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X를 죽였나?> 의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X를 죽였나?> 의 한 장면.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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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안팎에서 맬컴 X를 '맬컴 텐'으로 (Iphone X을 읽듯) 읽는 이들이 제법 많다. 우리 시대, 맬컴 엑스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리라. 맬컴은 1925년 5월에 태어나 1965년 2월 21일에 암살당했다. 향년 서른아홉이었다. 
 
그런데 맬컴과 동시대에 활동하였으며 그보다 훨씬 더 유명했던 흑인 인권운동가가 있으니, 바로 노벨 평화상에 빛나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박사)다. 마틴은 맬컴보다 조금 뒤인 1929년에 태어났고,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마틴도 서른아홉에 암살당했다(1968년). 두 사람 다 마흔에 도달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망연령 외에 둘의 공통점은 또 있다. 두 사람 모두 성직자였다(한 사람은 개신교 성직자, 다른 한 사람은 무슬림 성직자). 그리고 두 사람은 살아 생전 흑인 인권운동에 온 정성을 기울여 이른바 '영혼을 끌어모아' 매진했고, 자신들의 흑인 정체성 즉 'blackness'를 자랑스러워했고 사랑했다. 
 
동시대를 살며 아주 비슷한 활동을 펼쳤음에도 두 사람은 자주 교류하지는 못했다. 단 한 번 짧게 마주쳤을 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서로를 항상 인지하며 늘 신경쓰며 살았다고 한다. 두 사람과 친하게 지낸, <뿌리>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증언에 따르면, 맬컴은 마틴을 궁금해했고 마틴은 맬컴을 궁금해했단다.   

추적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X를 죽였나?>는 40분 안팎의 단편 6편을 한데 묶은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누가 맬컴을 죽였는지 꼼꼼히 추적하는 사람은 형사도 검사도 기자도 탐정도 아니고, 관광가이드로 일하는 압둘라흐만 무함마드다. 
 
그의 끈질기고 합리적인 추적 덕분에,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아 수십 년 징역까지 산 사람이 급기야 무죄판결을 받기에 이르렀다. 안타까운 건, 무함마드가 정보와 증거들을 모아 진범으로 추론한 이가 진범 여부를 스스로 자백하기 전에 세상을 하직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무함마드는 진범을 인터뷰할 수 없었고, 다만 그의 장례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곳 지역사회가 진범을 대략 인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진범이 (혹시 범행을 회개했던 것일까?) 평생 그곳 지역사회의 복지와 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세상을 떠난 바람에 극진한 존경을 받는다는 것. 
 
진범을 명확히 인지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는데도 진범은 평생 안전하게 살다 평화롭게 별세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 일의 이면엔 당대 민감했던 정치적 요인들이 얼기설기 들어있다. 그런 까닭에, <누가 맬컴 X를 죽였나?>는 맬컴의 암살사건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나, 암살사건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맬컴 주변의 정치적 상황과 맬컴의 생애&사상을 충분히 많이 이야기한다. 
 
