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 5위(금메달 우선 기준)의 성적을 거뒀고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동계스포츠 강국이다. 물론 한국이 따낸 메달이 쇼트트랙에 집중돼 있는 것은 한국 동계스포츠의 숙제지만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까지만 해도 참가에 의의를 두던 한국이 세계 10대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케이트와 스키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여전히 동계종목은 대중들에겐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컬링이나 스켈레톤 등은 컬스데이와 팀킴, 윤성빈이라는 스타선수가 등장하기 전까진 대중들에겐 상당히 낯선 종목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노르딕 복합이나 바이애슬론, 프리스타일 스키의 에어리얼, 모굴 같은 종목은 올림픽 정식 종목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파다하다.

특히 평생 눈 한 번 내리지 않는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동계스포츠는 더욱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나라는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이 동계종목에 도전했고 이들의 이야기는 5년이 지난 1993년 영화로 제작돼 많은 관객들에게 강한 울림을 줬다. 존 터틀타웁 감독이 만들어 세계적으로 1억 5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쿨러닝>이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4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쿨러닝>은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14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쿨러닝>은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 월트디즈니

 
가성비 좋은 영화를 잘 만드는 터틀타웁 감독

대학에서 연극과 심리학을 전공한 터틀타웁 감독은 수 많은 영화인들을 배출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TV시리즈를 만들며 연출을 시작했다. 1992년 어린이 가족영화 <닌자 키드>를 연출한 터틀타웁 감독은 1993년 월트디즈니가 제작한 스포츠 코미디 영화 <쿨러닝>의 감독을 맡았다. 물론 자메이카의 육상선수들이 봅슬레이 선수로 변신해 동계올림픽에 도전하는 영화가 성공할 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1400만 달러의 저렴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쿨러닝>은 웃음과 감동을 모두 잡은 스포츠 드라마의 수작으로 인정 받으면서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1억 5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터틀타웁 감독은 1995년 <스피드>로 주가를 올리던 산드라 블록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통해 1억 82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터틀타웁 감독은 세월이 흐른 후 영화보다 에릭 크랩튼이 부른 주제가 'Change the World'가 더 유명해진 존 트라볼타 주연의 <페노메논>으로 1억 52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록하며 명성을 이어갔다. 1999년 스릴러 장르에 도전했던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인스팅스>가 실망스런 성적을 올렸지만 2000년 슈퍼스타 브루스 윌리스를 앞세운 휴먼 드라마 <키드>를 통해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키드> 이후 약 4년의 공백을 가진 터틀타웁 감독은 2004년 연기력과 흥행파워를 겸비한 니콜라스 케이지와 손을 잡고 1억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모험 액션영화 <내셔널 트레져>를 연출했다. 1990년대 주로 저예산 영화에서 강세를 보였던 터틀타웁 감독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2편까지 만들어진 <내셔널 트레져>는 두 편 합쳐 8억 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

터틀타웁 감독은 2010년 니콜라스 케이지와 재회한 <마법사의 제자>가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며 <내셔널 트레져>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 마이클 더글라스와 로버트 드 니로, 모건 프리먼 등 대배우들과 함께 한 <라스트 베가스>로 제작비의 4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가성비 감독'의 면모를 이어갔다. 2018년에 연출한 공포스릴러 <메가로돈> 역시 5억 3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돌파했다.

<쿨러닝>을 통해 배우는 진짜 스포츠 정신
 
 <쿨러닝>에서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선수를 연기한 배우들은 사실 모두 미국 출신이다.

<쿨러닝>에서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선수를 연기한 배우들은 사실 모두 미국 출신이다. ⓒ 월트디즈니

 
<쿨러닝>은 지난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던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실화를 각색한 많은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쿨러닝> 역시 실제와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선수들이 자비를 털어 출전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그려지는 영화와 달리 실제로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올림픽에 출전했다.

