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챌린저: 마지막 비행>은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 리뷰를 통해 (여러 측면에서 여러 얘기를 해볼 수 있겠지만) 소위 엘리트 지식인의 언행(words and deeds)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책임의식에 주로 초점을 두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있게 말하고 행동하며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지식인으로 인지되는 사람이 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지식인은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 그것이 내포하는 책임의 무게를 (누가 부여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무겁게 감지하여야 할 것 같다. 지식인이랍시고 전문가인 양 매사에 잘난 체하라는 게 아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말이 대중에게 들릴 때 상대적으로 더 무겁게 다가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지식인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이가 <챌린저: 마지막 비행> 마지막 회(4편)에 등장한다. 영화 전체로 보면 비교적 짤막하게 등장한다 말할 수 있지만,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이 사람과의 만남이 말 그대로 뜻깊으려면 <챌린저: 마지막 비행>을 1편부터 정주행하는 게 좋다.  
 
나사의 무리한 발사

<챌린저: 마지막 비행>은 다큐멘터리의 본령(챌린저호의 역사 기록물)에 충실하다. 1986년 1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우주비행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우주에 다녀온 바 있지만, 챌린저호의 이번 비행에는 좀 남다른 특징이 하나 있었다. 일반인 우주인이 첫 번째로 탑승한 우주왕복선이라는 사실이었다. 

최초 일반인 우주인은 크리스타 매콜리프라는 젊은 여성이었다. 매콜리프가 선택되기까지 대단한 선발절차가 오래도록 펼쳐졌다. '나사'는 이때 일반인 우주인 자격을 학교 교사로 제한했다. 왜냐하면 우주로 나가서 우주왕복선 안에서 미국 전역의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원격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우주 교사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고자 지원한 교사들의 숫자는 무려 1만 2000명이었다. 경쟁률 1만 2000대 1을 뚫고 선발된 매콜리프는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당시 백업대체 교사(2위)로 선발된 바버라 모건은 자신이 만약 1위였다면 "미인대회에서 1위로 당선된 것보다 더 기뻤을 것"이라고 그때를 회상한다. 그러면서 당대 아무런 논란이 없었을 만큼 매콜리프는 최적임자였다고 덧붙인다. 

이 우주 교사 프로그램은 당시에 이를테면 '흥행' 보증수표 같은 거였다. 몇 년째 다소 주춤했던 나사의 인기를 다시금 타오르게 해준 1등공신이라 할 만했다. 
 
챌린저호에 탑승했던 우주비행사들 빨간 동그라미 안에 있는 사람이 크리스타 매콜리프

▲ 챌린저호에 탑승했던 우주비행사들 빨간 동그라미 안에 있는 사람이 크리스타 매콜리프 ⓒ 넷플릭스

     
1980년대가 시작되고 중반에 이르도록 수년간 나사는 여러 차례 우주왕복선을 우주에 보냈다가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반 여객기처럼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하는 우주왕복선을 바라보는 미국인들과 전세계인들은 나사를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발사와 착륙에서 거듭된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 말해 성공사례가 일상이 되자 (우주왕복선 관련 예산을 더 많이 따낼 수는 있었지만) 나사는 국민적 관심이 현저히 줄어드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우호적 찬사와 대중적 인기가 줄어드는 참이었다. 그래서, 나사가 어쩌면 우주왕복선의 발사와 착륙에 대한 기술의 개발과 점검보다 이벤트에 더 집중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큐멘터리 <챌린저: 마지막 비행>도 은근히 이 점을 꼬집는다. 
 
어떻든 1986년 나사는 우주 교사 프로그램의 성공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다가올 비극을 암시하도 하듯 챌린저호 발사는 몇 차례 계속해서 연기되며 애를 태웠다. 발사준비가 다 되었다 싶으면 날씨가 문제였고, 날씨가 적절하다 싶으면 우주왕복선 해치가 제대로 맞물려 닫히지 않는 사소한(?)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 데다 가장 치명적인 기술적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였다. 우주왕복선을 일정 높이까지 빠르게 쏘아주는 데 필요한 고체로켓부스터의 접합부위를 지탱하는 고무재질의 부품, O링이 그것. 
 
