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공사가 새해 첫 경기에서 페퍼저축은행을 14연패의 수렁에 빠트렸다.

이영택 감독이 이끄는 KGC인삼공사는 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1-2022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페퍼저축은행과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17,25-13,25-18)으로 승리했다. 인삼공사는 팀 내 최고참 한송이를 쉬게 했고 '토종에이스' 이소영 역시 2세트까지만 뛰고 교체됐음에도 페퍼저축은행에게 한 번도 20점 이상을 허용하지 않고 가볍게 승점 3점을 추가하며 3위로 뛰어 올랐다(12승7패,승점36점).

인삼공사는 외국인 선수 옐레나 므라제노비치가 초반 부진을 씻고 48.15%의 성공률로 15득점을 올렸고 이선우가 서브득점 3개를 포함해 11득점, 2세트까지만 뛴 이소영도 10득점을 기록하며 인삼공사의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날 이영택 감독과 인삼공사 팬들을 가장 기쁘게 했던 선수는 한송이 대신 풀타임으로 활약하며 69.23%의 공격 성공률과 함께 5개의 블로킹을 곁들이며 14득점을 올린 인삼공사의 3년 차 중앙공격수 정호영이었다.

윙스파이커에 적응하지 못한 '리틀 김연경'
 
 정호영은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만에 윙스파이커에서 한계를 느끼고 센터로 변신했다.

정호영은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만에 윙스파이커에서 한계를 느끼고 센터로 변신했다. ⓒ 한국배구연맹

 
각 종목마다 고교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특급 유망주들이 나오곤 하지만 여자배구의 정호영은 광주체육 중학교 시절부터 배구계 전체가 주목하던 유망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호영은 당장 프로에 와도 TOP3안에 들 수 있는 189cm의 축복 받은 신체조건을 가진 윙스파이커였기 때문이다. 배구 입문(중학교 1학년)이 다소 늦어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만큼 나쁜 버릇이 없어 스펀지 같은 흡수력을 보일 거라는 기대도 공존했다.

정호영은 중학교 졸업 후 같은 재단의 광주체고에 입학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박은진과 박혜민, 이예솔(이상 인삼공사) 등이 다니는 배구명문 진주 선명여고로 전학을 갔다. 정호영은 이 과정에서 전학생 규정에 의해 1년 동안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는데 만약 이 때 꾸준한 경기경험을 통해 기본기를 착실히 익혔다면 정호영은 지금쯤 더욱 완성를 갖춘 윙스파이커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2학년 때부터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한 정호영은 190cm까지 키가 자랐고 쟁쟁한 언니들과 함께 고교무대를 평정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신분으로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당시 정호영이 여자배구계에서 얼마나 큰 기대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물론 당시 정호영은 윙스파이커로서 기량이 무르익지 않아 경기에 나설 기회는 거의 없었다).

2019년 9월에 열린 V리그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는 정호영을 위한 드래프트였다. 정호영이 전체 1순위로 뽑히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고 배구팬들의 관심은 전체 1순위의 행운을 잡는 팀이었다. 주사위를 굴린 결과 인삼공사에게 전체 1순위의 행운 찾아왔고 당시 인삼공사를 이끌던 서남원 감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명여고의 정호영'을 호명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되자 '윙스파이커' 정호영의 기량은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190cm의 신장을 살리지 못하는 부분은 둘째 치더라도 서브리시브가 전혀 되지 않아 공격으로 연결하기도 쉽지 않았다. 실제로 루키 시즌 정호영의 리시브 효율은 고작 2.33%였다. 이는 리시브에서 사실상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꿔 말하면 상대가 정호영을 향해 집중적으로 목적타 서브를 넣으면 손쉽게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센터 변신 후에도 십자인대 부상 극복
 
 정호영은 페퍼저축은행과의 새해 첫 경기에서 개인 시즌 최다블로킹(5개)을 기록했다.

정호영은 페퍼저축은행과의 새해 첫 경기에서 개인 시즌 최다블로킹(5개)을 기록했다. ⓒ 한국배구연맹

 
김연경의 뒤를 이을 한국 여자배구의 희망으로 불리던 정호영은 한 시즌 만에 윙스파이커로서 가치가 바닥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2019-2020 시즌 중반부터 팀을 맡은 이영택 감독은 190cm의 좋은 신장을 가진 정호영을 그냥 방치하기엔 너무 아깝다고 판단해 정호영에게 센터 변신을 권유했다. 정호영 역시 윙스파이커로서 큰 좌절을 맛 봤던 터라 이영택 감독의 제안을 받아 들여 새로운 포지션에 도전했다.

센터 포지션에서 의외의 재능을 보인 정호영은 2020년 컵대회에서 뛰어난 블로킹 감각을 선보이며 센터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2020-2021 시즌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개막전에서 착지 도중 무릎이 뒤틀리는 큰 부상을 당했다. 검사결과 정호영은 전방 십자인대 파열 및 내측 측부인대 미세손상 판정을 받았고 수술을 받으면서 그대고 시즌 아웃됐다. 프로 데뷔 후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큰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정호영은 좌절하지 않고 착실하게 재활과정을 밟아 작년 컵대회를 통해 코트로 돌아왔고 V리그 개막 후에도 한송이와 박은진의 백업센터로 쏠쏠하게 활약하고 있다. 물론 아직 풀타임 주전 자리를 차지하진 못했지만 부상으로 크게 고생했던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코트에서 씩씩하고 활기찬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좋은 신장과 포지션 대비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블로킹에서는 확실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교체 선수로 활약하던 정호영은1일 페퍼저축은행과의 새해 첫 경기에서 시즌 개막 후 두 번째로 주전 출전해 3세트 후반 나현수와 교체될 때까지 사실상 풀타임을 소화했다. 최가은(184cm)과 최민지, 하혜진(이상 181cm) 등 페퍼저축은행의 센터진에 비해 확실한 높이의 우위를 가진 정호영은 단 13번의 공격을 시도했지만 69.23%의 성공률로 9득점을 올렸고 5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중앙을 완전히 장악했다.

정호영이 인삼공사의 주전센터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나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처럼 높이가 강한 팀들을 상대로도 블로킹이나 속공에서 위력을 발휘해야 한다(사실 페퍼저축은행은 팀 블로킹이 세트당 1.59개로 7개 구단 최하위였다). '리틀 김연경'의 자리에 한계를 느끼고 센터로 두 번째 도전에 나선 정호영은 과연 큰 부상을 이겨내고 인삼공사, 그리고 V리그를 대표하는 중앙공격수로 도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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