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즐비한 대학로에서 이 작품이 먹힐 수 있을까. 약간은 시니컬한 궁금증을 되새겼던 이유는 공연을 보기 전,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바로 이 설명 때문이다. 

"아빠의 죽음을 통해 바라본 모든 과정에 이상한 나라에서 펼쳐지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됐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죽어가는 아빠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딸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무언가를 깨닫는다. 가족의 소중함을,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는 휴머니즘을. 그런데 겉으론 몽환적 요소들로 포장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고백컨대 막이 오르기 전부터 반신반의했던 파트가 바로 여기다.

'도저히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재료들을 어떻게 한 그릇에 담았을까?'
 
 동화작가를 꿈꾸는 딸인 주영(이아진)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가로막힌다. 동화 속 캐릭터의 탈을 쓴 시계토끼(홍준기), 도도새(박혜원), 체셔고양이(정현우)는 주영이 옆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시킨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딸인 주영(이아진)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가로막힌다. 동화 속 캐릭터의 탈을 쓴 시계토끼(홍준기), 도도새(박혜원), 체셔고양이(정현우)는 주영이 옆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시킨다. ⓒ 이규승

 
예측 가능한 휴머니즘과 눈물을 전면에 내세운 가족 드라마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차용됐다. 극중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끼, 새, 고양이가 여과 없이 등장한다. 그것도 주변인의 캐릭터로. 많은 뮤지컬을 봐왔지만, 이처럼 생경한 조합 덕분에 막이 오르기 전부터 궁금한 점은 한둘이 아니였다.  

오는 30일까지 대학로에 있는 CJ아지트에서 계속되는 창작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2021년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6개의 장르 중에서 뮤지컬은 총 3편이 뽑혔는데, 이 작품이 스타트를 끊었다. 개막 직전에 가졌던 드레스 리허설을 참관했다.

앞선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나오면서 느낀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탄탄한 이야기가 돋보이는'이라 말하고 싶다. 대부분의 뮤지컬이 그렇듯 아름다운 선율과 가창력으로 승부를 거는데 비해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영화 못지 않게 잘 짜여진 스토리가 눈에 띈다. 나중에 알았는데 '2016년 스토리작가 데뷔 프로그램'에 선정된 이후 수없이 많은 각색을 견뎌온 작품이란다. 완벽한 대사 처리는 몇 년을 다듬어온 정극 못지 않았다. 그 덕분에 배우의 심리 상태는 오롯이 관객의 피부로 전달될 수 있었다. 6년간 쏟아부은 제작진의 땀과 노력이 배우의 입말로 전해지는 순간이다. 
 
 창작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실제 부녀 사이인 이정열과 아이진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아빠 '병삼'역과 딸 '주영'역에 캐스팅되어 뮤지컬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배가되고 있다. 두 사람은 뮤지컬 <그날들>과 <영웅>에서 동반 출연한 전력이 있으나, 이번 작품처럼 '아버지와 딸'이라는 긴밀한 관계로 출연한 것은 처음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그대 고운 내 사랑'의 원곡자로도 유명한 이정열은 베테랑 배우로, 딸 '주영' 역의 이아진은 경력 15년 이상의 실력자로 지난 5월 뮤지컬 <태양의 노래>에서 희귀병을 앓는 여주인공 '서해나' 역을 맡아 싱그러운 비주얼과 가창력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창작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실제 부녀 사이인 이정열과 아이진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아빠 '병삼'역과 딸 '주영'역에 캐스팅되어 뮤지컬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배가되고 있다. 두 사람은 뮤지컬 <그날들>과 <영웅>에서 동반 출연한 전력이 있으나, 이번 작품처럼 '아버지와 딸'이라는 긴밀한 관계로 출연한 것은 처음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그대 고운 내 사랑'의 원곡자로도 유명한 이정열은 베테랑 배우로, 딸 '주영' 역의 이아진은 경력 15년 이상의 실력자로 지난 5월 뮤지컬 <태양의 노래>에서 희귀병을 앓는 여주인공 '서해나' 역을 맡아 싱그러운 비주얼과 가창력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 이규승

 
먼저 다섯 명이 등장하는 이 공연의 형식과 내용을 짚어보자. 공연의 키를 쥐고 있는 역할을 굳이 꼽으라면 '아빠와 딸'이다. 여기에 동화 속 캐릭터의 탈을 쓴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이들을 주연과 조연으로 나누는 것보다 먼저 말하고 싶은 부분은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오고가는 방향 전환이다. 마치 냉탕과 온탕을 교차하는 스위치처럼 수시로 맞바뀐다.

