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갑작스레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만 같다. 죽음은 매 순간에 내게 머물 것이고 한 순간도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JTBC 드라마 <한 사람만>의 인물들은 달랐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죽는다는 걸 자꾸 까먹어."

이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우정을 쌓아가고, 타인을 위로하며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한다. 드라마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 어느 한 장면을 보았다면 드라마 속 인물들이 시한부임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어떻게 <한 사람만>의 세 여자 세연(강예원), 미도(박수영), 인숙(안은진)은 시한부의 삶을 살면서도 죽음을 잊고 지낼 수 있었을까? 나는 인물들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이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핍됐던 '기본심리욕구'를 채워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리학자 라이언과 데시는 사람에게는 심리적인 생존과 성장을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욕구가 있다며 이를 '기본심리욕구'라 명명했다. 그리고 '자율성' '연결감' '유능감' 세 가지를 가장 기본적인 심리욕구로 지목했다. 여기서 자율성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조절해가고자 하는 욕구를, 연결감은 타인 및 사회와 연결되어 함께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을, 유능감은 내가 잘하고 있고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세연, 미도, 인숙은 바로 결핍되었던 이 욕구들을 충족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세연, 미도, 인숙은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우리'가 되어간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세연, 미도, 인숙은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우리'가 되어간다. ⓒ JTBC

   
자율성을 실천하는 세연
 
세연은 혈액암을 진단받고 '아침의 빛' 호스피스에 입원했다. "공부도 잘하고 그렇다고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어서 친구에게도 잘하고 부모한테도 잘하고 그런 애"(3회, 세연모)였던 세연은 결혼 후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그런 그녀는 호스피스에 입원한 후 왠지 모를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빈 자리를(그러니까 돌봄전담 자리) 친정 어머니에게 부탁했다는 남편의 말에 이렇게 반문한다.
 
"그 자리가 왜 내 자리야?" (2회)
 
이 질문의 답을 찾던 세연은 자신이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결정해온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의 기준에 맞춰 타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즉, 자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지내왔음을 인식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후, 세연은 이혼을 결심하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결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임신을 하려고 매번 산부인과에서 다리를 벌리고 당신을 내조하고 그렇게 쭉 살아오면서 내가 느껴온 그 기분이 그거였어. 굴욕. 그래서 이제 그만하려고. 알아 내가 하는 말은 아무도 알아먹지 못한다는 거. 세상이 알아먹는 말이 아니라는 거. 세상이 알아먹는 말은 당신 말이라는 거. 다 안다고." (6회)
 
세연의 이 말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율성의 욕구를 침해받아온 모든 여성들을 대변하는 듯 했다. 또한, 여성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었다. 그녀는 이제 남은 시간이라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남편의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고, 이혼 후 재산을 친정어머니에게 남겨주겠다는 자신의 선택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렇게 결핍됐던 자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그녀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연결감을 추구하는 미도
 

혈액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인플루언서 미도는 SNS에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늘 외로워한다. "내 표정보다 다른 사람 표정을 더 봐. 나를 좋아하나 나한테 관심있나"(4회)라고 말하는 미도는 호스피스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인기를 과시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늘 갈구하지만, 미도에겐 남는 건 외로움과 공허감 뿐이다. 그녀는 타인 및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미도에게 '우리'라고 말해주는 세연과 인숙은 진정한 연결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함께 먹고 자며 이야기 나누고 살인사건에도 같이 연루돼 한 운명 공동체가 되어버린 일은 미도에게는 어쩌면 즐거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미도는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셋이 뭉칠 때마다 매우 적극적이 된다. 그리고 "왜 그렇게 적극적이냐"고 묻는 인숙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린 한 패야. 한 편이라고 나는 그게 좋아" (3회)

이는 미도가 얼마나 연결되고 싶어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사였다. 이렇게 연결감을 회복해가면서 미도는 점차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진다. 적어도 세연과 인숙 앞에서는 인기를 과시하려 들지 않고 "나 왕따였어"(8회)라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미도는 아마도 지금 새로운 발견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그녀가 죽는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 채 활기차게 지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인숙과 우천은 죽음이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지금-여기서의 사랑을 아름답게 가꾸어 간다.

인숙과 우천은 죽음이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지금-여기서의 사랑을 아름답게 가꾸어 간다. ⓒ JTBC

 
유능감을 채워가는 인숙
 
인숙은 어릴 적 엄마가 떠나가고, 책임감 없는 아빠에게도 버림받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할머니(고두심)의 사랑을 받긴 하지만, 청각장애가 있는 그녀는 "할 수 있는 일이란 때밀이밖에 없었다"(4회)고 고백한다. 그러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를 찾는다. 이런 인숙을 관통하는 것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느낌이다. 즉, 인숙에겐 내가 잘 하고 있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유능감의 욕구가 결핍되어 있었던 것이다. 
 
3회 인숙은 할머니와 전화통화에서 "난 뭐든 뒤처지잖아. 뭐든 한발 늦어. 이제 너무 많이 뒤처진 것 같아"라고 고백하는데 이는 인숙이 '유능감의 욕구'를 좌절당한 채 살아왔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이런 인숙은 호스피스에 입소한 뒤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산아(선연우)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켜낸다. 또한, 스스로를 포기한 채 살아온 우천(김경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불어 넣는다. 그녀는 우천과 할머니, 산아를 끝까지 지키고자 스스로 누명을 쓰려 하는데 이는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유능감을 실천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인숙은 유능감의 욕구를 충족해가면서 보다 나은 내가 되었다고 느낀다.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도 공포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우천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침의 빛' 호스피스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보듬어 안으며 믿어주고 지켜준다.

'아침의 빛' 호스피스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보듬어 안으며 믿어주고 지켜준다. ⓒ JTBC

   
이처럼 <한 사람만>의 시한부 여성들은 지금 온전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들은 긴 시간 충족하지 못했던 욕구들을 왜 하필 호스피스에 와서 알아차리고 채워가기 시작했을까.
 
이는 서로를 판단하거나 평가할 이유도, 남보다 앞서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는 호스피스라는 조건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죽어가고 있는' 드라마 속 호스피스의 사람들은 살아온 시간 동안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믿어준다. 경찰이 조사를 나왔을 때 원장 막달레나 수녀(이수미)가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숨겨 인숙과 우천을 보호하듯(7회), 그저 함께 있다는 이유로 서로를 지킨다. 이런 신뢰와 수용의 분위기가 이들이 결핍된 욕구를 찾아내고 충족해가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막달레나 수녀의 말마따나 "인간은 누구나 죽는 존재"(1회)다. 죽는다는 사실은 호스피스의 환자들이나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나 매한가지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한부인 셈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현실의 우리들도 호스피스의 사람들처럼 서로를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평가하고 판단하고 경쟁하기보다는 서로의 삶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봐줄 수 있다면 우리도 각자에게 필요한 기본심리욕구들을 채워가며 보다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 사람만>의 세연, 미도, 인숙을 떠올리며 현실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