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돈이 든다. 그 때문에 소자본·다양성 영화를 소개해 온 이 코너에 뮤지컬 영화 <틱, 틱... 붐!>(아래 <틱틱붐>)을 소개하는 것이 맞을지 고민됐다. 하지만 <틱틱붐>은 상대적으로 소박한 예산의 영화이며 아직 한국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갖지 못했고, 불안한 청춘과 마이너리티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작품인 데다가 무엇보다 이 코너에서 나의 마지막 원고이니까 마음대로 하겠다!
 
처음은 불친절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재밌어집니다
 
스탠드업 코미디라도 하는 걸까? 영화는 무대 위에 올라 스스로를 '멸종위기종'으로 자조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그는 실존 인물, 조나던 라슨이다.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고 안정적인 수입처도 없는 상태의 뮤지컬 작가 조나던은 관객들 앞에서 곧 30세를 맞이하는 자신의 귀에 틱틱(tick, tick) 시계침 소리가 들린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올라오는 영화의 타이틀. "틱! 틱… 붐(BOOM)!"
 
뒤를 잇는 건 VHS 캠코더로 찍은 듯(후보정)한 영상과 이 영화가 <렌트>로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받기 전의 조나던을 그린 영화이며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음을 전하는 한 여성의 내레이션이다. 영화를 보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첫 장면이 실제로 조나던이 직접 공연한 뮤지컬 '틱틱붐'의 재현이었다는 것. 영화는 그 뒤로 조나던의 지나온 과거를 보여주고, 다시 장면 사이사이 공연 장면을 넣은 뒤, 액자처럼 옛 연인의 회고로 이 모든 것을 둘러싼다. 몇 겹의 구조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출은 감각적이고 흥미롭지만, 그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않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영화 <틱, 틱... 붐! > 스틸컷

영화 <틱, 틱... 붐! > 스틸컷 ⓒ 네이버영화

 
조금은 불친절한 이 영화에 빠져든 것은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 하면서다. 서른을 앞둔 청년의 불안감과 '마감'을 앞둔 창작자의 조바심은 나도 잘 아는 감정이었다. 조나던은 8년째 붙들고 있던 <슈퍼비아>라는 작품을 드디어 워크숍 형식으로나마 업계 사람들 앞에 선보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아직도 하이라이트를 빛낼 '가장 중요한 곡'이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창작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그의 일상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자꾸 쌓여간다. 물이 새는 아파트와 몇 달째 밀린 공과금,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의 갈등.
 
그러나 그보다 좀 더 격하게 공감된 것은 조나던의 연인 수전(알렉산드라 십)의 심정이다. 수전은 뉴욕에서의 앞날이 보이지 않기에 교외에서 댄스강사를 하며 좀 더 여유 있는 일상을 꾸릴까 고민한다. 이에 대해 그와 상의하려 하지만, 조나던이 계속 회피하자 참다못한 수전은 "10분 쉰다고 안 써지던 명곡이 써져?"라고 소리치며 "네가 날 붙잡아주길 바랐"다 호소한다. 마감이 중요한 것은 안다. 하지만 앞으로도 창작하는 삶을 산다면 마감은 계속해서 찾아올 텐데, 그때마다 계속해서 서운하게 만든다면? 언제나 곁에 있어주고 이해하는 게 '당연한' 존재처럼 여겨진다면? 심지어 화해의 순간마저도 "이걸 노래로 만들 생각"하는 연인은 징그럽고 지긋지긋하지 않을까?(겪어보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시계침 소리가 들리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
 
조나던은 늘 그를 지지해주고 물심양면 도와준 오랜 친구 '마이클'(로빈 드 지저스)과도 갈등을 빚는다. 마이클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된 광고회사 아르바이트에서 '분칠'해야 할 상품을 신랄하게 비꼰 것이다. 마이클은 자기 얼굴에 먹칠했다며 화를 내지만 조나던은 적반하장이다. "나도 너 같으면 좋겠다, 차, 양복, 도어맨 딸린 집에 집착하며 살 수 있게"라고 말하자 마이클은 "진짜 미안해, 죽기 전에 호강해서"라고 응수한다. 마이클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이즈) 양성 환자였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초반에 이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나던이 특별히 이기적이고 짜증나는 인간 같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그같은 면모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마감을 앞두면 그밖에 다른 일들은 뒷전에 미뤄놓는 멀티태스킹 안 되는 인간, 나야 나. 그럼에도 마감 기한을 지키지 못해 편집자가 곤욕을 겪게 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한껏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뭔가 고해성사 같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이 2021년의 끝자락임을 고려해 달라. 한 해를 돌아보며 싱숭생숭해지고 내년을 생각하며 불안감에 휩싸일 때 아닌가? 그리고 이는 <틱틱붐>을 추천하는 맥락과 닿아있다. <틱틱붐>은 새해를 맞이하며 볼 영화로 딱이다.
 
2022년을 맞이하며
 

우여곡절 끝에 악상이 떠오른 조나던은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만, 계약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 단지 업계 사람들에게 그 재능을 인정받았을 뿐. 이제 그는 선택해야 한다. 작가의 길을 접고 회사에 들어갈 것인가, 혹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알바를 병행하며 "계속 써 재끼면서 언젠가 하나 터지길 바라"는 생을 살 것인가?
 
무엇을 택하든 앞으로의 삶은 이전과 다를 것이다. 순간과 순간의 총합이 인생이라고, 거대한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살아가다 소중한 것들을 놓쳐선 안 된다고, 1년 남짓의 시간이 남은 마이클을 보며 조나던은 다짐한다. 그리고 그에게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일이었음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30세 생일을 맞이한 그의 밝은 얼굴이 말한다. <틱틱붐>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최서윤 님은 <불만의 품격>을 쓰고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2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구독문의 02-6712-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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