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룩 업'의 스틸컷

'돈 룩 업'의 스틸컷 ⓒ 넷플릭스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애덤 맥케이 감독은 오늘날 미국 자유주의자(리버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블랙 코미디를 만드는 사람이다. SNL(Saturday Night Live)의 작가 출신인 그는 현실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씁쓸한 웃음을 만드는 장인이다. 금융 자본주의의 파탄을 논한 <빅쇼트>(2015)가 첫 번째였다. 네오콘의 수장인 딕 체니 전 부통령을 그린 <바이스>(2018)는 애덤 맥케이의 지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히 했고, 전기 영화의 문법 자체를 통렬하게 비틀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맥케이의 신작 <돈 룩 업> 이야기를 한다. 맥케이의 신작이 유독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첫 번째 이유는, 화려한 캐스팅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 메릴 스트립과 조나 힐, 타일러 페리, 케이트 블란쳇, 롭 모건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동세대 최고의 스타가 된 티모시 샬라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얼굴도 볼 수 있다. 수많은 배우들이 비중에 상관없이 각자의 몫을 확실히 하면서 웃음을 안긴다. 두 번째는 높은 접근성이다. 이 영화는 약 2주간 영화관에서 상영된 후, 크리스마스 연휴에 맞춰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세 번째는, 이 영화가 오늘날의 미국을 다루는 방식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아마겟돈'이 아니다

천문학 교수인 랜달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천문학자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는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하게 될 혜성을 발견한다. 지구가 멸망의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미국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을 찾아가지만, 그는 미래적 과제보다는 당장의 중간 선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돈 룩 업' 스틸컷

'돈 룩 업' 스틸컷 ⓒ 넷플릭스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다. <에어포스 원>에서 테러리스트를 직접 무찌르던 해리슨 포드,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직접 전투기를 몰고 가 외계인과 맞섰던 빌 풀만, 그리고 이 영화의 메릴 스트립을 비교해보자. 혜성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사업가 피터(마크 라이언스 분)는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를 섞은 듯 기시감이 느껴진다. 론 펄먼이 연기한 애국 영웅의 모습에서는 <아마겟돈>이 떠오른다.

그러나 <돈 룩 업>에는 영웅이 없다. 대통령 뿐 아니라 기업가, 미디어, 대중, 세상 사람들은 혜성 충돌에 관심이 없다. 당장 팝스타의 가십과 스캔들이 더 흥미로울 뿐이다. 두 과학자는 시급한 위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세상에 분개하지만, 오히려 네티즌들은 케이트의 화난 얼굴을 밈(meme)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와중에 민디는 뜻밖의 섹시 아이콘이 되어 버리고, 우파 방송국의 아나운서와 불륜을 저지른다. 미국은 혜성 충돌에 대비하자는 사람들, 그리고 혜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 분열된다. 지구를 구하는 여정이 아니라, 전 지구적 위기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작품이다.

의도된 산만함, 위험사회에 둔감한 우리들
 
 '돈 룩 업'의 스틸컷

'돈 룩 업'의 스틸컷 ⓒ 넷플릭스

 
<돈 룩 업>의 대본은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이 바이러스를 받아들이는 미국의 방식은 영화의 상상을 넘어섰다. 트럼프는 미국 전염병연구소 소장인 과학자 앤서니 파우치를 조롱했고, 살균제 주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백신에 대한 음모론이 활개를 쳤다.

결국 팬데믹 이후, 이 작품의 풍자는 더욱 미국의 오늘날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극대화되었다. 우리는 팬데믹 이전에도 영화 못지 않은 현실을 보았다. 미국 대통령이 나서 "미국에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걸 보면 지구 온난화는 거짓말이다"라고 했고, 파리협정을 탈퇴했다. 폭스뉴스 등 우파 매체는 이 반지성주의에 힘을 보탰다.

그대로 대입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대선을 두 달 남짓 남겨 놓은 대한민국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경제, 환경, 사회문화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었고, 후보자 가족에 대한 가십이 선거판을 주도하지 않았나. '현실 가능성이 있다'는 이 영화의 슬로건은 마케팅을 위한 과장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심각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지만, 담론은 실종되었다.

<돈 룩 업>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SNL 작가였던 애덤 맥케이의 경력을 들어, 'SNL을 두 시간 짜리로 늘려놓은 것 같다'라는 혹평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산만함조차도 애덤 맥케이가 철저히 의도한 혼란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두 시간 동안 밈이 되기를 자처했으며, 2020년대의 미국적인 것에 대한 조소를 하기 위해 작정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해온 인간의 도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역사를 끝장낼 수 있는 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지구적 위기조차도 액세서리가 되어 버리는 정치 과잉의 세상을 살고 있다.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웃었지만, 씁쓸한 여운이 맺힌다.

반성한다. 북극곰의 설 자리가 사라져간다는 소식이 안타깝긴 했지만, 몸으로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기후 관련 뉴스보다 국내 정치 뉴스에 관심이 더 많이 갔다. 나부터 돌아보아야겠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커디(Kid Cudi)가 부른 사운드트랙 'Don't Look Up'은 이 영화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친절하게 축약한다.

"망할 놈의 폭스 뉴스 좀 꺼봐" /
"권위있는 과학자들 이야기를 제발 들어봐. 우린 정말 망했어."
돈 룩 업 애덤 맥케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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