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 최항용 감독 인터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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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얘기하면 SF(science fiction)는 가짜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을 만들면서) '이 가짜를 어떻게 진짜로 느껴지게 할까?'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최항용 감독)

지난해 12월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물과 자원이 고갈돼 황폐해진 2070년대 근미래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받은 정예 요원들은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인 '발해기지'로 떠난다. 

바닥이 드러난 바다와 물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 달에 있는 한국 기지까지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설정이지만 그동안 한국 콘텐츠가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였다는 평가를 얻었다. 최항용 감독, 박은교 작가를 10일 서면을 통해 만났다.

<고요의 바다>는 공개 이후 지금까지 월드와이드 스트리밍 차트 상위권에 안착한 상태다. 연출을 맡은 최항용 감독은 "첫 작품으로 생각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 감사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생한 많은 분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 작품은 당초 최항용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으로 만든 단편 영화였다. 미장센 단편영화제에도 출품됐던 이 작품에 푹 빠진 배우 정우성이 장편 제작에 나섰고, 박은교 작가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고요의 바다>가 만들어진 것. 박은교 작가는 "원작의 시나리오를 먼저 봤을 때부터 매력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저는 원작 단편의 시나리오를 먼저 봤다. 최항용 감독이 영상원에서 제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었고, 시나리오의 모니터링을 부탁받았다. 학생이 SF 장르를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는데,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그 완성도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원작 단편은 등장 인물도 적고 공간도 무척 협소하지만, 그렇기에 더 밀도 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작품이었다.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게 만드는, 확장성 있는 세계관을 담고 있었기에 장편 영화나 시리즈로 만들기에 충분한 소재라고 느꼈고 그래서 각색에 참여하게 됐다. 단편에선 다루지 못했던 지구의 현실이나 '루나'의 탄생 배경 등을 보여주면서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원작이 가진 호흡과 분위기는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박은교 작가)

드라마에서 묘사된 2070년은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극심한 물 부족의 시대다. 사람들은 신분과 등급에 따라 식수를 배급받고 거리에서는 "물을 평등하게 배급하라"는 시위가 벌어진다. 낯선 풍경이지만 기후 변화, 자원의 분배, 계급 차별 등 2022년에도 존재하는 사회 문제들을 그대로 은유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박 작가는 장편 제작이 결정됐을 때 "원작보다 더 확장된 세계관과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룰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자원도 풍부하고 기술력도 충분한 현재의 지구에도,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죽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한정된 자원과 고도의 기술력은 언제나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결코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 것들이니까"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품의 세계관을 설정하는 데 가장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과학적인 사실들을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작품 주제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는 세계관을 세팅하는 것이었다. 수자원 고갈이 어느 정도까지 이뤄진 상태일까, 각 나라에서는 어떤 대비를 할 것이며, 국가의 시스템과 사회기반 시설들은 어느 정도까지 유지가 되는 상황으로 설정해야 할까 등. 여러 고민들을 했다. 

만약 <고요의 바다>의 설정처럼 지구의 필수 자원이 빠르게 고갈되는 상황이라면, 우주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달에 발해기지를 짓는 일은 국가 차원에서 말 그대로 '국력'을 쏟아부어 이뤄낸 특수한 성과일 것이다. 식수 배급제를 실행하고 반려동물을 제한하는 등의 온갖 제도를 동원하고, 해수 담수화 기술을 활용해 어느 정도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게 미봉책에 불과해 미래가 암담하다면, 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예산과 기술력이 집중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 끝에 발해기지와 작품 전체의 세계관이 탄생했다."(박은교 작가)