O링은 고무 재질이어서 저온에서는 탄성이 줄어든다. 탄성이 줄어들면 접합부위를 안정적으로 맞물리게 하지 못하고 이탈, 혹은 파손될 수가 있다. O링을 제작한 '모턴 티오콜'사의 기술자들은 이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1월 28일 바로 전날 밤까지도 챌린저호 발사를 반대했다. 기온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다. 낮은 기온 때문에 O링이 냉각되어 있기라도 하면, 그것이 발사과정에서 오작동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반면 나사의 발사책임자들은 당초 1월 22일에 해야 했던 발사를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미뤄 28일이 되었는데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나사의 발사책임자들은 기술자들의 강력한 반대를 강력한 억압으로 물리치고('발사불가'를 입증하라?), 저온으로 인한 O링의 오작동을 우려하는 '모턴 티오콜'사의 기술자들로부터 발사동의서를 억지로 받아낸 뒤, 곳곳에 고드름이 얼어있는 발사대에 서 있는 챌린저호 발사를 강행해버렸다. 

그 결과 최초의 일반인 우주인을 태운 우주왕복선 역사적 발사장면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 TV로 생중계로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앞에서 챌린저호는 발사 이후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 안에 타고 있었던 우주인들의 생존가능성은 0(zero)이었다. 
 
챌린저호 폭발 장면 당시 기록필름 중에서 영화에 인용되었음

▲ 챌린저호 폭발 장면 당시 기록필름 중에서 영화에 인용되었음 ⓒ 넷플릭스

 
과학자 로버트 파인먼의 실험

이 끔찍한 참사 직후 곧바로 대통령직속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당시의 대통령 레이건은 이 참사로 인해 나사의 위상이 실추되거나 우주왕복선 프로젝트 자체가 좌초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나사의 입장을 옹호할 법한 인물을 의도적으로 위원장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의 기가막힌 속성 때문이었을까, 조사위원회에는 대통령과 위원장의 의중과 반대되는 의견을 지닌 사람들도 다수 위촉되었다. 
 
그런 데다 때마침 나사 직원 중 내부고발자도 나타났다. 급기야 조사위원 중 몇몇 이들이 O링의 문제를 인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비밀리에 (위원장 모르게)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조사위원회 청문회의 어느 날, 로버트 파인먼이 마이크를 잡았다. 파인먼은 한 과학실험에 관한 내용을 발표했다. 청문회장에 출석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얼음물에 고무 재질의 O링을 넣어두었다가 꺼내서 O링의 기능이 얼음물에 들어가기 전처럼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보았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그 전날 밤 집에서 이미 동일한 실험을 한 차례 해보았기에 그 실험결과를 알고 있었다.  

파인먼의 실험은 고무 재질 O링의 탄성은 저온에서 급격히 줄어드는데, 그런 상태에 열을 가하면 회복력을 상실한 O링이 훼손되어 치명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실험이었다. 보기에 따라선 간단한 실험이었다. 이때 청문회에 불려나온 나사 관계자들은 "당신은 진짜 과학을 모른다"라고 반박할 수 없었고, 실험이 허술했다고 지적할 수 없었으며, "챌린저호에 일어난 문제는 당신의 실험과 무관하다"는 반론을 펼 수도 없었다. 상대가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지식인 파인먼이 조사위원으로 위촉되었을 때 그저 명예직으로 간주해 대충 시간만 때우려 했다면? 동료 조사위원 쿠티나 장군의 의미심장한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면? 늦은 밤 자신의 집에서 O링 냉각 실험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그 실험결과를 쿠티나 장군과 의논해 청문회의 적절한 타이밍에 공표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상황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조사위원회 청문회는 어떻게 끝났을까? 
 
그때 당시 파인먼의 시의적절한 문제제기는 지식인의 권위를 재기발랄하고 올바르게, 무엇보다도 윤리적으로 사용한 좋은 예일 것이다. 그의 발언은 진실된 힘이 있었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합리적 의심을 시민들에게 불러일으켰고, 진실탐구의욕을 언론인들에게 불어넣었으며, 마침내 진상조사활동 전체가 거짓 없이 투명하게 진전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리하여 챌린저사고 대통령직속조사위원회가 그때 작성한 보고서는 '조사위원회라면 이러해야 한다'는 매우 모범적인 보고서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지식인이라면 모름지기 파인먼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부해서 남 주냐?"는 격언(?)도 물론 있긴 하지만, '공부해서 남 줄 수 있는 게 더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챌린저: 마지막 비행> 4편 엔딩 크레딧을 응시하며, 나는 우리나라에도 파인먼 같은 지식인들이 많기를, 더 많아지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물론 파인먼을 완벽한 인간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는 대부분의 천재과학자들이 듣는 괴짜라는 소리도 들었고, 나서기 좋아하고 쇼맨십에 능한 인물이라거나 반골 기질의 과학자라는 평가들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파인먼의 당시 실험보고와 문제제기를 다룬 동영상 링크를 걸어둔다. 궁금한 분들은 시청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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