다시 내용을 들여다보면 뮤지컬의 주제는 '아빠와 딸이 나누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딸, 그리고 그런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부장적인 아빠. 이 둘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이상한(strange) 나라에 사로잡힌 아빠가 전반부를 지배하고, 후반부엔 극적인 화해를 거쳐서 이상(ideal)한 나라를 꿈꾸는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상한 나라의 아빠'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이다. 

"딸(주영)은 어린 시절 아빠(병삼)가 읽어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듣고 동화작가로 꿈을 키우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가로막힌다. 어느 날, 아빠에게 암이 전이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딸은 오래 전에 헤어졌던 아빠의 곁으로 돌아온다. 아빠와 보내는 병원생활은 판타지 속 세상처럼 세 마리의 캐릭터가 딸의 주위를 맴돈다. 뇌로 전이되어 기억의 혼동을 겪고 있는 아빠는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채 딸과 함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그속에서 아빠의 숨겨진 진심을 알게 된 딸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의 곁에 남아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솔직히 이 스토리만 엿보면 모두가 예상한 전형적인 줄거리가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보다 두드러진 요소는 따로 있다. 중간에 캐릭터들이 등장해 꿈 속을 걷는 듯한 연출로 보조를 맞추지만, 아빠와 딸이 나오는 현실적인 영역은 상상을 초월하게 사실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은 실제를 고증한듯 완벽하게 재현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작가와 작곡가의 실제 경험담을 여기에 녹여냈기 때문이란다. 선친의 암 선고 이후에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담았으며 이를 대사와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강보영 작가는 초연을 앞둔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경험한 일들이 놀랍고 이상했으며, 아름답고 아팠기 때문에 이 얘기를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이미 경험한 분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싶고요."

앞서 서두에 우려했던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판타지가 진정성을 감소시키지도 않았고, 오히려 극적인 감동을 몰고왔던 비결이 여기에 있었던 셈이다.
 
아빠는 딸에게 참으로 못난 존재였다. 등록금을 준 적도 없었고, 가족에겐 변변치 못한 상황으로 생활비조차 건넨 적 없었다. 그렇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할 정도로 가부장적이다. 이런 아빠가 못마땅해 늘 마음의 벽을 두고 살았던 딸이 어느 순간 아빠의 진심을 알아채는 수단으로 뮤지컬의 레이더가 작동됐다.

어쩌면 이야기의 반전을 더 극적으로 몰고가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것이 뮤지컬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백 마디의 대사보다 더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무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속내를 전하는 데 노랫말보다 뜨거운 가슴울림은 없을 것이라 자신하면서. 
 
밤이 기인 한숨을 쉰다
돌아선 내가 그리워서
밤이 기인 한숨을 쉰다
인사도 못한 내 청춘아
 
 오는 30일까지 대학로에 있는 CJ아지트에서 계속되는 창작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제작 다아트)는 이상(異常)한 나라에 살고 있는 아빠와 함께 이상(理想)을 실현시킬 여행을 꿈꾸는 내용이다.

오는 30일까지 대학로에 있는 CJ아지트에서 계속되는 창작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제작 다아트)는 이상(異常)한 나라에 살고 있는 아빠와 함께 이상(理想)을 실현시킬 여행을 꿈꾸는 내용이다. ⓒ 이규승

 
한평생 함께했지만 깊은 속내를 털어내지 못한 부녀의 일상은 요즘 세대가 겪고 있는 '가족해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집에 살면서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현시대를 비꼬고 있다. 하지만 그걸 원해서 그러는 사람이 없듯이 피치못할 상황 때문에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상한 나라의 아빠>는 이상(異常)한 나라에 살고 있는 아빠와 함께 이상(理想)을 실현시킬 여행을 꿈꾼다. 아빠와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마지막 여행을 함께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가슴저리게 아파왔던 한 가족의 이야기는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 하나 아픈 경험이 없는 가족이 있을까. 이미 상처를 겪었던 가족이 있다면, 이 얘기는 멈출 수 없는 눈물을 자아낼 것이다. 오래 전 신파극처럼 억지로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판타지가 곳곳에 숨어있지만 이것이 감동을 주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 단언했던 처음의 생각을 접으려 한다. 만약 당신이 이 작품을 보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다면, 아직 뼈져리는 아픔을 겪어보지 못했거나 아직도 불신의 늪에 사로잡혀 감정이 매말랐다는 방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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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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