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리스와 성룡은 할리우드와 홍콩영화를 대표하는 액션스타라는 점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좋게 말하면 인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약한' 영웅이라는 점이다. 브루스 윌리스와 성룡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초능력이나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정의감 또는 직업적 사명감(두 배우의 대표작은 경찰로 출연하는 <다이하드>와 <폴리스 스토리>다)만 가지고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이 같은 액션 영화의 공식은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세계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혈청을 맞아 비실비실한 약골에서 몸짱 슈퍼 솔저로 변신한 캡틴 아메리카에게도 레드 스컬이나 윈터 솔저, 타노스처럼 상대하기 버거운 강력한 빌런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고생할수록 영화의 긴장감이 커지고 사건이 해결됐을 때 관객들이 느끼는 쾌감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에서 영화 속 긴장감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면 관객들이 영화를 보다가 지루함이나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럴 때 관객들은 필요 이상으로 긴장감을 주려 하는 영화보다는 빌런들을 훌쩍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통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액션영화를 원하기도 한다. '사기 캐릭터' 스티븐 시걸이 홀로 테러리시트에게 탈취됐던 핵잠수함을 되찾아오는 해양 액션 영화 <언더 씨즈>처럼 말이다.
 
 스티븐 시걸이 제작에도 참여한 <언더 씨즈>는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19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스티븐 시걸이 제작에도 참여한 <언더 씨즈>는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19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데뷔 늦은 만큼 전성기도 짧았던 액션스타

표정 변화 없이 간결한 동작으로 적들을 제압하는 이미지가 강한 스티븐 시걸은 실제 배우 데뷔 전후로 아이키도(던지기와 관절기가 중심이 된 일본의 현대무도)와 태국식 단검술, 가라데 등을 연마한 무술인이기도 하다. 17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시걸은 약 15년간 오사카에 살면서 무도인 및 무술사범으로 활동했고 1974년에는 무도인 관장의 딸과 결혼해 장남 켄타로 시걸과 장녀 아야코 후지나티 시걸을 낳기도 했다.

1984년 미국으로 돌아와 LA에서 아이키도 도장을 차린 시걸은 1988년 서른 여섯이라는 다소 많은 나이에 액션영화 <형사 니코>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시걸은 데뷔작부터 원안을 쓰고 제작까지 참여하며 다방면에 재능을 뽐냈다. 1990년 국내엔 <복수무정>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하드 투 킬>과 <죽음의 표적>에 출연한 시걸은 1992년 드디어 자신의 대표작이 된 해양 액션영화 <언더 씨즈>를 선보였다.

3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언더 씨즈>는 세계적으로 1억 56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기록했고 시걸은 브루스 윌리스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액션 히어로로 떠올랐다. 하지만 1994년 제작과 주연은 물론 직접 연출까지 도전한 <죽음의 땅>이 제작비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듬해 <언더 씨즈2>를 통해 세계적으로 1억 4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지만 제작비 역시 2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에 만족스런 성적이라 보긴 힘들었다.

1996년에는 커트 러셀, 할리 베리와 함께 <파이널 디씨전>에 출연했지만 국내에서 주연으로 홍보된 것과 달리 시걸은 영화 시작 20분 만에 비행기에 탑승도 못하고 최후를 맞는다. 비슷한 시기에 스타가 됐던 브루스 윌리스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나름 연기 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 것과 달리 시걸은 철저히 액션 장르만 고집했고 그나마 특유의 딱딱한 연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99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에서 배우가 아닌 가수로 내한하기도 했던 시걸은 지난 2004년 전설의 괴작 <클레멘타인>에 출연해 카메오에 가까운 분량만으로 거액의 출연료를 챙겼다. 어느덧 한국나이로 일흔이 넘은 시걸은 세르비아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며 러시아의 대미문화사절단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시걸은 전성기에 비해 체격이 다소 커졌지만 여전히 여러 액션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간부식당 관리관
 
 스티븐 시걸은 <언더 씨즈>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취사병'에 등극했다.

