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지도자의 용기와, 더 큰 도약을 꿈꾸는 명문 구단의 비전이 손을 맞잡았다. 프로축구 K리그1 전북 현대가 올해 최초로 창단된 B팀 감독에 박진섭 전 FC서울 감독을 선임했다. 전북은 6일 박진섭 감독을 전북B팀의 감독 겸 A팀 전술 코치로 선임했다고 밝혔으며 8일부터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새 시즌 대비 훈련을 시작할 예정이다.
 
 박진섭 전 프로축구 FC서울 감독이 새로 출범하는 전북 현대 B팀을 지휘한다. 전북은 박 감독을 B팀(전북B) 감독 겸 A팀 전술 코치로 선임했다고 6일 밝혔다. 사진은 박진섭 전북B 초대 감독.

박진섭 전 프로축구 FC서울 감독이 새로 출범하는 전북 현대 B팀을 지휘한다. 전북은 박 감독을 B팀(전북B) 감독 겸 A팀 전술 코치로 선임했다고 6일 밝혔다. 사진은 박진섭 전북B 초대 감독. ⓒ 전북현대제공

 
전북은 올해부터 1군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선수와 23세 이하 유스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B팀을 창단하여 4부리그(K리그4)에 참가하는 것이 확정됐다. 박 감독은 구단의 미래 자원들을 이끄는 동시에 전술 코치로 김상식 감독을 보좌하며 1군 운영에도 함께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K리그는 2021시즌부터 세미프로인 K4리그에 K리그 구단들의 B팀이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지난 시즌에는 강원FC가 B팀을 K4리그에 출전시킨 가운데 올 시즌을 앞두고는 전북도 B팀을 출범하여 유망주 육성의 무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전북의 박진섭 감독 영입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박 감독은 부산 아이파크와 포항 스틸러스 코치 생활을 거쳐 2018시즌 광주 FC의 지휘봉을 잡으며 첫 프로팀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광주에서 박 감독은 2019년 K리그2 우승과 1부 승격, 2020년에는 상위스플릿 진출로 구단의 역대 최고 성적(6위) 등을 잇달아 달성하며 젊은 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2021시즌에는 K리그의 최고 명문 중 하나로 꼽히는 FC서울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3년 계약의 첫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불과 부임 9개월만에 사임했다. 박 감독 사임 당시의 성적은 6승7무14패로 리그 최하위였다. 서울은 박 감독이 물러난 이후 안익수 감독이 부임하면서 비록 하위스플릿이기는 하지만 최고 순위(7위)를 기록하며 강등 위기를 극복하고 반등에 성공했다.
 
비록 서울에서는 실패했지만 박 감독은 K리그1에서 수년간 풍부한 경력을 쌓아온 데다 나이도 아직 40대 중반에 불과한 젊은 지도자였다. 특히 광주에서는 어린 선수들의 발굴과 육성에 크게 기여했으지며 유연한 전술운용능력으로도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언제든 프로팀 감독으로 다시 다른 구단들의 러브콜을 받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런데 불과 몇 달전까지 서울이라는 빅클럽을 이끌었던 지도자가, 라이벌팀의 1군 감독도 아닌 B팀 감독이자 1군의 전술코치라는 직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기업으로 치면 임원까지 올라갔던 인사가 중간관리직으로 다시 내려온 것을 감수한 셈이다.
 
심지어 전북 김상식 감독은 박진섭 감독보다 불과 1살 연상인 데다 감독 연차만 따지면 오히려 박 감독이 더 앞선다. 자칫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제안이었지만, 박진섭 감독은 자리가 주는 권위보다 자신의 능력을 정말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통 큰 결단을 내렸다.
 
박진섭 감독의 영입에는 김상식 전북 감독의 강한 권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프로축구 성남(2005-2008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김상식 감독은 지난해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초보 감독으로서 선수단 로테이션이나 전술적 디테일면에서는 조금씩 아쉬운 부분도 노출한 바 있다. 박 감독에게 B팀 사령탑과 전술코치를 겸임시킨 것은 장기적으로 1,2군의 유기적인 연계 구조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박 감독의 뛰어난 전술적 역량을 A팀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전북 구단 입장에서도 박진섭이라는 '감독급 지도자'의 영입은, B팀 운영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전북은 2021시즌 K리그 최초 5연패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안주하지 않고 2022시즌 리그 6연패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도 정상 재도전 등 더 큰 야망을 꿈꾸고 있다. 전북은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통한 스타급 선수 영입과 해외 진출로 이적시장의 선순환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전북의 투자란 단지 외부로부터의 선수 영입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한국축구의 전설인 박지성을 '어드바이저'라는 생소한 역할로 영입했던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K리그와는 별 인연이 없었던 박지성이었고, 직책 자체가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의구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북에 '박지성 효과'는 결코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이적시장에 단연 화제가 됐던 백승호의 전북행도 박지성이 직접 나서서 선수를 설득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박지성의 후광으로 전북 유스팀에 관심을 가지는 어린 선수들도 늘어났다는 평가다.
 
진정한 명문구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를 잡기 위한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 전북이 박지성 영입과 B팀 창단에 이어 박진섭 감독까지 초대 감독으로서 데려온 것은, 그만큼 유소년 육성에도 꾸준히 관심과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박 감독은 전북B팀 감독 취임 소감으로 "앞으로 5~10년 전북을 이끌어갈 재목을 발굴하고 육성하겠다"며 "김상식 감독이 추구하는 '화공(화려하고 화끈한 공격축구)'를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박진섭 감독과 전북의 색다른 동행이 2022년에 어떤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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