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편집자말]
<노 서든 무브> 영화 포스터

▲ <노 서든 무브> 영화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1954년 디트로이트. 어떤 범죄 집단으로부터 자동차 회사에 보관된 서류를 훔치는 일을 의뢰받은 중개인 존스(브렌든 프레이저 분)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커트(돈 치들 분)와 로널드(베니치오 델 토로 분), 그리고 찰리(키에란 컬킨 분)를 고용해 자동차 회사 직원 매튜의 집에 침입한다. 

찰리가 매튜를 앞세워 사무실 금고에 보관된 서류를 가지고 올 동안 매튜의 가족을 인질 삼아 기다리던 커트와 로널드는 간단하게 끝날 줄 알았던 계획이 범행 도중 틀어지며 예상치 못한 위험에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서류를 손에 넣은 두 사람은 배후에 존재하는 세력과 직접 만나 거래하길 시도한다.

1989년 26살 나이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영화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오늘날 할리우드 주류에서 활동하는 제작자나 감독 가운데 가장 생산적이며 실험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30여 년 동안 블록버스터와 인디의 경계를 넘나들며 드라마, 뮤지컬, 스릴러, 범죄, 다큐멘터리, SF, 코미디, 미스터리, 전쟁, 액션, 멜로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장편 영화만 37편을 만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빠르고 저렴하며 간단하게 제작/배급할 수 있는 갖가지 실험을 감행했다. 연출, 제작, 촬영, 편집을 동시에 해낼 뿐만 아니라 <로건 럭키>(2017)는 전통적인 홍보 방식을 벗어난 전략을 시도했으며 <언세인>(2018)과 <높이 나는 새>(2019)는 아이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노 서든 무브> 영화의 한 장면

▲ <노 서든 무브> 영화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신작 <노 서든 무브>는 전작 <표적>(1998), <라이미>(1999), <로건 럭키>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강도를 소재로 삼은 범죄물이다. 특히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하고 돈 치들이 나오는 통에 <표적>을 많이 연상시킨다. 이번에도 제작, 연출, 촬영, 편집은 스티븐 소더버그가 맡았다. 

각본은 <엑설런트 어드벤쳐> 시리즈, <나우 유 씨 미> 시리즈, <맨 인 블랙>(1997), <미녀삼총사>(2000) 등을 작업한 할리우드 베테랑 작가 에드 솔로몬이 작업했다. 그는 제작자 케이시 실버와 스티븐 소더버그와 함께 <노 서든 무브>를 처음 기획할 무렵엔 <오션스 일레븐>에서 작업한 일부 배우를 기용해 비슷한 스타일의 범죄물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1950년대 중반 이곳의 자동차 산업과 인종차별을 접하면서 소재와 장르를 새롭게 잡아 1970년대 스타일의 누아르 영화로 각본이 바뀌었다고 한다.

<노 서든 무브>는 간단한 줄 알았던 범죄에 가담했던 커트와 로널드가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도리어 위험에 처하자 누가 자신들을 고용했는지,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여기에 여러 건의 불륜, 자동차 기업의 비밀, 두 개의 범죄 조직, 경찰의 수사 등이 얽히며 전개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마치 코엔 형제의 영화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건 사건의 중심에 위치한 듯 보였던 자동차 회사에 보관된 '서류'가 실은 인물을 엮는 '맥거핀(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나 실제론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무엇을 담은 서류인지도 영화 마지막에 나온다. 영화는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돈'을 탐하는 자들의 탐욕과 배신의 관계도를 퍼즐처럼 보여줄 따름이다. 착한 놈은 없다. 그저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이 있을 뿐이다.
 
<노 서든 무브> 영화의 한 장면

▲ <노 서든 무브> 영화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노 서든 무브>는 범죄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디트로이트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인 1954년은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 산업이 번성했던 시기이자 인종 차별이 심했던 시간이다. 자동차 산업과 범죄 조직을 연결한 소재를 통해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도시의 추악한 역사다. 경제 호황을 누렸던 1950년대의 이면엔 사회적 불평등, 기업의 부패, 인종차별이 있었음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는 경고의 목소리다. 기억하고 환기하는 이유는 이것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미국을 괴롭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 서든 무브>에서 렌즈의 활용은 눈길을 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촬영에 초광각 렌즈를 일부러 선택해 화면의 가장자리를 왜곡시키는 어안 효과를 주었다. 이것은 과거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한편으로 욕망으로 점철된 인물들의 뒤틀린 세계를 은유한 느낌도 든다. 중심부만 뚜렷하고 주변부는 흐리기에 각 인물이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볼 수 없다는 영화의 내용과 연결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와도 맞물린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답게 캐스팅은 화려하다. 스티븐 소더버그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돈 치들과 베니치오 델 토로를 비롯해 <블랙 위도우>(2021)의 레드 가디언 역으로 친숙한 데이빗 하버, <좋은 친구들>(1990)의 레이 리오타, <베이비 드라이버>(2017)의 존 햄, <스콧 필그림>(2010)의 키에란 컬킨, <공포의 묘지>(2019)의 에이미 세이메츠 등 감독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배우가 골고루 포진되었다. 조지 클루니도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말미암아 영화 촬영이 2020년 4월에서 10월로 연기되는 바람에 하차했다는 후문이다. 참고로 영화 후반부엔 포스터에 적혀 있지 않은 유명 배우가 깜짝 등장한다.

출연진 중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는 단연 브렌든 프레이저다. 과거 <미이라> 시리즈,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 등 액션 어드벤처 영화로 큰 인기를 구가했으나 최근엔 탈모와 체중 증가로 인해 긴 공백기를 가지던 중이었다. 2018년 DC 유니버스 오리지날 드라마 <타이탄즈>에서 로봇맨 역할로 출연하며 오랜 공백을 깼다. <노 서든 무브>에서 브랜든 프레이저는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를 선보인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신작 <고래>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신작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에 연달아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니 그의 새로운 연기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봐야겠다.
 
<노 서든 무브> 영화의 한 장면

▲ <노 서든 무브> 영화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노 서든 무브>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걸작은 아니다. 그러나 멋진 앙상블 연기, 렌즈를 활용한 형식미,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개, 흥미로운 캐릭터, 사회적 병폐를 탐구하는 시각 등 장점이 많은 수작 범죄물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폭력, 폭발, 총격전, 추격에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으로 긴장을 구축하는 맛이 좋다. 다소 플롯이 복잡한 면도 있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 어려운 정도는 아니니 안심해도 무방하다.

안타깝게도 <노 서든 무브>는 미국에선 제작사 워너브라더스 계열인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와 극장에서 동시 공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아예 극장 개봉 없이 다운로드 서비스로 직행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들이 슈퍼히어로 영화, 속편, 리메이크, 리부트에 치중하면서 <노 서든 무브> 같은 중간 규모의 장르 영화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는 상황이다. 코로나19는 이런 상황을 한층 가속화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다음 작품인 스릴러 영화 <키미>(KIMI)도 2022년 HBO 맥스에서 독점으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은 영화는 OTT에서 만날 운명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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