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포스터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포스터 ⓒ GLINT

 
예술의 목적이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 한 사진가는 성공적인 예술가라고 불리기 충분하다. 일생을 뉴욕에서 활동해온 사진가 사울 레이터가 바로 그다.

레이터의 사진은 유럽의 눈 밝은 이들에게 적잖은 영감을 주었다. 그들은 그 영감을 바탕으로 또 다른 역작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사진집과 또 다른 사진집과 또 다른 사진집이 연달아 나왔다. 사진집을 본 어느 예술가는 레이터의 색감을 그대로 활용해 멋진 영화 한 편을 찍어내기도 했다. 토드 헤인즈의 2015년 영화 <캐롤>도 그중 하나다. 헤인즈는 스스로 가장 영향을 받은 작가 중 한 명으로 레이터를 꼽았다.

수십 년 간 <하퍼스 바자>부터 <엘르> <에스콰이어> <보그> 같은 잡지의 사진가로 활동해온 레이터는 뒤늦게 작가로 알려졌다. 그가 카메라를 든 지 60여 년이 지난 2005년에 이르러서였다. 생애 대부분을 무명으로 보낸 것이다. 당연히 사진집 하나도 낸 적 없었다. 이전까진 그저 패션잡지에 사진을 찍는 사진가에 불과했고, 지금보다 그 시절 상업적 목적의 사진가란 더욱 열악한 일이었던 것이다.

레이터가 발굴된 건 82세였던 2005년이었다. 독일 유명 출판사 '슈타이틀'의 대표가 뉴욕 출장길에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그의 사진을 만난 것이다. 그는 유럽으로 돌아가 레이터의 작품에 대해 널리 알렸다. 첫 사진집인 < Early Color >가 발간된 이후 레이터는 일약 세계 사진계의 스타가 됐다.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스틸컷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스틸컷 ⓒ GLINT

 
80대에 명성을 얻은 사진가의 삶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는 2013년 발표된 다큐멘터리다.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도 죽고 작품 활동도 한풀 꺾인 노년의 레이터를 영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토마스 리치가 찾아 인터뷰했다. 뒤늦게 명성을 얻은 나이 든 사진가를 가까이서 대하며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왔는지 되짚는다. 가장 열정적이었을 때 이름을 얻지 못했던, 삶을 정리할 나이가 되어서야 유명해진 그의 삶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영화 속 레이터는 불평불만이 많은 아흔 살 노인이다. 시종 짜증스런 태도로 불평을 쏟아내지만 그건 그의 몸이 좋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레이터는 거리를 걸으며 감독에게 말한다. 늙음이라는 건 길을 걷다 문득 건물 창가를 바라보는데 거기 웬 흉측한 노인이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그 노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이다. 스스로를 볼품없는 노인이라 칭하며 레이터는 바쁘게 여기저기를 오간다. 그리고 그가 과거 가졌던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한다.

가만히 살피면 레이터는 제 삶이 어디까지일지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촬영이 끝나고 채 1년이 되지 않은 2013년 11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개봉과 함께 제 생을 마무리한 것이다. 영화 내내 작업실과 창고를 정리하던 그의 모습은 스스로 삶을 갈무리하는 일이며 예견된 끝을 맞이하는 작업이다. 이 영화는 그가 저를 알아봐 준 세상에 남기는 일종의 유언처럼 느껴진다.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스틸컷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스틸컷 ⓒ GLINT

 
일생을 아름다움만 쫓아다녔다

레이터는 흑백에서 컬러로 사진 기술이 넘어가는 시대에 발 빠르게 편승했다. 어두운 구도 속에서도 선명한 색감을 즐겨 활용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으로 변질된 색감을 표현하고, 유리에 반사된 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즐겼다. 당대엔 색다른 시도를 거듭했으나 알아준 이는 많지 않았다. 그의 사진 속에 담긴 뉴욕은 단순한 일상을 넘어 낭만과 가능성을 품었음에도 세상은 레이터를 평범한 사진가로만 기억했다. 아니,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는 게 옳을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아름다움을 쫓았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드러내고 유명인들 사이에 자기를 두는 대신 보통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 곁에 자기를 둔 것이다. 그러고선 아름답고 근사한 것들만 보고 즐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고는 했다. 뉴욕의 고가도로와 자동차, 사거리의 모습, 비와 눈이 내리는 날의 풍경, 공원을 서성이는 사람들, 그 모두가 그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의 대상이었다.

영화의 개봉과 맞물려 사울 레이터의 사진전도 열린다. 이달부터 서울 남산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라는 제하의 전시가 열린다. 내년 3월 27일까지로, 한국에선 처음 열리는 레이터 사진전이다. 소멸한 어느 작가의 세계를 영화와 전시로 함께 만나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스틸컷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스틸컷 ⓒ GLINT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스틸컷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스틸컷 ⓒ GLINT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