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대학로 원로배우에서 월드스타로'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는 한국시간으로 10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시리즈-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오영수는 대중에게는 낯설지만 사실 반세기 넘게 연극무대를 지켜온 대학로 터줏대감이다. 10일 오후 배우 오영수가 출연 중인 연극 '라스트 세션' 포스터가 서울 대학로 극장 앞에 붙어 있다.

▲ 오영수 '대학로 원로배우에서 월드스타로'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는 한국시간으로 10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시리즈-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오영수는 대중에게는 낯설지만 사실 반세기 넘게 연극무대를 지켜온 대학로 터줏대감이다. 10일 오후 배우 오영수가 출연 중인 연극 '라스트 세션' 포스터가 서울 대학로 극장 앞에 붙어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 시니어 배우들이 또 한 번 그 저력을 증명했다. 원로배우 오영수가 9일(현지시각)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제 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지난해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미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1년 만에 찾아온 또다른 쾌거다.
 
오영수는 <오징어게임>에서 456억 원 상금을 따기 위해 목숨을 건 게임에 도전한 참가자들 중 최고령자인 1번 오일남 역을 맡았다. 주인공 이정재(성기훈 역)와 함께 팀을 이뤄서 치매와 시한부 인생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연륜의 지혜를 발휘해 생존해나가는 캐릭터로 주목 받았다.
 
극 중반 1대 1 구슬치기 데스매치에서 성기훈에게 끝내 승리를 양보하고 담담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전세계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특히 짧은 순간에 "자네가 날 속인 건 괜찮고?", "우린 깐부(절친)잖아"라는 대사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장면에서는, 특유의 관록이 묻어나오는 오영수의 입체적인 감정연기가 빛을 발했다. 하지만 드라마 말미에서는 그가 사실상 오징어게임의 모든 비극을 설계한 진짜 흑막이라는 또다른 반전도 공개되며 깐부의 감동을 간직했던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승려 전문 배우'로 익숙했던 오영수

1967년 24살의 나이로 극단 광장에서 데뷔하여 연기경력만 무려 56년 째인 오영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주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2003), 드라마 <선덕여왕>(2009) <무신>(2012) 등에서 이른바 '승려 전문 배우'로 익숙하다.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등을 수상한 '대학로의 전설'이었지만, TV와 영화팬들에게는 <오징어게임> 이전만 해도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은 조연급 배우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스토리에서 막대한 비중과 중량감있는 열연을 보여준 오영수의 존재감 역시 급상승했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열풍으로 여러 업체에서 광고 모델 제의를 받았지만 작품 본연의 가치를 흐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며 후배 배우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올해도 연극 <라스트세션>에 출연하여 활발한 연기활동을 이어가는 등,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고 배우로서의 초심을 지키고 있다.
 
오영수는 지난해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서는 인생의 통찰이 담긴 어록으로 큰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당시 오영수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요즘에는 1등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다. 그런데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 이긴 거 아니겠나. 모두가 승자다. 진정한 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애쓰면서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꾸준히 한 우물을 파온 '장인이자 어른다운' 뚝심과 여유, 배려가 느껴지는 어록은 수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골든글로브는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시상식으로도 유명하다. 유색인종과 외국어 영화에 유독 인색한 모습을 보이며 공정성과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것도 여러번이다. <기생충>(2020)과 <미나리>(2021)가 아카데미-칸영화제 등 세계적인 시상식 본상을 휩쓸 당시에도 골든글로브만큼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않거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리는 데 그쳤다.
 
오영수의 수상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골든글로브 수상이자, 아시아 국가와 배우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오영수는 <더 모닝쇼>의 빌리 크루덥과 마크 듀플라스, <석세션>의 키에란 컬킨, <테드 래소>의 베른 골드스타인 등과 쟁쟁한 배우들과 경합을 이겨냈다. 오영수는 수상 후 넷플릭스를 통해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가 됐다.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라는 소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배역이 한정된 '시니어 배우들'
 
'오징어 게임' 오영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을 연기한 배우 오영수가 9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2개 부문 수상은 불발됐다. 사진은 2021년 12월 8일 열린 연극 '라스트 세션' 기자간담회 참석한 오영수.

▲ '오징어 게임' 오영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을 연기한 배우 오영수가 9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2개 부문 수상은 불발됐다. 사진은 2021년 12월 8일 열린 연극 '라스트 세션' 기자간담회 참석한 오영수. ⓒ 박혜경

 
지난해 윤여정에 이어 오영수는 모두 칠순을 넘긴 노장들이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 배우들도 주목도가 높아지기는 했지만, 굳이 젊은 스타도 아닌 오영수나 윤여정같은 '시니어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력과 인상적인 캐릭터로 더 재조명받는 현상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극에서 이들이 맡은 역할은 바로 현대 사회에서 소외받는 시니어의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오징어게임>의 일남은 처음엔 게임의 참가자이자 희생자라는 포지션에서, 주최자이자 메인빌런이라는 반전으로 옮겨간다. 바로 자본주의 사회와 경제적 불평등과 약육강식, 기성세대의 이중성과 자기 모순을 포괄하는 캐릭터다. <미나리>의 순자는 한국 가정의 아픈 이민사를 관통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연대와 화합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가장 현실적이고 연약해보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강인하고 성숙한 'K-시니어'들의 모습은, 극의 메시지와 서사를 주도하는 '시대의 풍경' 그 자체로 작용한다. 수십년의 연기경력만큼이나 산전수전 다겪은 배우들 본인의 인생역정이 묻어나오는 연기스타일과 표정들도 인물에 대한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한편으로 오영수와 윤여정의 재발견은, 이처럼 유능하고 품격있는 시니어 배우들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오히려 세대-장르적인 편중이 심해지며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안겨주는 작품은 드물어졌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 <미나리>같은 작품들이 한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양질의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장년층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일일극이나 주말드라마는 불륜과 막장 스토리가 대세를 이루며, 예전의 서민적인 휴먼-가족드라마나 대하사극 등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자연히 오영수나 윤여정같은 세대의 원로 배우들을 활용할 수 있는 캐릭터나 공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예능 <갓파더>에 출연중인 노배우 주현은 몇 년간 연기를 못했다며 "요즘은 드라마도 젊은 세대들 위주로 화제가 되고 우리 정도 나이가 되면 들어오는 배역이 한정적이다. 해봐야 아버지나 할아버지다. 그래서 공백 기간이 길다"며 원로배우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주현은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며 "눈물과 인생, 만남과 이별, 희노애락이 살아있는 작품에서 작은 역할을 하더라도 좋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바람을 밝혔다. 또한 89세로 현역 최고령 배우인 이순재는 지금도 <리어왕> 등 연극을 통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순재는 지금도 암기력을 유지하고 철저한 자기관리를 이어가는 이유에 대하여 "자꾸 움직여야 건강하고 목표과 의욕이 생긴다. 배우에게 가장 행복한 죽음이란 연기하다 죽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배우는 결국 누군가 불러주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는 직업이다. 오영수와 윤여정 역시 그들의 실력과 매력을 알아본 사람들, 그들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면 뒤늦은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시니어들의 재능과 경험을 어떻게 예우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다.
오영수 오징어게임 골든글로브 윤여정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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