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와 지금은 없어진 영화전문 사이트 시네포엠에서는 지난 2000년 3명의 신예감독이 인터넷 상영을 위해 만든 단편영화들을 공개했다. 1998년 <조용한 가족>과 2000년 <반칙왕>을 히트시키며 충무로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김지운 감독이 <커밍 아웃>을 만들었고 20대 중반부터 이미 연극계에서 주목 받다가 <기막힌 사내들>과 <간첩 리철진>을 통해 영화까지 활동범위를 넓힌 장진 감독이 <극단적 하루>를 연출했다.

하지만 대중들이 가장 열광했던 작품은 단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액션키드'로 떠오른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LEE>였다. 서울 인근 지역 올 로케와 일백푸로 후시녹음을 강조한 '총천연색 디지털비데오' <다찌마와 LEE>는 6~70년대 영화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진행과 웃음코드로 대중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있는 <다찌마와 LEE>를 소장하기 위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DVD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

<다찌마와 LEE>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관객들은 류승완 감독에게 <다찌마와 LEE> 극장판 제작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류승완 감독은 의례적으로 '기회가 된다면' 극장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8년 여름, 류승완 감독은 임원희, 안길강,류승범 등 오리지널 버전의 주역들에 공효진,박시연,황보라 등이 가세한 극장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 리>)를 선보였다.
 
 류승완 감독은 상업영화로는 많지 않은 28억 원의 제작비를 가지고 세계를 누비는(?) 첩보액션영화를 만들었다.

류승완 감독은 상업영화로는 많지 않은 28억 원의 제작비를 가지고 세계를 누비는(?) 첩보액션영화를 만들었다. ⓒ (주)쇼박스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를 가진 매력적인 배우

임원희는 황정민, 류승룡, 정재영, 안재욱, 신동엽, 최성국 등을 배출하며 연예계의 전설이 된 서울예대 연극과 90학번 출신이다. 성우를 했어도 어울릴 법한 중저음의 중후한 목소리를 자랑하는 임원희는 90년대 중반부터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장진 감독의 영화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던 임원희는 2000년 류승완 감독이 만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두 번째 에피소드 '악몽'에서 성빈(박성빈 분)을 괴롭히는 이형사 역으로 주목 받았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카리스마 있는 악질형사를 연기했던 임원희는 같은 해 공개된 <다찌마와 LEE>를 통해 '호방한 액션스타'로 변신했다. <다찌마와 LEE> 이후 지명도가 급상승한 임원희는 김민종,신은경 주연의 <이것이 법이다>와 국내 최초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에서 잇따라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2003년에는 영화 <실미도>에서 유쾌한 684부대 훈련병을 연기하기도 했다.

2005년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에서 강태식(최민식 분)의 매니저 원태 역을 맡았던 임원희는 2007년 <식객>에서 악역 오봉주를 연기했다. 그리고 2008년 드디어 <다찌마와 LEE>의 극장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 출연했다. <다찌마와 리>는 2008년 여름시즌에 개봉했지만 <다크나이트>와 <월-E>, <놈놈놈> 같은 대작들과 맞붙어 전국 62만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공교롭게도 임원희 역시 <다찌마와 리> 이후 상업 배우로서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대한민국 1%>를 시작으로 <퀴즈왕>,<로맨틱 헤븐>,<Mr.아이돌>,<나는 왕이로소이다>,<뜨거운 안녕> 등 출연한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다. 다만 2010년대 들어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임원희는 <정글의 법칙>,<나는 남자다>,<진짜사나이>,<미운우리새끼> 등에 츨연하며 대중들과 친근해졌다.

영화를 위주로 활약하던 임원희는 2016년 <낭만닥터 김사부>와 2017년 <힘쎈 여자 도봉순> 같은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욱 친숙한 배우가 됐다. 최근에는 <미운 우리 새끼>에 이어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물론 지난 20일 첫 방송된 드라마 <꽃 피면 달 생각하고>에서 20년 경력의 노련한 사헌부 소유 황가를 연기하며 본업인 연기활동도 충실히 하고 있다.

28억 원의 제작비로 전 세계를 누비다
 
 임원희는 다찌마와 리 캐릭터로 2010년대에도 CF를 찍었을 정도로 그에게는 '인생캐릭터'나 마찬가지다.

임원희는 다찌마와 리 캐릭터로 2010년대에도 CF를 찍었을 정도로 그에게는 '인생캐릭터'나 마찬가지다. ⓒ (주)쇼박스

 
<다찌마와 리>는 류승완 감독에게 일종의 '숙제' 같은 작품이었다. 장편 데뷔작 <피도 눈물도 없이>를 준비하는 도중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단편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장편제작에 대한 관객들의 요구가 빗발쳤고 류승완 감독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류승완 감독은 <피도 눈물도 없이>를 시작으로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짝패>까지 4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후 <다찌마와 리>라는 오랜 숙제를 풀 수 있었다.

