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편집자말]
 영화 <위대한 독재자> 포스터

영화 <위대한 독재자>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18년 어느 전장. 토매니아 제국의 유대인 이발사(찰리 채플린 분)는 전투 중에 다친 슐츠(레지날드 가디너 분) 장교를 도우다가 그만 비행기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이발사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전쟁에서 패배한 토매니아 제국엔 힌켈(찰리 채플린 분)이란 독재자가 등장해 유대인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20년 후, 병원을 빠져나와 이발소를 운영하며 그는 한나(폴레트 고다르 분)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발사는 유대인을 괴롭히는 토매니아 제국의 돌격대로 인해 곤경에 처했다가 슐츠 장교를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난다. 한편 세계 정복을 꿈꾸는 힌켈은 이웃한 경쟁국 박테리아의 독재자 나폴리니(잭 오키 분)보다 먼저 오스테릴리히를 점령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 (주)엣나인필름

 
찰리 채플린은 무성 영화 시대의 가장 인기 있는 아이콘이었다. 짧은 콧수염에 중절모를 쓰고 모닝코트와 헐렁한 바지 차림으로 큰 구두를 신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뒤뚱뒤뚱 걷는 떠돌이 캐릭터 '리틀 트램프'가 나온 <키드>(1921), <파리의 여인>(1923), <황금광시대>(1925), <서커스>(1928),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즈>(1936)는 대중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최초의 유성 영화 <재즈 싱어>(1927)의 등장한 이래 할리우드가 소리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동안에도 찰리 채플린은 대화가 캐릭터 '리틀 트램프'의 마법을 파괴할 것이라 생각한 탓인지 계속 무성 영화를 고집했다.

<위대한 독재자>(1940)는 찰리 채플린의 첫 유성 영화다. 놀랍게도 그는 이전 영화와 결이 다른,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정면으로 풍자한 급진적인 정치 영화를 내놓았다. 찰리 채플린이 히틀러와 나치를 희화화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나치를 선전하는 다큐멘터리 <의지의 승리>(1934)를 보았을 무렵이라 한다.

영화를 본 대다수는 히틀러를 무섭게 여겼지만, 찰리 채플린은 그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이후 1937년 알렉산더 코르다 감독이 찰리 채플린에게 히틀러와 똑같은 콧수염을 하고 외모가 닮은 평범한 사람이 히틀러로 오해를 산다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하며 <위대한 독재자>는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간다. 히틀러와 나치의 삐뚤어진 권력에 풍자로서 저항하길 결심한 것이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히틀러를 조롱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 무모한 모험과 다름이 없었다. 영화가 촬영에 들어간 1939년은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기 이전이다. 할리우드는 유럽 시장을 잃을까 우려해 히틀러를 비판하길 꺼렸고 나치의 추악한 실상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탓에 많은 미국인이 히틀러와 나치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찰리 채플린은 나치의 순혈주의(순수한 혈통만을 선호하고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인 혈통은 배척하는 주의)와 반유대주의(유대 교도 및 유대인에 대한 차별 및 증오를 의미하는 용어)에 맞선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었다. 당연히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점령국에 <위대한 독재자>의 상영을 금지했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 (주)엣나인필름

 
찰리 채플린은 <위대한 독재자>에서 1인 2역을 맡았다. 기억을 잃은 유대인 이발사는 '리틀 트램프'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로서 선함을 상징한다. 히틀러를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힌켈은 악의 화신이다. 찰리 채플린은 히틀러를 말과 행동, 연설 스타일을 흉내 내기 위해 그가 나오는 뉴스, 영화 등을 반복적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힌켈의 연설 장면은 찰리 채플린의 노력과 풍자가 녹아들어 무척 흥미롭다. 한편으론 히틀러의 광기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찰리 채플린이 무성 영화 시대에 빛날 수 있었던 건 과장된 동작과 소동으로 웃음을 끌어내는 '슬랩스틱'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독재자>에서도 멋진 슬랩스틱 장면이 가득하다. 이발사의 최고는 이발소에 온 손님에게 면도하는 장면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5번에 맞춰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화면 속 움직임과 음악을 일치 시켜 효과를 내는 '미키마우징' 기법이 실로 돋보인다. 힌켈의 슬랩스틱 중엔 커다란 지구본 풍선을 갖고서 바그너의 오레파 로엔그린 제1막 전주곡에 맞춰 발레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독재자의 과대망상과 불안 심리를 발레로 보여줌과 동시에 풍선을 터트림으로써 욕망이 헛되다는 걸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찰리 채플린은 자신의 분신인 '리틀 트램프'가 목소리를 갖게 된다면 중요한 말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리틀 트램프'가 처음 목소리를 갖는 유성 영화인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발사의 연설 장면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전쟁의 참상과 독재자의 탄압을 목격한 이발사는 인류가 증오, 탐욕, 민족주의, 과학만능주의를 버리고 자유, 평등, 친절, 관용을 되찾길 간절히 호소한다. 찰리 채플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때 영화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리틀 트램프'의 입을 빌려 진심을 들려준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말을 전했다고 판단했는지 <위대한 독재자> 이후 찰리 채플린은 '리틀 트램프'를 다시는 사용하지 않았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 (주)엣나인필름

 
당시로선 상당한 규모인 제작비 2백만 달러를 들인 <위대한 독재자>는 개봉 후 5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제1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의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계기도 되었다. 작품에 나타난 비판 의식으로 인해 일부 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고 미국 정부는 마지막 연설 장면의 내용을 문제삼았다. 결국 찰리 채플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불어 닥친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1952년 미국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그는 1972년이 되어서야 다시금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위대한 독재자>는 여러모로 놀라운 작품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훗날 저지른 만행을 미리 꿰뚫어 본 통찰력이 뛰어나다. 또한, 전쟁과 파시즘을 경계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8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위대한 독재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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