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트랙

2021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트랙 ⓒ 소니뮤직코리아

 
1957년 초연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뮤지컬"이란 표현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을 만큼 대중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뒷골목을 배경으로 폴란드계 백인 갱단 '제트파', 푸에르토 리코계 갱단 '샤크파'의 대립 구도에 녹여낸 사랑, 우정, 배반,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는 시대가 흐른 지금까지도 유효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클래식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 작곡한 작품 속 음악(스티븐 손드하임 작사)은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면서 위대함을 인정받고 있다.  

'Maria', 'Tonight', 'Somewhere', Something's Coming' 등의 가창곡과 'Prologue', 'Overture' 등 관현악 연주곡이 좋은 합을 이루면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리메이크한 동명 영화의 개봉을 맞아 수없이 리메이크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음악 속 이야기를 구석구석 살펴보기로 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첫 레코딩은 195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리지널 캐스팅 음반이다. 래리 커트(토니), 캐롤 로렌스(마리아), 치타 리베라(아니타) 등 초연 무대의 주역 배우들의 목소리가 담긴 이 작품은 그 시절 열악한 녹음 기술로 인해 처음엔 모노 버전 LP로만 발매되었다가 이듬해 릴 테이프 형태로 스테레오 재발매가 이뤄졌다. 

​이후 몇 차례 리마스터링 복원 작업에 덧붙여지면서 비교적 맑은 소리를 담은 음반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다만 스테레오라고 하기엔 대역폭이 넓지 못하다는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다. 보컬 녹음은 모노에 가까울 만큼 요즘 음반에 비해 입체감을 거의 느끼기 어렵다.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  

무려 1년간 빌보드를 점령한 1961년 영화 OST 음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57년 오리지널 캐스트, 1961년 사운드트랙 음반 (왼쪽부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57년 오리지널 캐스트, 1961년 사운드트랙 음반 (왼쪽부터) ⓒ 소니뮤직코리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음반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품은 바로 1961년 영화 사운드트랙이다. 영화 개봉과 동시에 발매된 이 작품은 이듬해 1962년 5월부터 1963년 5월까지 무려 1년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역대급 음반으로 손꼽힌다. 당시 빌보드는 모노, 스테레오 음반 차트를 따로 운영했는데 OST음반은 번갈아 양쪽 순위를 석권하면서 총 54주 1위라는 대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그런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OST엔 한 가지 특이점이 존재한다. 나탈리 우드(마리아 역), 리처드 베이머(토니 역) 등의 가창 녹음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각각 마니 닉슨, 지미 브라이언트 등 대역 가창 전문 가수들이 소화했다는 것이다.  

요즘 영화팬들로선 상당히 의아할 수 있는데 당시만 해도 뮤지컬 영화는 노래 실력과 무관하게 주연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각 장면 속 노래와 OST 녹음은 다른 인물이 맡는 게 보편적이었다. 결과적으로 타인의 목소리에 립싱크로 가창 연기를 한 셈이었다. 이렇다보니 많은 사랑을 받은 'Tonight'을 나탈리 우드의 목소리로 여전히 오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니 닉슨은 1950~196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적 대역 가수 중 한 명으로 <마이 페어 레이디> 오드리 햅번, <왕과 나> 데보라 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마릴린 먼로의 노래 부분은 모두 그녀가 담당했다.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부터 199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원작자 번스타인이 직접 재해석한 'Symphonic Dances'​
 
 레너드 번스타인의 'Symphonic Dances' 2001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1983년 LA필 협연 버전(왼쪽부터)

레너드 번스타인의 'Symphonic Dances' 2001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1983년 LA필 협연 버전(왼쪽부터) ⓒ 소니뮤직, 유니버설뮤직

 
그런데 정작 원작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1961년 영화 사운드트랙 작업에 대해서 불만스러웠던 모양이다. 전문 브로드웨이 편곡자들이 작업한 30인조 오케스트라 녹음은 당시 세계 굴지의 관현악단 중 하나인 뉴욕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였던 그의 귀를 만족시켜주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이에 그는 직접 자신의 작품을 재해석한 음반을 녹음한다. 영화 속 군무 장면 등에 삽입된 음악을 편곡, 총 9개 악장으로 구성된 'Symphonic Dances'를 역시 같은해 1961년 발매한다.  