영화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육상선수 데리스(리온 분)가 자메이카에 살던 봅슬레이 레전드 아이브 브리처(고 존 캔디 분)를 설득하고 팀원들을 모집해 봅슬레이 팀을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인 코치 2명이 자메이카의 단거리 육상선수를 모집해 훈련을 시켜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까지 출전했던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은 한동안 동계올림픽에 나서지 못하다가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출전권을 따냈다.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다는 뜻을 가진 인터넷 밈(인터넷으로 퍼진 유행) '탈룰라'라는 말 역시 <쿨러닝>에서 나온 말이다. 썰매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회의를 하던 중 주니어(롤 D. 루이스 분)가 '탈룰라'가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이에 멤버들은 무슨 매춘부 이름 같다고 비웃으며 '대체 어디서 따온 이름이냐'고 묻는다. 이때 주니어는 어머니 성함이라고 이야기하고 멤버들은 그제서야 "아주 예쁜 이름"이라며 얼렁뚱땅 웃으며 상황을 모면한다.

시종일관 유쾌한 스포츠 코미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지만 자메이카의 마지막 레이스는 관객들을 뭉클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자메이카는 레이스 종반 낡은 썰매의 너트가 빠지면서 썰매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한다. 선수들은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을 맞지만 데리스의 제안에 따라 직접 썰매를 들고 결승선을 통과하며 경기를 마친다. 물론 자메이카는 실격처리 되겠지만 <쿨러닝>의 클라이막스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쿨러닝>의 이야기는 16년의 시간이 지난 2009년 <무한도전-봅슬레이 특집>을 통해 국내에서도 재현됐다(당시 무한도전 멤버들이 참고자료로 <쿨러닝>을 시청하기도 했다). 당시 <무한도전>의 '젊은 피'였던 정형돈과 노홍철, 전진이 각각 부상과 스케줄 문제로 레이스에 참가할 수 없었는데 형님 라인이었던 박명수와 정준하, 유재석이 레이스에 참가해 봅슬레이의 매력을 알리며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영화 개봉 1년 만에 세상 떠난 존 캔디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고 존 캔디는 <쿨러닝>이 개봉한 지 1년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고 존 캔디는 <쿨러닝>이 개봉한 지 1년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 월트디즈니

 
1990년대 초반에도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아놀드 슈왈제네거 같은 특급배우들은 영화 한 편 당 1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많은 출연료를 받았다. 하지만 코치 역의 고 존 캔디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알려지지 않은 흑인배우 4명이 주연을 맡은 <쿨러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14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제작비가 적게 들었으니 당연히 제작비 대비 흥행수익이 더 높게 나온 것은 당연했다.

올림픽 출전의 꿈을 갖고 단거리 육상선수에서 봅슬레이 선수로 변신하는 데리스 베녹 역은 1980년대 초반부터 배우로 활동했던 리온이 맡았다. 같은 해 만들어진 <클리프 행어>에서는 악역으로 출연해 허무한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쿨러닝>에서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을 만들고 이끄는 리더로 출연한 리온은 2001년 호아킨 피닉스와 애드 해리스가 출연한 <버팔로 솔저>에도 출연했다.

무동력차 드라이버 상카 코피를 연기한 더그 E.더그는 10대 시절부터 스탠디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던 배우다. 1991년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정글 피버>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더그는 단거리 육상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데리스와의 친분으로 팀에 합류했다. 상카는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개그캐릭터지만 데리스가 어설프게 스위스 팀을 따라 하다가 경기를 망쳤을 때 자메이카의 정체성을 살린 경기를 하자며 동료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고 존 캔디는 동계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지만 세 번째 올림픽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다 메달이 박탈된 후 자메이카에서 폐인처럼 생활하다 선수들을 만나 4번째 올림픽에 도전하는 브리처 코치를 연기했다. <쿨러닝>에서 "금메달이 없어서 만족할 수 없다면 금메달을 얻는다 해도 만족할 수 없다"는 명대사를 남긴 캔디는 <쿨러닝> 개봉 후 1년이 지난 1994년 만 43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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