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 플라잉타이거픽쳐스

 
4년의 시간이 빛을 보게 됐다.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한국 여성 노동 운동과 노동자들의 아픔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이 6일 언론에 공개된 가운데 김정영, 이혁래 감독과 역사의 산 증인인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씨가 서울 용산 CGV를 찾았다. 

영화는 1977년 9월 9일, 당시 노동자에게 중학교 수준의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던 노동 교실을 빨갱이 소굴이라며 폐쇄하려던 공권력에 맞선 노동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청계피복노동조합 소속으로 당시 근로시간 단축, 미싱사 보조 임금 직불제 등을 이뤄낸 여성 노동자들과 그들이 겪은 국가적 폭력, 그리고 아픔을 다룬다.

시작은 생애 구술사였다. 서울시 지원으로 과거 노동자들의 구술 생애사 아카이빙 작업을 하던 김정영 감독은 한 인터뷰이로부터 청계피복노동조합 이야기를 듣고 영화화 결심을 하게 됐다. 김 감독은 "2018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가 극장 개봉하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며 "출연하신 선생님들이 바라는 건 영화가 지방에도 걸려서 예전에 함께 일했고, 투쟁했던 동료들과 연락이 닿는 것이다. 이분들을 꼭 만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작업이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출연자 중에선 과거의 상처를 들춰내기 싫거나 그때의 공포를 다시 마주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투쟁 과정에서 경찰에 구속되기까지 했던 임미경씨는 "감독님께서 다큐를 찍겠다고 오셨을 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우리 딸이 한번 해보라 해서 용기 내게 됐다"며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평화시장에서 일했다. 휴일도 없이 늦은 밤까지 일해도 한 달 급여는 늘 똑같았는데 노동 교실은 제게 인간의 삶을 알려준 곳이었다. 목숨 던져서라도 지키고 싶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숙희씨 또한 "노동 교실은 하나의 교실로만 있던 게 아니었다. 일만 하던 우리에게 배움터였고 놀이터였다. 일이 밤 10시, 11시에 끝나도 꼭 교실을 들렀다"며 "집보다도 소중한 장소였기에 뺏겨선 안 된다는 게 당시 동료들이 공통으로 생각했던 것"이라 덧붙였다.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 여사를 어머니라 부른다는 이유로, 사학자이자 민중 운동가 함석헌을 강사로 모셨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의 소굴처럼 여겨진 노동 교실은 당시 공안 정권에겐 가시 같은 존재였다.

노동 조합을 통해 인권과 근로기준법에 눈을 뜨게 된 당시 미싱사들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 이후 각성하며 또 다른 차별과 싸우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구속된 신순애씨나 임미경씨는 구치소에서 10여일 넘도록 속옷을 갈아입지 못하거나 수시로 물리적 폭력을 당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 플라잉타이거픽쳐스

 
"평화시장에서 일을 시작하며 '7번 시다', '3번 미싱사' 등으로만 불리다가 노조를 가니 신순애라는 이름으로 불리더라. 공순이가 신순애로, 신순애가 노동자로 태어나던 순간이었다"던 신씨는 "일만 알고 공장만 알던 제가 노동 운동, 노동 교실을 택했다는 것이 칭찬하고 싶고, 지금도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선택을 돌아봤다.

특히 임미경씨는 경찰로부터 온 건물이 포위당했을 당시 투신을 불사할 정도로 열의가 강했다고 한다. 임씨는 "지금은 학생들이 취직하느라 바쁘고, 노동자는 또 일하느라 바쁘고 다들 각자의 길만 가는데 우리가 금수저가 아닌 이상 다들 노동자가 되는 만큼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며 "나만 돈 벌면 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분들이든 일하는 분들이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 이혁래 감독은 "1977년 9월 9일 노동 교실 투쟁이 많이 알려지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청계피복노조에 계셨던 분들에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더라"며 "이분들의 이야기가 마치 유신 시대의 풍경으로만 남지 않길 원했고, 그때를 치열하게 살아낸 한 분 한 분이 빛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6일 현장엔 가수 양희은씨가 연대의 마음으로 깜짝 방문해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봉준호 감독 또한 4일 시사회 때 무대에 올라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봉 감독은 "전태일 열사말고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라는 말을 남겼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오는 13일 개봉한다.
미싱타는 여자들 청계피복노동조합 여성노동자 봉준호 양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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