​LP기준으로 A면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Symphonic Dances From West Side Story)>, B면엔 역시 번스타인 본인이 음악을 담당했던 엘리아 카잔 감독+말론 브란도 주연의 1954년 영화 <워터 프론트(Symphonic Suite From On The Waterfront)>를 수록했는데 클래식 음반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몇 차례 재발매를 거쳐 지금은 <워터 프론트> 대신 조지 거쉰의 'Rhapsody In Blue'로 교체된 버전이 제작되어 음반 판매 및 음원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1983년 번스타인은 또 한 번 'Symphonic Dances' 재녹음에 도전한다.  1969년 뉴욕 필 상임 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빈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주로 유럽 지역 악단의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스튜디오 녹음 대신 공연 실황 녹음 방식으로 상당량의 음반을 제작하는 독특한 행보를 이어갔다.  

​클래식 음악계의 비주류에 속하는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라이브 앨범 < Rhapsody in Blue / West Side Story : Symphonic Dances >는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의 스테디 셀러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걸작으로 인정 받고 있다. 이밖에 번스타인은 1985년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 키리 데 카나와 등을 기용한 오페라 버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녹음해 역시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재즈, 팝 등 장르의 벽을 허물다​
 
 오스카 피터슨, 앙드레 프레빈, 팝스타 트리뷰트 음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각각 재해석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맨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오스카 피터슨, 앙드레 프레빈, 팝스타 트리뷰트 음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각각 재해석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맨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 유니버설뮤직, 소니뮤직

 
클래식 뿐만 아니라 재즈, 팝의 거장 또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재해석에 한몫을 담당해왔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은 아예 영화 스틸 사진을 음반 표지에 채용한 재즈 트리오 음반을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고 종종 번스타인과 비교되기도 하는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 역시 피아노 트리오 구성으로 동명의 음반을 제작해 좋은 대비를 이루기도 했다. 이밖에 칼 제이더, 데이브 브루벡 등 1960년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의 손을 거치면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마치 필수 연주곡 마냥 애청되며 재즈 음악인들의 레파토리를 풍성하게 채워줬다.

​팝 음악계에서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빼놓을 수 없는 리메이크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뮤지컬-음악 등 거의 모든 대중 문화 분야에서 1인자 자리에 올랐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역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곡을 자신의 공연, 음반에서 리메이크할 만큼 깊은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프로듀서 데이빗 포스터와 손잡고 1985년 발매한 < The Broadway Album >은 제목 그대로 자신이 처음 연예계에 뛰어들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고전을 발췌한 음반으로 꾸며졌다. 여기서 'Somthing's Coming'과 더불어 1980년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덧붙인 독특한 편곡으로 노래한 'Somewhere'는 바브라 최상의 가창력을 과시한 명곡으로 손꼽힌다. (1986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등극)

1996년엔 일반 팝 뿐만 아니라 록큰롤, 컨트리, R&B, 힙합까지 동원된 헌정 음반이 제작되어 관심을 모았다. 아리스타 레코드의 CEO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기획+록그룹 앰브로시아의 데이빗 팩 프로듀싱으로 진행된 < The Songs Of West Side Story >는 올포원, 아레사 프랭클린, 솔트 앤 페퍼, 레프트 아이(TLC), 칙 코리아, 리틀 리처드, 와이노나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스타 뮤지션들이 총동원되었다. 여기서 주목받은 트랙은 엔딩곡으로 사용된 필 콜린스의 'Somewhere'이다. 그의 솔로 콘서트 애청곡이기도 한 이 버전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해석과는 달리 부드럽고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레너드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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