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마르소의 머리 위로 헤드폰이 내려앉은 순간, 사랑은 시작됐습니다. 소녀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지요. 아등바등 사느라 자주 놓치게 되는 당신의 낭만을 위하여, 잠시 헤드폰을 써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현실보단 노래 속의 꿈들이 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Dreams are my reality.[기자말]
 아이유 <조각집>

아이유 <조각집> ⓒ EDAM엔터테인먼트


2021년을 이틀 남겨두고 아이유가 예상치 못한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29일 발매한 <조각집>으로, 여기엔 그의 자작곡들이 담겼다. 아이유는 '구태여 바깥에 내놓지 않았던 내 이십대의 그 사이사이 조각들'이라고 이 앨범을 소개했다.

그가 스무 살에 썼던 '드라마'라는 곡부터, 스물다섯에 쓰기 시작해 스물여섯에 완성한 '정거장', 스물일곱에 써서 스물아홉에 끝마친 '겨울잠', 스물네 살에 지은 '너', 스물여섯에 스케치하고 스물여덟에 마무리한 '러브레터', 이렇게 다섯 개의 미발표 자작곡들이 스물아홉의 끄트머리를 보내고 있는 그의 손을 떠나 세상으로 나왔다. 

어쩌면 정식음원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아이유의 서랍 속, 혹은 콘서트에 간 팬들의 마음 안에서만 고이 간직됐을 노래들을 한꺼번에 묶어 공개한 걸 보면, 아이유는 본인의 이십대를 정리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의식을 치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타이틀곡은 '겨울잠'이다. 그는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가는 일과, 그런 세상에 남겨지는 일에 대해 유독 여러 생각이 많았던 스물일곱에 스케치를 시작해서 몇 번의 커다란 헤어짐을 더 겪은 스물아홉이 돼서야 비로소 완성한 곡"이라고 밝혔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맞이하는 첫 1년의 이야기가 아이유 특유의 감성이 깃든 가사로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녹아있다.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너의 방 문 앞에 두었어/ 긴 잠 실컷 자고 나오면/ 그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

별 띄운 여름 한 컵 따라다/ 너의 머리맡에 두었어/ 금세 다 녹아버릴 텐데/ 너는 아직 혼자 쉬고 싶은가 봐"


가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그 이야기가 이어진다. 계절은 여느 때처럼 다시 차례대로 오는데 그 시간을 이제는 그 사람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상실감이 가사에 깃들어 있다. 봄과 여름의 얘기를 들려주고 나서 노랫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음" 하고. 

사실 이 곡을 처음 들을 때는 가사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들었던 터라 겨울잠의 편안함, 아늑함, 쓸쓸함에 대한 노래구나 싶었다. 하지만 가사를 눈으로 읽으면서 다시 들으니, 더불어 아이유가 직접 적은 곡 설명을 읽고서 들으니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특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저려왔다.  
 
 아이유 <조각집>

아이유 <조각집> ⓒ EDAM엔터테인먼트


아이유는 이 곡을 쓰는 데 오래 걸린 이유로 "너무 직접적인 표현을 쓰고 싶지도, 그렇다고 너무 피상적인 감정만을 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사를 음미해보면 그의 말처럼 너무 직선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에둘러서 표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 또렷한 그리움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아이유는 평소 레코딩에서는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곡은 굳이 감정을 절제하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감정을 절제하는 건 물론 세련된 일이지만, 때로는 솔직하게 아픈 마음을 토해내듯 드러내는 게 더 멋진 일인 것처럼 아이유는 먼저 떠난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애써 담담하려 애쓰지 않으면서 진솔하게 표현했다.  

"빼곡한 가을 한 장 접어다/ 너의 우체통에 넣었어/ 가장 좋았던 문장 아래 밑줄 그어/ 나 만나면 읽어줄래

새하얀 겨울 한 숨 속에다/ 나의 혼잣말을 담았어/ 줄곧 잘 참아내다가도/ 가끔은 철없이 보고 싶어"


이렇게 사계절이 완성된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고 처음 맞이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인데 각 계절의 이미지를 '빼곡한 가을 한 장'과 같이 함축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편지를 보냈으니 만나면 가장 좋았던 문장을 읽어달라는 말에서는 떠난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이유는 그들의 죽음을 겨울잠에 비유하며 언젠가 다시 깨어날 것만 같은 생각에 기대어 가사를 썼다.  

아이유는 말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는 정말로 무너지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란 걸 그들은 알아주겠지"라고. 이 말이 씩씩하게 들리기 보다는 외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는 말 같아서 그의 큰 슬픔이 들통나는 듯하다. 

"13년을 같이 자라고 함께한 반려묘를 며칠 전에 떠나보냈어요. 곡 설명을 보기도 전에 노래만 듣고도 그 아이 생각이 나서 엉엉 울었네요."

"오늘은 참으려고 했는데 노래 듣고 가사 보다가 또 울컥하네요."


그의 노래에 달린 댓글들만 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곡을 듣고 위로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겨울잠'인데 봄에 따뜻한 풀밭에 누워있는 기분이 드네요. 가사도 너무 따뜻해요"라는 댓글을 통해선 '맞아, 아이유 노래는 그럼에도 언제나 따뜻했지' 하고 상기하게 된다.

20대, 그 10년 동안 부지런히 곡을 만들고 불러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준 아이유. 그의 진심 덕분에 분명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마음 한가운데서도 조금은 편안해졌을 것이다. "아이유의 10대, 20대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라는 한 팬의 댓글에 가만히 공감 버튼을 누른다.
아이유 겨울잠 정거장 조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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