8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아이언맨>은 사실상 로다주의 인생을 바꾼 영화라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같은 해 전쟁 코미디 영화 <트로픽 썬더>에서 흑인으로 분장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로다주는 2009년 주드 로와 함께 출연한 <셜록홈즈>까지 히트시키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배우로 떠올랐다.

2010년대의 로다주는 대중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다. <아이언맨2, 3>와 4편의 <어벤져스>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차례로 출연한 로다주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개런티를 받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아이언맨>으로의 여정을 마친 로다주는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는 드라마 <동조자>를 차기작으로 결정했는데 로다주는 <동조자>에서도 에피소드 당 2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을 예정이다.

세계 영화계를 주름 잡는 MCU의 시작
 
 마약중독으로 망가졌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맨>을 계기로 인생의 2막이 시작됐다.

마약중독으로 망가졌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맨>을 계기로 인생의 2막이 시작됐다. ⓒ CJ 엔터테인먼트

 
지금이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아이언맨> 1편은 촬영 당시 완성되지 않은 각본을 토대로 마치 쪽대본 드라마 촬영하듯 수정과 추가촬영을 거듭한 끝에 힘들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로다주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존 파브로 감독과 함께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영화를 완성시켰다. 마블 스튜디오에서 로다주를 'MCU의 개국공신'으로 대접해 주는 것은 단지 그가 MCU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언맨>에서는 토니 스타크가 마크1을 만들어 테러집단에게서 탈출하자마자 치즈버거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치즈버거는 실제 로다주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로다주는 마약중독이 심할 때 치즈버거의 맛이 느껴지지 않자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중독에 빠졌는지 깨닫고 소지하던 마약을 모두 버렸다고 한다. 배우의 실제 경험담이 적절하게 녹아 있는 효과적인 PPL이었던 치즈버거 이야기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니의 딸에 의해 다시 언급된다.

<아이언맨> 개봉 당시 로다주는 존 파브로 감독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만 해도 로다주의 지명도가 높지 않았고 마블 히어로 영화의 위상도 매우 낮았기 때문에 내한행사는 그리 크게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첫 방문을 통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로다주는 2013년과 2015년, 2019년까지 3번에 걸쳐 한국을 재방문했다. 특히 2019년에는 한국팬들 앞에서 무려 '핑거스냅'을 시전하는 엄청난 팬서비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 <아이언맨>은 할리우드의 배우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다. 스칼렛 요한슨은 <아이언맨>을 보자마자 직접 마블로 찾아가 오디션을 본 후 블랙 위도우 역할을 따내며 액션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경력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영국 출신의 배우 톰 히들스턴 역시 <아이언맨>을 극장에서 보며 '언젠가 저런 영화에 출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4년 후 히들스턴은 로키 역을 맡아 아이언맨을 고층빌딩 창 밖으로 던지는 연기를 했다.

배우와 각본가, 감독을 겸하고 있는 존 파브로 감독은 <아이언맨>을 통해 처음으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의 감독을 맡았다. 다만 MCU에서는 <아이언맨2>를 끝으로 연출 대신 해피 호건 역에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MCU와 한식구인 월트디즈니에서 연출활동을 하고 있는 파브로 감독은 2016년 9억 66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정글북> 실사영화, 2019년 16억 62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라이언킹> 실사영화를 연출했다.

'워머신'이 되지 못한 원조 로드 중령
 
 201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제프 브리지스는 <아이언맨>에서 메인빌런 오베디아 스탠을 연기했다.

201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제프 브리지스는 <아이언맨>에서 메인빌런 오베디아 스탠을 연기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사실 로다주는 캐스팅 당시 1억 4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슈퍼 히어로 영화의 단독 주인공으로는 다소 약했던 게 사실이다(실제로 로다주가 <아이언맨1>에 출연했을 당시의 출연료는 5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여주인공 페퍼 포츠 역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출신의 기네스 펠트로를 비롯해 조연 및 빌런 캐릭터의 캐스팅에 공을 들여 영화의 무게감을 유지했다.

토니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의 친구이자 스타크 인터스트리의 부사장 오베디아 스탠 역은 2010년 <크레이지 하트>로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휩쓴 노장 배우 제프 브리지스가 연기했다. <아이언맨>에서 토니의 심장이나 다름 없는 아크 리액터를 훔치는 빌런으로 출연하는 오베디아는 로봇에 가까운 거대 수트 아이언 몽거를 만들어 토니를 위기에 빠트리지만 아크 리액터의 폭발로 다소 허무하게 사망한다.

토니 스타크의 돌발행동에 따끔한 충고를 하는 친구이자 미 공군중령 제임스 로드는 배우와 프로듀서, 가수, 래퍼로도 활동했던 테렌스 하워드가 연기했다. 사실 워머신의 본격적인 활약은 <아이언맨2>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1편에서는 주로 친구와 군인의 입장에서 토니와 설전을 벌이거나 조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는 아이언맨 수트를 보면서 "Next Time, baby"라고 미소 짓는다.

하지만 테렌스 하워드가 워 머신의 수트를 입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편에서 5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았던 하워드는 <아이언맨>의 흥행으로 로다주의 출연료가 급상승하자 마블 측으로부터 예상보다 적은 출연료를 제안 받았다. 하워드는 이 문제로 로다주와 상의하려 했지만 로다주는 3개월간 하워드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하워드는 마블과 결별했고 <아이언맨2>부터  제임스 로드 중령 역할은 돈 치들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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