생애
 
맬컴 X 영화 스틸컷

▲ 맬컴 X 영화 스틸컷 ⓒ 넷플릭스

 
맬컴은 마틴과 똑같이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목사가 가정폭력범이었다. 그리고 일찍 돌아가셨다. 맬컴의 어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맬컴을 비롯한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입양되었다. 지혜로운 아버지 목사님의 격려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자란 총명한 우등생이었던 마틴은 대학에 들어갔고 박사학위도 받았지만, 역시 총명한 우등생이었으며 장래희망이 변호사였던 맬컴은 "흑인에게 사건을 맡길 사람은 없을 걸"이라는 학교 선생님의 냉정한 말씀에 절망하여 십대 청소년 강도가 된다. 강도 활동의 끝은 감옥이었다. 감옥에서 맬컴은 '블랙무슬림'의 가르침을 접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참고로 '블랙무슬림'은 아랍세계의 무슬림과는 완전히 다른, 흑인들만의 평등세계를 꿈꾸는 종교단체였다. 맬컴은 '블랙무슬림'의 창설자&지도자 일라이자 무함마드를 '제2의 아버지'로 여기고, 공부를 해나간다. 폭풍독서를 통해 독학으로 자기의 생각을 다듬으며 민주주의 사상을 세워나갔다. 순수한 맬컴은 일라이자의 가르침을 신성시하며, 그의 가르침 안에서 살고자 노력했다. 나중에 FBI의 수사자료를 통해 폭로됐듯 마틴은 성적 일탈이 제법 심각했던 반면 맬컴은 그런 류의 일탈이 너무 없어서 FBI요원들에게서 "성인군자"라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다. 결벽에 가까울 만큼 언행일치의 삶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던 맬컴이 제2의 아버지 일라이자의 언행불일치를 목도했을 때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편 일라이자 쪽에서도 어느 순간 맬컴을 경계하게 되는데, 맬컴이 흑인사회에서 자기보다 더 인기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부터다. 심지어 일라이자는 '블랙무슬림' 조직을 통해 경제적 이권을 독점하는 중이어서, 그것을 놓칠세라 백인사회에 조금이라도 불편감을 줄 만한 정치평론을 최대한 억압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맬컴은 혹시 백인에게든 흑인에게든 누구에게든 불편감을 줄지라도 사회적 진리(평등과 자유)를 추구하고자 했고 당대 사회의 정치평론에 훨씬 적극적이었다. 맬컴은 백인들의 동정과 연민을 거부했고, 백인집단이 혹시 개과천선할지 모른다는 예측에도 저항했다. 
 
암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X를 죽였나?> 의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X를 죽였나?> 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순수하기 때문에 더 급진적일 수 있었으며 무려 언행일치의 화신이었기에, 맬컴은 미국의 백인사회에 더 위험해 보였다. 실제로 맬컴은 '블랙무슬림' 활동초기부터 FBI의 요시찰인물이었다. 활동 초기부터 벌써 맬컴의 경호원 중에 FBI의 간첩이 잠입해 활동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죽기 얼마 전 메카 순례를 다녀온 맬컴이 '블랙무슬림'이 정통 이슬람교와 달리 오직 흑인만의 평등세계를 설파하는 배타적 종교단체임을 인지하면서 결별하는데, 그럼으로써 맬컴은 '블랙무슬림'이라는 새로운 적을 획득(?)했다. 
 
결국 맬컴은 암살되었다. 암살 직후 수사팀은 암살장소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힌 한 명 그리고 그날 그곳에 없었으며 알리바이마저 확실했던 '블랙무슬림' 소속 흑인 두 명을 추가로 체포해 재판에 넘겼다. 수년 전부터 꼬투리를 잡으려고 여러 명의 간첩을 맬컴 주변에 배치했던 FBI는 암살 수사팀을 전혀 도울 생각이 없었다. 간첩 중 한 명은 맬컴이 총에 맞았을 때 자기도 모르게 현행범의 도주로를 방해하고, 맬컴을 살리고자 인공호흡을 실시했는데, 그 때문에 간첩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문책을 듣기도 했다. 이리하여 어쨌든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 되었으니, FBI가 진범 추적에 열심을 내는 수사팀을 도울 리가 없다. 대충 수사하는 걸 방관했다.

진실
 
무함마드가 이 모든 진실을 밝혀냈다. 그가 있어 진실(사건의 진상)이 이만큼 드러난 것이다. 이렇듯 누군가가 나섰을 때 드디어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들이 곳곳에 있다. 미국사회에만 그런 사건들이 있을 리 없다. 우리 사회에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진실은 힘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 드러나게 되어있다. 몇 년 전 추운 겨울, 광화문에서 매일같이 울려퍼지던 그 노래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진실이 알아서 저절로 드러나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노래 한 곡조 뽑았으니 됐다? 아니다. 무함마드처럼 직접 나서서 열심히 조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마도 진실의 힘을 아는 사람이 그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누가 맬컴 X를 죽였나?>는 무함마드의 끈질긴 추적행위, 지난한 추적행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 그는 진실의 힘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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