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도 대한민국과 전 세계는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계속되며 지친 사람들의 일상에 작은 위안을 줬다. 한국축구는 K리그에서, 대표팀에서, 그리고 해외무대에서 잇달아 화려하게 빛났다. 때로는 시련도 슬픔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기 위한 값진 경험이자 교훈의 시간이었다.
 
올해도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단연 손흥민(토트넘)이었다. 이미 '살아있는 전설'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손흥민은 다양한 기록들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2021년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나선 공식전에서 손흥민은 총 22골 17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지난 2020-2021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17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한 시즌 정규리그 최다골 기록을 새로 썼다. 올해를 앞두고서는 토트넘과 장기재계약을 맺으며 남다른 충성심으로 사실상 '종신 토트넘 레전드'의 길을 선택했다.
 
손흥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찰칵' 세리머니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A조 4차전 대한민국 대 이란의 경기. 손흥민이 선제골을 넣은 뒤 찰칵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손흥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찰칵' 세리머니 10월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A조 4차전 대한민국 대 이란의 경기. 손흥민이 선제골을 넣은 뒤 찰칵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흥민은 현재 진행중인 2021-2022시즌에도 토트넘의 에이스로서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가며 올해 마지막 경기였던 지난 12월 29일 사우샘프턴전까지 총 8골 2도움으로 현재 EPL 득점 4위에 올라있다. 손흥민은 2021년 프리미어리그에서만 40경기에 출전해 14골 8도움을 올렸고, 이 중 결승골만 무려 4번이나 기록했다. 토트넘 입단 후 통산 300경기(현재 302경기)를 돌파한 손흥민은 2년 연속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 선정 올해의 아시아 남자 선수의 영예까지 안았다.
 
토트넘이 지난 1년간 주제 무리뉴-누누 산투-안토니오 콘테 등 여러 감독들을 거치며 혼란기를 겪었고 각종 대회마다 우승권에서 잇달아 멀어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손흥민은 묵묵히 제몫을 다했다. 여기에 클럽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부진하다고 평가받던 대표팀에서도 올해에만 A매치 7경기 4골을 넣으며 카타르월드컵 본선행을 눈앞에 둔 벤투호의 상승세에 크게 기여했다. 실력-인성-리더십-자기관리 등 모든 것을 갖춘 손흥민에게 '월드클래스'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다.
 
손흥민 외에도 많은 해외파들이 유럽무대에서 빛났다. 황희찬은 지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실패를 뒤로 하고 잉글랜드 울버햄튼으로 임대 이적하여 4골을 터뜨리며 부활했다. 황의조는 올해 프랑스 보르도의 에이스로서 6골을 터뜨리며 제몫을 다하고 있다. 김민재는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하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차며 벌써 빅리그 이적설이 나도는 등 유럽무대에서 한국인 중앙수비수의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밖에 이재성은 독일 마인츠, 황인범은 러시아 루빈 카잔에서 주전경쟁과 부상의 고비를 이겨내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살아있는 전설' 손흥민과 강원FC의 부활
 
기뻐하는 최용수 감독 12일 강원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년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강원FC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 강원이 대전을 4대 1로 이기며 1부 리그 잔류를 확정하자 최용수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

▲ 기뻐하는 최용수 감독 12일 강원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년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강원FC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 강원이 대전을 4대 1로 이기며 1부 리그 잔류를 확정하자 최용수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축구는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정상적인 체제로 풀시즌 완주에 성공했다. 지난해 K리그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5월에 가서야 개막하면서 K리그 1·2부 모두 27라운드로 축소해 힘겹게 치러낸 바 있다. 비록 올해도 일부 구단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경기가 연기되거나 일부 선수들이 징계를 받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대다수 구성원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처럼 시즌을 무사히 소화해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10월부터는 경기장 관중 입장도 조금씩 확대되며 K리그가 앞으로 정상을 되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겼다.
 
2021년에도 K리그 우승 경쟁은 최종일까지 전북과 울산의 '현대가 양강' 체제가 계속됐다. 전북은 치열한 경쟁 끝에 올해도 정상을 수성해내며 2017년부터 '사상 최초의 5년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수립했다. K리그1 통산 최다 우승팀인 전북은 2009년 처음 정상에 오른 이후 올해로 벌써 9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첫 두 자릿수 우승 기록도 눈앞에 다가왔다. 전북에서 선수-코치에 이어 올 시즌을 앞두고 지휘봉을 잡은 김상식 감독은 사령탑 데뷔 첫해 우승의 감격을 누리며 전북이 거둔 모든 우승 기록을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다.
 