스티븐 시걸은 <언더 씨즈>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취사병'에 등극했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언더 씨즈>는 한 개인이 테러단체에 맞서 얼마나 잘 싸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언더 씨즈>는 미 해군 특수부대(SEAL)의 최고요원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해임된 케이시 라이백 상사(스티븐 시걸 분)가 전함 USS미주리호에 조리상사로 탑승했다가 혈혈단신으로 테러를 막고 빼앗긴 핵잠수함을 되찾는 이야기다. 시걸이 출연하는 많은 영화가 그렇듯 <언더 씨즈>에서도 시걸에게 큰 위협이 되는 적은 나오지 않는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군인들에겐 저마다 주특기가 있어 자신의 병과와 관련이 없는 업무에서는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라이백은 전투는 물론이고 작전, 무기조립, 지휘관으로서의 상황판단 능력까지 만렙에 가까운 완벽한 군인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라이백은 스스로에게 핸디캡을 주기 위해 겁 많은 여성 무용수 죠단 테이트(에리카 엘라니악 분)까지 데리고 다닌다.

<언더 씨즈>에서 가장 통쾌한 액션은 행사 참석차 배에 승선했다가 갇히게 된 퇴역 군인들과 함께 크릴 중령(게리 부시 분)과 윌리엄 스트라닉스(토미 리 존스 분)의 음모를 저지하는 장면이다. 포수, 세탁병 등 직접전인 전투와는 무관한 병과를 가진 퇴역군인들은 라이백의 지시에 따라 적의 잠수함을 침몰시키는 성과를 얻는다. 민폐캐릭터였던 죠단 역시 라이백이 갈고리에 걸려 부상 당했을 때 총으로 적을 쓰러트리며 라이백의 목숨을 구한다.

<언더 씨즈>는 199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편집상과 음향믹싱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좋은 음악으로 유명했던 영화다. 특히 <언더 씨즈> OST 중 'The Takeover'는 <TV쇼 진품명품>을 비롯해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간장감을 높일 때 사용되면서 대중들의 귀에도 매우 익숙해졌다. <언더 씨즈> 1편에서 상사였던 라이백은 3년 후 개봉한 <언더 씨즈2>에서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데 아마 그 사이 장교 임관시험을 본 모양이다.

<언더 씨즈>를 연출한 앤드루 데이비스 감독은 초창기 주로 B급 액션 영화나 슬레셔 무비를 연출했다가 시걸과 <형사 니코> <언더 씨즈>를 함께 작업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해리슨 포드와 토미 리 존스가 출연한 <도망자>도 데이비스 감독의 대표작. 국내에서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체인 리액션>(1996년)과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했던 <콜레트럴 데미지>(2002년)를 연출한 감독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브 주인공 전문 토미 리 존스의 열연 
 
 CIA요원 출신 테러리스트를 연기한 토미 리 존스는 <언더 씨즈>에서도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CIA요원 출신 테러리스트를 연기한 토미 리 존스는 <언더 씨즈>에서도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토미 리 존스는 2005년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을 통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상업영화에서는 주로 서브 주인공이나 악역을 연기했을 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맨인블랙1, 2>와 <배트맨3-포에버> < JFK > 그리고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안겼던 <도망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는 테러리스트를 연기했던 <언더 씨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토미 리 존스는 <언더 씨즈>에서 CIA 요원 출신의 테러리스트 윌리엄 스트라닉스 역을 맡았다. 특히 냉정한 테러단체의 리더였던 스트라닉스가 라이백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점점 이성을 잃어가며 흥분하는 연기는 평범한 액션영화(특히 시걸이 출연하는)에서는 보기 힘든 열연이었다. 마지막에는 시걸과 단검 액션으로 맞대결을 벌이며 영화 속에서 좀처럼 타격을 당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시걸의 얼굴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함장을 살해하고 스트라닉스와 함께 미주리호를 탈취하는 크릴 중령은 배우 게리 부시가 연기했다. 테러전문가 스트러닉스와 비교하면 어설픈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초반 선원들을 방심시키기 위한 여장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1944년생으로 의외로 고령인 게리 부시는 지난 1978년 <버디 홀리 스토리>를 통해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에서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배우다.

군인과 테러리스트 등 남자들만 잔뜩 나오는 <언더 씨즈>에서 여주인공이자 홍일점 역할을 한 배우는 플레이보이지 7월의 모델로 선정돼 미주리호 파티에 초대된 죠던 테이트 역의 에리카 엘라니악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고히트작 < E.T >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엘레니악은 1989년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TV시리즈 < SOS 해상구조대 >에서 초보 구조대원 새니 매클레인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언더 씨즈 앤드루 데이비스 감독 스티븐 시걸 토미 리 존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