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재미와 완성도 만큼이나 개봉시기와 대진운도 상당히 중요하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감독과 배우, 제작사의 영역이지만 영화가 완성된 후에는 홍보사와 배급사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해진다. 스케일이 작거나 주제 의식이 강한 영화가 대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성수기에 개봉한다면 관객들의 관심을 얻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배급사에서는 적절한 개봉 시기를 정하기 위해 엄청난 눈치싸움을 벌인다. 

지난 1998년 할리우드에서는 소행성의 지구충돌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두 편의 영화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이 제작됐다. 개봉 전 두 영화의 정보가 공개됐을 때만 해도 <딥 임팩트>가 완성도 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딥 임팩트> 역시 세계적으로 3억49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관객들의 더 큰 사랑을 받은 영화는 5억5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아마겟돈>이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아마겟돈>은 마이클 베이 감독과 브루스 윌리스의 인지도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서울 1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아마겟돈>은 마이클 베이 감독과 브루스 윌리스의 인지도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서울 110만 관객을 동원했다. ⓒ 월트디즈니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미의 화신'

전설적인 록밴드 에어로스미스의 리드보컬 스티븐 타일러의 딸인 리브 타일러는 데뷔 초기 아버지가 속한 밴드 에어로스미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1995년에는 <엠파이어 레코드>에 조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이 영화에는 <브리짓 존스> 시리즈로 스타가 되는 르네 젤위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타일러는 1996년 슈퍼스타 톰 행크스가 메가폰을 잡은 <댓 씽 유 두>에 출연하며 하이틴스타로 떠올랐다.

이렇게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유망주로 자리를 잡아가던 리브 타일러는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이에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마겟돈>에 출연했다. 타일러는 <아마겟돈>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딸이자 벤 애플릭의 연인 그레이스 스탬퍼를 연기했고 <아마겟돈>은 1998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아마겟돈> 이후 미국과 영국을 넘나들며 활동을 이어가던 타일러는 2001년 전설의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을 통해 또 하나의 대표작을 만들었다. 타일러는 <반지의 제왕>에서 당대 모든 요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아르웬을 연기했는데 관객들이 책으로 상상하던 눈부신 미모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여성 관객들은 레골라스(올랜도 블룸 분), 남성 관객들은 아르웬 때문에 <반지의 제왕>을 본다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

2004년 벤 애플릭과 재회한 로맨스 드라마 <저지걸>에 출연한 리브 타일러는 2008년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의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의 연인 베티 로스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인크레더블 헐크>는 에드워드 노튼의 하차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인크레더블 헐크>를 끝으로 더 이상 솔로무비가 제작되지 않았다. 결국 타일러가 연기한 베티 역시 MCU 세계관에서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2010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수어사이드 스쿼드2>을 연출한 제임스 건 감독의 초기작 <슈퍼>에 출연했던 타일러는 2010년대 들어 더 이상 <아마겟돈>이나 <반지의 제왕> 시절의 아우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18년엔 국내 개봉도 되지 못한 B급 호러 영화 <늑대인간의 후예>에 출연했던 타일러는 2019년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애드 아스트라> 이후 활동이 뜸한 상태다.

영화적 재미로 덮어버린 과학적 오류들
 
 종말론이 팽배하던 세기말에 소행성 지구충돌이라는 소재는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종말론이 팽배하던 세기말에 소행성 지구충돌이라는 소재는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 월트디즈니

 <나쁜 녀석들>과 <더 락>,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연출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은 철저하게 흥행지향적인 감독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아마겟돈>에서도 현실성 재현을 위한 과학적 고증 따위는 무시한 채 철저하게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적 재미에만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아마겟돈> 개봉 당시 미항공 우주국(NASA)에서는 영화의 과학적 오류를 찾은 적이 있는데 무려 150개가 넘는 장면에서 오류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오류 투성이인 <아마겟돈>이 1998년에 개봉한 모든 영화들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흥행작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상업영화의 흥행공식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겟돈>은 호화캐스팅을 통해 구현한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물량을 쏟아부은 화려한 볼거리, 긴 런닝타임을 느낄 새가 없는 빠른 전개, 웃음과 감동코드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한 편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였다. 

개봉시기 역시 매우 시의적절했다. 1998년 여름은 새천년을 2년도 채 남겨두지 않았던 시기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멸망 예언으로 대표되는 온갖 세기말적 종말론들이 전 세계에 파다했다. 그런 불안한 시기에 공룡을 멸종시켰다는 소행성이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인류가 이를 우주과학기술과 핵무기를 통해 막아낸다는 이야기는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마겟돈> 역시 미국 자본과 미국 감독, 미국 배우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인 만큼 곳곳에 미국우월주의가 지나치게 자주 등장한다. 영화 곳곳에 뜬금없이 성조기가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가 절정으로 향할수록 전 세계 사람들이 오직 미국에게 인류의 운명을 의존한다.

주연은 물론 조연들의 면면도 화려 
 
 연기파 배우 빌리 밥 손튼은 NASA의 인간적인 면모와 냉점함을 겸비한 댄 트루만 국장을 연기했다.

연기파 배우 빌리 밥 손튼은 NASA의 인간적인 면모와 냉점함을 겸비한 댄 트루만 국장을 연기했다. ⓒ 월트디즈니

 
<아마겟돈>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와 벤 애플릭, 리브 타일러 외에도 조연 캐릭터의 캐스팅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1억4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답게 배우캐스팅에 제작비를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마겟돈>에는 조연들 중에도 관객들에게 익숙한 배우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다리 부상 때문에 우주 여행을 하지 못하고 통제실을 지휘하는 NASA의 댄 트루만 국장 역은 연기파 배우 빌리 밥 손튼이 맡았다. 흔히 영화 속에서 거대 조직의 리더는 정치에만 능하고 실무에는 약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트루만 국장은 논리적이면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통제하는 유능한 지휘관으로 그려진다. 안젤리나 졸리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손튼은 드라마 <파고>와 <골리앗>을 통해 두 번이나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다.

배우와 프로듀서, 작가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특히 코미디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오웬 윌슨은 데뷔 초기 <아마겟돈>에서 지질학 전문가 오스카로 출연했다. 어린 나이에도 리더 해리(브루스 윌리스 분)로부터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독립호'가 추락하는 과정에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 오웬 윌슨은 최근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로키>에서 TVA(시간관리국) 최고수사관 모비우스를 연기했다.

<저수지의 개들>,<파고> 같은 저예산 영화들부터 <콘 에어>,<아일랜드>,<트랜스포머5>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다양하게 출연한 스티브 부세미도 <아마겟돈>에서 천재성 있는 괴짜 록하운드를 연기했다.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광기 어린 캐릭터와 달리 핵무기 해체를 앞두고 벌벌 떠는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처럼 보였지만 후반부에는 공포에 미쳐 난동을 부리다가 동료들로부터 포박(?)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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