<다찌마와 리> 극장판은 단편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제작비(28억 원)가 투입된 공식 상업 영화다. 하지만 제작과 개봉 시기가 비슷했고 같은 만주 웨스턴을 표방했던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제작비 170억 원)에 비하면 <다찌마와 리>는 저예산 영화에 가까웠다. 따라서 류승완 감독은 <다찌마와 리> 특유의 호방한 액션과 독특한 웃음코드를 유지하되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다찌마와 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스위스,미국 등 세계 각국을 넘나들며 화려한 첩보액션을 선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다찌마와 리>는 한 번의 해외촬영 없이 '국내 올로케'로 제작됐다. <다찌마와 리>에서는 인천 영종도를 만주라고 우겼고 평창 대관령 용평 리조트는 스위스 비밀은행 입구가 됐다. 심지어 같은 장소에서 찍은 화면이 겨울에 찍으면 스위스 설원으로, 여름에 찍으면 미국 켄터키주의 고원이 되기도 했다. 

사실 <다찌마와 리>는 류승완 감독이 단편영화에서 만들었던 독특한 색깔과 코드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제법 크게 갈린 작품이다. 초합금으로 된 총을 만들지만 총알을 넣을 구멍이 없어 적에게 직접 가격하는 둔기로 사용하거나 다찌마와 리를 혼자 좋아하던 마리(박시연 분)의 머리가 비행기 프로펠러에 끼어 몸이 같이 돌아가는 과장된 웃음코드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도 분명 적지 않았다.

99분의 런닝타임 동안 농담과 장난이 계속되지만 마적단과의 전투 이후 기억을 잃은 다찌마와 리가 온갖 시련과 멸시를 견디다가 세상을 등지고 숨어 지내던 무사의 검과 비서를 빌견하고 검술을 익히는 장면은 꽤나 진지하게 처리됐다. 이는 국내에서 1995년에 개봉했던 <서극의 칼>을 오마주한 장면으로 류승완 감독은 기억을 되찾은 다찌마와 리와 마적단의 재대결 액션장면에서 웃음기를 뺀 진지하고 화려한 액션 연출을 선보였다.

친형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던 류승범
 
 류승범은 국경살쾡이 역으로 선역과 악역 사이를 오가는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류승범은 국경살쾡이 역으로 선역과 악역 사이를 오가는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 (주)쇼박스

 
단편영화 <다찌마와 LEE>와 극장판 <다찌마와 리>가 나오기까지 8년의 시간 동안 신예 혹은 무명에 가까웠던 많은 배우들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인정 받으며 2000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배우로 성장했다. 그 대표적인 배우가 바로 <화려한 시절>, <품행제로>, <주먹이 운다>, <야수와 미녀>, <사생결단> 등을 통해 주연배우로 자리 잡은 류승범이었다. 하지만 신인일 때나 스타가 됐을 때나 류승범은 친형의 말을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류승범은 <다찌마와 리>에서 국경살쾡이 역을 맡아 다찌마와 리와 두 번에 걸쳐 조우한다. 특히 다찌마와 리의 첫 등장이었던 열차장면에서는 극장판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는 "우리 사이에 굳이 통성명은 필요 없을 거 같은데"가 나오기도 했다. 다찌마와 리가 각성한 후에는 마적단과 함께 다찌마와 리에게 덤비다가 처참하게 패한 후 다찌마와 리에게 정보를 누설하다 왕서방(김병옥 분)이 던진 칼에 찔려 최후를 맞는다.

다찌마와 리가 기억을 잃었을 때 그를 보살펴 주던 소녀는 황보라가 연기했다. 다찌마와 리는 영화 속 설정상 '숱하게 많은 여자 요원들에게 마음을 열어준 사랑의 전도사'였지만 기억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소녀와의 러브라인은 나오진 않는다. 영화 속에서 소녀는 걸걸한 남자목소리와 여리여리한 목소리 사이를 오가는데 소녀의 목소리 연기는 많은 애니메이션과 게임 더빙에 참여했던 인기 성우 겸 가수 이용신이 대신 했다(물론 후시녹음).

<타짜>의 너구리 형사로 유명한 조상건과 <살인의 추억>,<달콤한 인생>,<괴물> 등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였던 김뢰하는 김구 선생과 김좌진 장군을 연상케 하는 분장을 하고 중간중간 영화의 진행을 해설했다. 사자성어를 써가면서 지식배틀을 하는 듯한 두 배우의 진지한 만담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소소한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 속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흑룡강으로 나오는 곳의 실제 촬영 장소는 성수대교 아래 한강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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