홍명보 감독 체제로 새 출발에 나선 울산은 2019년부터 3년 연속 최종전까지 우승 경쟁을 끌고 갔지만 이번에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울산은 올해까지 준우승만 역대 최다인 10번이라는 진기록을 추가했다. 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차지했던 울산은 올시즌 트레블(3관왕)에 도전장을 던졌으나 FA컵과 ACL마저 준결승에서 탈락하여 무관에 그쳤다.
 
FA컵은 사상 최초로 2부리그팀이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전남 드래곤즈는 결승전에서 대구FC를 꺾고 정상에 오르며 다음 시즌 ACL 출전권까지 획득하는 경사를 누렸다. 전통의 강호 포항은 올시즌 리그에서는 하위스플릿인 9위에 그치며 부진했으나 ACL에서 결승까지 진출하여 준우승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명가의 자존심을 지켰다.
 
우승보다 치열한 승강대전에서는 광주FC가 2년 만의 강등의 수모를 겪었고, 군팀 김천상무가 K리그2 우승을 차지하며 1부 승격에 성공했다. K리그1 11위 강원FC는 최용수 감독이 소방수로 지휘봉을 잡은 이후 승강PO에서 대전 하나시티즌에 1차전 패배를 딛고 대역전승을 거두며 극적인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시민구단인 대구(3위)는 창단 최고성적 타이 기록을 올렸고, 승격팀인 제주(4위)와 수원FC(5위)이 동시에 파이널A 그룹에 속하며 기대 이상의 돌풍을 일으켰다. 반면전통의 강호인 수원 삼성(6위), FC서울(7위, 2년 연속 하위스플릿) 등 대기업 구단들의 부진은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축구 WK리그에서는 현대제철이 경주 한수원을 물리치고 통합 9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24년 만에 나온 '수비수 MVP'와 벤투호의 변화
 
 전북 현대 홍정호가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2021 프로축구 K리그1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한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정호는 1997년 '아시아의 삼손'으로 불린 김주성에 이어 24년 만에 수비수로 MVP를 수상하는 기록을 작성했다.

전북 현대 홍정호가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2021 프로축구 K리그1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한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정호는 1997년 '아시아의 삼손'으로 불린 김주성에 이어 24년 만에 수비수로 MVP를 수상하는 기록을 작성했다. ⓒ 연합뉴스

 
국내 선수들의 약진과 세대교체 바람은 올해 K리그의 두드러진 변화였다. 올해 K리그1 최우수선수(MVP)에는 전북의 홍정호가 수비수로는 무려 24년 만에 영예를 안았다. 주민규(제주)는 22골을 터뜨리며 외인 공격수가 득세하던 득점왕 경쟁에서 5년만의 토종 득점왕에 이름을 올렸다.
 
올시즌 K리그는 팀당 교체 선수 수가 3명에서 5명으로 늘어났고, 교체카드를 모두 활용하려면 22세 이하(U-22) 선수 2명을 모두 경기에 출전시켜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초기에는 이러한 교체 규정을 악용해 젊은 선수들을 선발출전시켰다가 일찍 교체시키는 '꼼수'가 속출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있는 젊은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밟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K리그1 영플레이어상의 영예를 안은 프로 2년차 설영우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큰 성장세를 보이거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평가다.
 
한편으로 올해 K리그는 구성원들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문제인식이 어느때보다 강조된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축구의 간판스타였던 기성용은 올해 초등학교 시절 후배들에 대한 학폭 의혹과 농지법 위반 등으로 도마에 올랐다. 대구FC 소속 박한빈, 정승원, 황순민 등은 공공장소에서 방역수칙 위반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강원FC 소속 선수 2명은 11월에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K리그2의 충남아산FC는 데이트 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본 선수 료헤이 미치부치를 영입했다가 팬들과 시민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고 공식사과하며 료헤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강원FC는 대전과의 승강플레이오프 홈경기에서 구단 유스팀 소속 볼보이들이 고의적으로 경기 지연을 방해하는 비매너 추태를 저지르며 경기 승리와 1부 잔류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일련의 사건들은 오늘날의 축구팬들이 더 이상 성적과 결과보다도, 프로다운 스포츠맨십과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사건들이다.
 