드라마에는 차갑고 건조한 달 표면과 거대한 발해기지 등 우주 배경 SF 시리즈다운 미장센이 담겨 있었다. 특히 발해기지는 2700여 평 규모의 공간에 세트를 짓고, 시각효과(VFX)와 컴퓨터 그래픽(CG) 등을 활용해 실감 나는 우주 공간을 구현했다고. 최항용 감독은 "스토리 전개에 따른 인물들의 동선을 고려해서 지어야 했기에 실제로 세트를 짓기 전에 3D로 가상의 기지를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쳤다. 처음 시도한 VFX 기술 중에 LED wall(벽)이 있었는데 영화 <부산행>에서 사용했던 적은 있지만 이번 작품처럼 높은 퀄리티로 사용한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 반면, 발해기지의 비밀이 드러나기 전까지 근미래의 풍경과 우주를 보여주는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낯설어하거나 지루하다고 느끼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항용 감독은 "요즘은 빠르고 자극적인 스토리텔링이 많고 시청자분들도 그런 이야기에 익숙해져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고요의 바다>가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나가야 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저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작품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작품에 어울리는 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 박은교 작가 인터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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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 발해기지가 5년 전 폐쇄되고 지금까지 방치됐던 공식적인 이유는 방사능 누출 사고다. 그러나 기지에 도착한 요원들은 정부 발표와 달리,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이후 그럼에도 임무에 집중하라는 한윤재 대장(공유 분)과 기지가 폐쇄된 진짜 원인을 알고 싶은 송지안 박사(배두나 분)가 대립한다.

질문하는 과학자와 질문하지 않는 군인의 대립은 <고요의 바다>의 가장 큰 축이었다. 박 작가는 한윤재 대장에 대해 "각색하면서 가장 먼저 추가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이어 "한윤재 대장이 이야기의 진행을 밀어붙이는 캐릭터라면, 송지안 박사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사건의 진행보다는 진실과 의미를 찾아 헤매는 캐릭터다. 미스터리가 하나둘 풀리면서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대립하는 캐릭터들의 선택,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갔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리즈는 달 지면을 걷는 인물들, 발해기지 내에서의 중력 표현 등 과학 고증을 고려하지 않은 연출 때문에 적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 감독은 "가능한 내에서 (전문가의) 자문 도움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고증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실제로 고증이 부족했던 지점도 있겠지만 (예산과 시간 면에서) 현실적으로 구현이 힘들었던 지점도 있었다"며 "예를 들어 저중력의 표현이 그랬다. 달 지면을 걷는 인물들이 11명이었는데 기술적으로 와이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은 1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시간의 제약으로 와이어를 사용할 수 없는 장면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문을 받았더라도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연출은 미래의 기술을 상상하는 반면 전문가는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가능한지의 여부만 얘기해 줄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발해기지 내 인공중력에 대해 자문을 받게 되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있지 않은 기술을 갖고 어떻게 가능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창작자의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발해기지 내부를 모두 저중력으로 표현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인공중력은 꼭 필요한 설정이었고 기존의 다른 영화들에서 답습해 온 관성으로 시청자분들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최항용 감독)

<고요의 바다>는 극한의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대원들의 미스터리 스릴러이지만, 동시에 죽음이 맞닿은 공간에서 생존의 희망을 찾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허구의 미래를 상상한 드라마에 담긴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박은교 작가는 "'생존의 위협 앞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우리는 과연 생존할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를 되묻게 한다는 주제를 강조하고 싶었다. 월수와 루나에 맞서, 눈앞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하는 구성을 의도했다"고 말했다.

"자원 고갈, 기후변화, 계급갈등, 인권 등등 다양한 메시지들이 이야기 안에 녹아있다.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에 적합한 메시지가 담기기 시작한다.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야기의 메시지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고요의 바다>는 물이라는 소재가 중요하게 다뤄졌고 이것을 먼 우주의 얘기로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의 삶(현실)과 연결시키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원 고갈과 인권 등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최항용 감독)

"만약 생존에 필수적인 수자원이 고갈되는 사회가 온다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어떤 몸부림을 칠까,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결국은 지금의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제 나름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나눠 설득하기보다는, 선악의 대립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보였으면 했다. 보시는 분들이 각자의 '선택'을 하실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박은교 작가)
고요의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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