이란전 공식 기자회견하는 벤투 감독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11일 이란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전 경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이란전 공식 기자회견하는 벤투 감독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10월 11일 이란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전 경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연합뉴스


국가대표팀 벤투호는 최악의 고비를 딛고 드라마틱한 반등에 성공했다. 벤투호는 코로나19로 2020년 일정을 거의 날렸고, 2021년 첫 A매치였던 3월 한일전에서는 0대 3으로 완패하는 굴욕을 당하며 벤투 감독의 경질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진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한동안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최종예선에서는 중동팀들에게 둘러싸인 최악의 대진운 속에 벤투 감독의 독선적인 팀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벤투호는 최종예선 1차전에서 이라크와 0대 0으로 비기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레바논과 2차전에서 1-0, 시리아와 3차전에서 2-1로 간신히 이기기는 했지만 어려운 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최대고비였던 이란과의 원정 4차전에서 비록 승리는 놓쳤지만 1-1 무승부로 값진 승점 1점을 획득하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벤투호는 아랍에미리트(UAE)와 5차전(1-0), 이라크와 6차전(3-0)에서 황의조, 김영권 등 일부 공수 핵심 자원 없이도 완승을 거두며 4승 2무 승점 14점으로 본선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3위권과는 무려 8점차다.
 
벤투호는 이르면 레바논과 원정 7차전에서 본선 진출 확정도 가능한 상황이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었던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오랜만에 본선 조기 진출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에이스 손흥민의 부활, 황인범-정우영이 버틴 중원의 안정화 그리고 이란을 제외한 중동팀들끼리 서고 물고 물리는 자중지란에 빠진 행운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편 김학범 감독이 이끌었던 도쿄올림픽 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대진운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와의 8강전에서 6실점 참패(3-6)를 당하는 굴욕을 겪으며 2012 런던대회의 동메달 신화 재현에 실패했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대표팀은 지소연-조소현-이금민으로 이어지는 '황금세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최종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중국에 잘싸우고도 1, 2차전 합계 합산 스코어에서 3-4로 뒤져 올림픽 진출에 아쉽게 실패했다.
 
세상 떠난 축구계 별들
 
 고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빈소가 8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유상철 전 감독고 지난 2019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전념해 왔고, 7일 별세했다.

고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빈소가 6월 8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유상철 전 감독고 지난 2019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전념해 왔고, 7일 별세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2021년 축구팬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순간은 많은 소중한 인재들을 아깝게 잃어버린 것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인 유상철 감독이 지난 6월 췌장암 투병 끝에 별세한 데 이어 축구선수 여효진과 골키퍼 차기석, 김희호 서울 이랜드 코치 등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며 축구팬들을 애통하게 했다.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로 꼽히는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은 2002 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이었다. 여효진은 청소년 대표 및 프로무대에서 뛰었으며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발탁돼 선수들과 연습생으로 함께 훈련하기도 했다. 청소년 대표 출신 차기석은 2005년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 훈련에 참가할 만큼 촉망받던 골키퍼였다. 한국축구에 평생 기여했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았던 귀중한 인재들이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축구팬들을 애통하게 했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중인 축구인들의 활약상은 한국축구의 저변을 넓히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박항서와 신태용 감독은 동남아에서 '축구 한류 전도사'로 맹활약했다. 박 감독은 올해 베트남을 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으로 이끌며 동남아 최강팀으로 발돋움시켰고, 신태용 감독은 약체 인도네시아를 스즈키컵 결승으로 이끌며 또다른 신화를 이뤄냈다.
 
안정환, 이동국, 박지성, 최용수, 김병지, 조원희 등은 은퇴 후에도 여러 방송 출연과 사회적 활동을 통하여 꼭 현장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축구의 매력과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뭉쳐야찬다> <골때리는 그녀들> <골든 일레븐> <축구하는 여자들>같이 축구를 소재로 한 방송들이 대거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여자축구나 아마추어 축구 등이 화제를 모으고 재조명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광과 좌절, 희망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국축구는 새로운 2022년을 앞두고 있다. 내년에도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비롯하여 축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할 큰 대회와 경기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또 어떤 화려한 별들과 극적인 스토리들이 축구팬들을 찾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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